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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시내산과 하늘의 예루살렘 #갈라디아서 4장 25-26절 본문

설교

20240121 #시내산과 하늘의 예루살렘 #갈라디아서 4장 25-26절

필명 이일기 2024. 1. 2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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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시내산과 하늘의 예루살렘
갈라디아서 4장 25-26절
 
 1년 24 절기 중 어제가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가장 춥고 얼음이 두껍고 단단하게 언다는 대한이었다. 본래 대한은 소한보다 훨씬 추워야 맞는데 비가 내려 봄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겨울 절기는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6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데, 봄은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다. 2주 후 2월 4일이 입춘이다. 4계절은 춘하추동이고, 각 계절 앞에 들어선다는 입자를 붙여 시작된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다.
 봄이 빨라진 것 같다. 환경에 따라 기후도 변하고 있다. 옛날 중국에서 만들었던 절기를 우리나라에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은 맞지 않다. 세월과 계절에 맞게 바꿔 살아야 한다. 
 
 오늘은 갈라디아서 4장이다.

 바울 당시 율법은 옛날 옷이었다. 예수님 이후는 새로운 옷이 생겨 변화가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안내해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 변화과정에서 왔다 갔다 했던 모양이다. 성경 말씀도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이해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달라진 상황에 맞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재해석하고 있다.

1   내가 또 말합니다. 유업을 이을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 때까지는 보호자와 관리인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한이 찼을 때라는 말은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할 때가 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때, 곧 시간은 크로노스(Κρόνος)라는 물리적인 시간이고, 기회를 뜻하는 카이로스(καιρός)다. "때가 찼을 때"에서 때 또는 기한은 카이로스다. 마가복음과 전도서에서도 카이로스의 때를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 1장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전도서 3장
매사에 때가 있다.
1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5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6   찾아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9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10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11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12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13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14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15   지금 있는 것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하신다.
16   나는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 악이 있다.
17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의인도 악인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모든 행위는 심판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18   나는 또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짐승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을 시험하신다.
19   사람에게 닥치는 운명이나 짐승에게 닥치는 운명이 같다. 같은 운명이 둘 다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가 죽듯이 다른 하나도 죽는다. 둘 다 숨을 쉬지 않고는 못 사니, 사람이라고 해서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모든 것이 헛되다.
20   둘 다 같은 곳으로 간다. 모두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21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 땅으로 내려간다고 하지만,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22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겠는가?

 
 왜 하필 그 때 그때가 찼다고 했을까? 과연 맞는 말인가? 이미 구약시대부터 있어온 메시아에 대한 대망, 그것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다고 바울은 자신의 변화를 봐도, 예수님의 활동과 십자가를 봐도,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봐도, 시대적 상황을 봐도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그 때가 그때일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구약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루어진, 인류를 위한 예수님을 보니, 그때가 찬 것임을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때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조건들이 그렇게 믿게 하는 것처럼, 여러 조건을 보면 바울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지만 바울은 자신의 관점에서, 체험에서 그렇게 믿은 것이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율법 아래 사람들을 속량하여"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대속물 속죄물이 되어 율법 아래 죄를 속량하여서란 말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우리에게 아들의 영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 주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영인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 교리가 초보적인 것이 되었지만, 우리들이 믿었던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처럼, 바울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 설명이 다음에 있다. 믿음에 대한 불신이 있었을 때, 갈라디아 교우들은 불신하는 요소들을 의지하고 있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8   그런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본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을 하였지만,
9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으로 되돌아가서, 또다시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고 합니까?
10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11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
 
 우리식으로 보면, 일진, 금목수화토, 별자리, 명리학, 사주팔자와 관상, 주역에서 불교 유교로, 점 보기, 등등을 의지하려 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믿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시험이다.

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게 해를 입힌 일은 없습니다.
13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4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의 그 감격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16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습니까?
17   위에서 내가 말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게서 떼어놓아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자기네들을 열심히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여러분에게 열심을 낸다면,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일입니다.
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20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란 믿는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 되기다. 이마고라는 이미지 형상은 그림자다. 예수님의 그림자인 예수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아 사람들은 옛날 전통인 율법에 의해 사는 사람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바울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기가 막힌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에서 온 몇몇 유대 율법주의자들인 야고보 추종자들의 선동이 있었겠지만, 왜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들에게 물들고 있는지 당황하고 있었던 바울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하갈과 사라
21   율법 아래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여,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한 사람은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24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은 시내 산에서 나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25   '하갈'이라 하는 것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하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민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2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29   그러나 그 때에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3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와 하갈에게서 난 이삭과 이스마엘을 들어 약속과 자유의 자녀와 종의 자녀를 비유하고 있다. 하갈 이스마엘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이고,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이며, 종이다는 해석이다. 반면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사라고, 자유한 약속의 자녀고, 이삭의 후예고, 상속자란 말이다.
 
 하늘의 예루살렘 사람, 곧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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