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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4 #날로 날로 새로워지기 #사도행전 7장 54-60절 본문
20230604
날로 날로 새로워지기
사도행전 7장 54-60절
오늘은 스데반에 관한 기록인 사도행전 6,7장이다.
제 6 장
일곱 일꾼을 뽑다
1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3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5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스말하는 사람과 히브리말하는 사람들 간 차별 불평 해소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 곧 기도하는 일과 말씀 섬기는 일은 사도들이 맡고, 음식 베푸는 일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격의 집사들이 맡았다. 사도직과 집사직,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와 장로, 집사와 권사다. 역할 분담이었다.
제도는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상황과 형편에 따라 만들어진다. 고정되면 안 된다. 개혁이 필요하다. 세상 형편과 상황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시대마다 다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위한 직책, 직무, 직업에서 평등관계가 무너지면 안 된다. 각자가 하는 일이 다 중요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지위 고하에 따라, 일이 좀 더 어렵거나 해도 차별이 생기면 안 된다.
히브리말하는 유대인들은 전통적인 기득권을 가지려 하고, 그리스말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 유대인들이니 자신들에게도 합당한 처우를 해달라는 변화를 요구한 것이었다. 사도들은 그 변화된 상황에 적합하게 집사들을 뽑아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대처했다. 공동체의 요구에 적절히 변화한 것이다. 해외 동포들이 유입된 변화에 맞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스데반이 체포되다
8 스데반은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서,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9 그 때에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 가운데에서 몇이 들고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그들은 스데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11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그리고 백성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부추기고, 스데반에게로 몰려가 그를 붙잡아서, 공의회로 끌고 왔다.
13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쉴새 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을 합니다.
14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뜯어 고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15 공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
집사 중에서 은혜와 능력(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말하는 헬라파 유대인 스데반이, 53년경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하여 유대가 토벌되고 난 후 로마에 팔려 잡혀간 유대인들 후손들이 자유인이 된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아시아 사람들의 리버디노(자유인) 회당 유대 사람들과 논쟁을 한다.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여 백성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부추겨 공회의로 잡아가 거짓증인을 세웨 스데반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르며 예수가 이곳을 헐고 모세 율법을 뜯어고치겠다고 한다고 모함한다. 해외유입 동포 자유인임에도 율법주의 유대인들 입장에서 마치 예수님이 그런 것처럼, 베드로가 그런 것처럼 스데반이 이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스데반은 변화를 시도했고 자유인 해외동포 유입 유대인들은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어렵다. 사람이 변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영부영 되지 않는다. 조작되기도, 오해받기도 한다. 목숨 내놓고 해야 한다.
7장
스데반의 설교
1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물었다. "이것이 사실이오?"
2 스데반이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3 '너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어디든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 하셨습니다.
4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유산으로 물려줄 손바닥만한 땅도 그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후손들은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7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그들을 종으로 부리는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겠고, 그 뒤에 그들은 빠져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예배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고, 이삭은 야곱에게 또 야곱은 열두 족장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9 그런데 그 족장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에다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10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져내시고, 그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총애를 받게 하셨습니다. 바로는 그를 총리로 세워서, 이집트와 자기 온 집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11 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재난이 극심하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12 야곱이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우리 조상들을 처음으로 거기로 보냈습니다.
13 그들이 두 번째 갔을 때에,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이 일로 말미암아 요셉의 가족 관계가 바로에게 알려졌습니다.
14 요셉이 사람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야곱과 모든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모셔 오게 하였습니다.
15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그도 거기서 살다가 죽고, 우리 조상들도 살다가 죽었습니다.
16 그리고 그들의 유해는 나중에 세겜으로 옮겨서, 전에 아브라함이세겜의 하몰 자손에게서 은을 주고 산 무덤에 묻었습니다.
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이 왔을 때에, 그 백성은 이집트에서 늘어나고 불어났습니다.
18 마침내,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임금이 이집트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19 이 임금이 우리 겨레에게 교활한 정책을 써서, 우리 조상들을 학대하되, 갓난아기들을 내다 버리게 하여서, 살아남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20 바로 이 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용모가 아주 잘 생긴 아기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석 달 동안 몰래 집에서 길렀습니다.
21 그 뒤에 어쩔 수 없어서 내다 버렸는데, 바로의 딸이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삼아서 길렀습니다.
