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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린도전서 11장 1절 본문

설교

20231119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린도전서 11장 1절

필명 이일기 2023. 11. 1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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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린도전서 11장 1절

 


우리는 자주 "맞다", "알맞다", "어울린다", "적합하다"라는 말을 쓴다. "이치에 맞다"는 말이다. "자연과 본성, 그리고 시대와 상황에 맞다"는 말이다. 그런 말은 세상은 어떤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원리대로 그런 환경에 맞춰 살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점쟁이가 잘 맞추고 못 맞추는 것은 그런 원리를 잘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린 것이다. 무슨 귀신이나 또는 접신해서 그가 알려준 게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은 결정되어 있다는 것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 욕망을 그런 원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금요일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학 자격 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어떤 문제, 곧 원리를 맞추는 것이다. 잘 맞추는 학생이 있다. 못 마추는 학생도 있다. 잘 배웠느냐에 달렸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16절에서 고린도교우들에게 본성에 맞추어 살라고 말한다.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과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본성, 곧 자연 현상에 맞게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읽어보자.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그를 본받은 바울을 본받으라는 말이다.
2   여러분이 나를 모든 면으로 기억하며,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3   그런데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4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5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를 밀어 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7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에 권위의 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1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기독교 문화 사회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지 않습니다.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14   자연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15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긴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 전통과 상식과 본성에서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오늘날도 기독교와 같은, 아브라함 계통인 이슬람교, 그의 이슬람 여성들은 히잡을 쓴다. 초경을 시작하는 13, 14세부터 얼굴, 머리, 목, 가슴까지 천으로 가린다. 아랍어 히잡이란 가리다는 말이다. 눈 외 온몸을 가리는 ‘니깝’, 눈 마저 망사로 덮어 가리는 부르카, 차도르, 아바야와는 다르다. 본래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태동한 7세기경부터는 아라비아 부족 간 전쟁으로 강간, 약탈로 인하여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한다고 봤기 때문에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슬람 경전 꾸란 24장 31절에는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안 된다. 가슴을 가리는 머릿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가족 외 성인 남자들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다. 바울이 편지를 쓰던 당시 고린도 지역과 오늘날 우리 지역 형편과는 다르다. 이슬람 여성이 긴 머리 하는 것이나 수건을 쓰는 것은 그들 상황과 조건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바울이 여성은 수건을 써야 한다고 한 것은 시대 상황과 지역 여건에 알맞게 살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슬람 여성들이 이주해 와서 산다. 그들은 종교 전통에서 남성을 유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에서 히잡을 쓴다. 그러니 그들에게 히잡을 쓰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 존중해줘야 한다. 만약 이슬람 여성들처럼 생각한다면 물론 써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쓸 필요가 없다.
 
주님의 만찬을 먼저 먹는 사람들에 대한 책망
17   다음에 지시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18   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   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21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기억하는 만찬을 먼저 먹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자신의 다른 입장 때문이었으나 상대적으로 못 먹는 사람이 생기고 취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니 모두 함께해야 한다는 말이다. 

성만찬 계승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바울 이전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이다.(마 26:26-29; 막 14:22-25; 눅 22:14-20) 바울은 그것을 계승해 전한 것이다.

주님 만찬을 바르게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29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31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32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3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바로잡겠습니다.
 
 성만찬에 참여할 때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3대 고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존 번연의 "천로역정",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있다.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오늘 배울 말씀은 본성에 맞게, 상황에 어울리게, 남을 배려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 안에 합당하게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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