22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23 모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의 사정을 살펴 볼 생각이 났습니다.
24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서, 압박받는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25 그는 [자기] 동포가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26 이튿날 모세는 동족들끼리 서로 싸우는 자리에 나타나서,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들아, 그대들은 한 형제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서로 해하는가?' 하였습니다.
27 그런데 동료에게 해를 입히던 사람이 모세를 떠밀고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28 어제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또 나를 그렇게 죽이려 하는가?'
29 이 말을 듣고서, 모세는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30 사십 년이 지난 뒤에, 천사가 시내 산 광야에서 가시나무 떨기 불길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32 '나는 네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두려워서 감히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33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신발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34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학대받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다. 이제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니, 너는 가거라.'
35 이 모세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하고 배척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모세를 가시나무 떨기 속에 나타난 천사의 능한 손길을 붙여 지도자와 해방자로 세워서 그들에게로 보내셨습니다.
36 이 사람이 이집트 땅과 홍해에서 놀라운 일과 표징을 행하여 그들을 이끌어냈으며,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도 그러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37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우신 것과 같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이 모세입니다.
38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회중으로 모여 있을 때에, 시내 산에서 그에게 말하는 천사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어서, 산 말씀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입니다.
39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를 제쳐놓고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습니다.
40 그래서 그들은 아론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시오.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온 그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41 그 때에 그들은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그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두고 즐거워하였습니다.
4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그들을 내버려 두셔서, 하늘의 별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책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가문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있을 때에, 희생물과 제물을 내게 바친 일이 있었느냐?
43 너희는 몰렉 신의 장막과 레판 신의 별을 받들었다. 그것들은 너희가 경배하려고 만든 형상들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바빌론 저쪽으로 옮겨 버리겠다.'
44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 살 때에, 그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 모세가 본 모형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45 우리 조상들은 이 장막을 물려받아서,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땅을 차지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그것을 그 땅에 가지고 들어왔고, 다윗 시대까지 물려주었습니다.
46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므로,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47 그러나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48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49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한 것과 같습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52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53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긴 내용이지만 스데반 입장에서 당신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사람을 알려면 그가 사는 지역, 그 부모와 선조들을 알아야 한다.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이 다르듯,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다르듯 고유하게 내려온 다른 전통적인 유전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당신들은 원조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와 다윗으로 이어진 민족이요, 우상 숭배하던, 하나님을 배신하던 너희 선조들 후예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율법을 받은 그 모세와 같은, 의인이있던 예수님을 율법에 매여 율법으로 죽인 자들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너희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니 그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지적하고 문제 있다고 하고, 살아있는데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니 말이다. 이들의 변화는 어렵다.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고서,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스데반이 환상 가운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고 있다고 하니 사람들이 돌로 처 징벌한다. 그 현장에 바울이 처음 등장한다. 천사 같던 스데반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며 숨을 거둔다. 개혁은 목숨 내놓고 하는 것이다. 스데반 이후 교회는 날로 날로 새로워지며 확장되나 핍박은 심해진다.
오강남 교수의 메타글 인용
"Ahaism(아하주의)
저는 평소 21세기 종교는 우리 주위에 가득한 신비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환희와 자유를 느끼도록 하는 Ahaism이 강조되는 종교일 것이라 주장합니다. 비슷한 주장은 아인슈타인도 했다는 것을 지적했던 적도 있습니다. 도덕경 1장에도 “도는 신비 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玄之又玄 衆妙之門)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런 생각을 생생하게 표현한 Henry Miller라는 분의 글을 보고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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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한 가지 이론이 있는데, 아무것이나, 심지어 풀잎 하나라도, 가까이서 주목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신비스럽고, 엄청나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한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실험을 천 번을 했어도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물을 보면 볼수록 그 속을 보게 되고, 그 속을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어 집니다.... 이것이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저는 세상이 물체의 집합이 아니라, 거대하고 신비로운 유기체라 봅니다. 저는 극히 작은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고 가장 일상적인 사건에서도 놀라움을 발견합니다. 저는 언제나 숨겨진 의미와 비밀스런 메시지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삶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결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저는 신비 중에 사는 것, 알지 못하는 것들에 둘러싸인 것에 만족합니다. 저는 어느 곳에도 인도하지 못할 길위를 걷는 구도자, 순례자, 여행자에 만족합니다.
I have a theory that the moment one gives close attention to anything, even a blade of grass, it becomes a mysterious, awesome, indescribably magnificent world in itself. I have tried this experiment a thousand times and I have never been disappointed. The more I look at a thing, the more I see in it, and the more I see in it, the more I want to see....
This is the way I look at the world. I don't see it as a collection of objects, but as a vast and mysterious organism. I see the beauty in the smallest things, and I find wonder in the most ordinary events. I am always looking for the hidden meaning, the secret message. I am always trying to understand the mystery of life.
I know that I will never understand everything, but that doesn't stop me from trying. I am content to live in the mystery, to be surrounded by the unknown. I am content to be a seeker, a pilgrim, a traveler on the road to nowhere. ~Henry Miller"
"며칠 전에 Ahaism을 언급하면서 Henry Miller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 공감하시고 몇몇 분들은 그런 경험을 하시고 계시다고 하셔서, 제가 몇 년 전에 이곳 페북에 올릴 것 같기도 한 글 하나를 다시 올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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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앞으로 어떤 종류의 종교가 나타나게 될까? 앞에서 인용한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종교 없는 삶>(Living the Secular Life)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21세기 종교는 재래종교 대신 땅을 뚫고 나오는 연약한 풀잎에서부터 광대무변의 우주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에 대해 신기함과 그 신비스러움에 놀라워하고 외경(畏敬, awe)의 마음을 가지므로 즐겁고 밝고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21세기에 바람직한 ‘종교 없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런 ‘종교 아닌 종교’를 영어로 Aweism이라고 불렀다. 'awesome' 할 때의 'awe'이다.
필자는 이를 좀 더 실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Ahaism”이라 부른다. 그 넓은 태평양을 헤엄치고 놀던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개울을 찾아 올라오는 모천회귀(母川回歸), 제비가 그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때가 되면 제 집으로 돌아오는 것, 겨울 동안 앙상한 가지가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봄이 되면 파릇파릇 잎을 내는 것, 아기가 태어나고 조금 있다가 걷기도 하고 말도 쫑알거리는 것,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무아 상태,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과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얼굴의 살갗, 물이 그 높은 나무 끝까지 올라가는 것 등등. 양자물리학이나 DNA구조나 천체물리학 같은 깊고 오묘한 신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주변에서 조금만 눈 여겨 보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묘할 뿐이다. 그야말로 신묘막측(神妙莫測)이다.
매순간 우리가 접하는 사물의 더 깊은 면을 발견하면서 계속 “아하(Aha)!”를 외치는 경험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경험이 되고 이런 경험을 통해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넓은 의미의 종교적 눈뜸이나 깨달음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을 ‘종교 아닌 종교’라고 했지만 사실 이런 것이 참된 의미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 대표자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그는 우주에 있는 신비적인 것에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 정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감정은 신비적 감정(mystic emotion)이다. 여기에 모든 예술과 참 과학의 씨앗이 들어있다. 이런 느낌을 모르는 사람, 경탄할 줄 모르고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우리가 꿰뚫을 수 없지만 존재하고 그 자체 최고의 지혜와 가장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드러내는 그 무엇을 아는 것....이 앎, 이 느낌이 바로 참된 종교적 정서의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로지 이런 의미에서만, 나는 내 스스로를 심오한 종교적인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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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소리> <하얼빈>의 김훈 작가가 1개월 전쯤 유투부에 나타나서 “사람과 사람사는 마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설을 하는 것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어린이들의 생명력을 느낄 때, 남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데 그 머리에서 찜빵에서 올라오는 것과 같은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볼 때,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까치집을 볼 때, 남녀가 길을 건너기 전에 하는 키스를 볼 때, 형형색색으로 피는 꽃을 볼 때, 햇볕을 맞으며 태양의 에너지가 내 몸속 세포 속으로 들어오고 나와 우주가 하나 됨을 느낄 때, 이럴 때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행복하게 된다는 요지의 강연을 했습니다. 김훈 작가도 Ahaist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투부에서 ‘김훈’을 검색하면 “아름다움과 분노”라는 제목의 20분짜리 강연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통과 율법에 찌든 생각에 매어 자신들이 최고다고 할 것이 아니다. 다 알지는 못해도 매 순간 보는 모든 것이 신비로워 새로운 복된 말씀에 우리는 살수 있다.
여러분은 낡은 옛날 습관에서 벗어나, 같은 날 반복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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