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19981101 주일낮예배 본문

설교

19981101 주일낮예배

필명 이일기 2018. 11. 28. 13:04
반응형

19981101 주일낮예배 <느헤미야의 개혁>

1. 루터의 삶-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투사였다.

♥♧♥♧♥♧♥♧ 마틴 루터의 일생 ♥♧♥♧♥♧♥♧

루터는 14831110일 독일의 한 마을에서 가난한 광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가렛은 나무

해왔고 어린 루터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창가에서 노래를 불러 학비를 벌었다.

어느 날 한 귀부인 집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귀부인의 귀여움을 받아 그 집에 같이 있게 되었다.

때부터 루터의 수재성은 더욱 빛을 내기 시작하였다. 음악성이 뛰어났으며 특히 현악기를 잘 켰다. 17세에는

독일에서 가장 큰 엘프드 대학에 입학했다. 3년 후 학위를 획득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서 법

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귀가 도중 돌연한 낙뇌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사망하 는 사고가 발생했다.

루터의 충격은 매우 컸다.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새삼 느 끼고 하나님의 섭리

자기 몸을 드리기로 결심했다. 그후 루터는 가장 엄격한 어거스틴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 동안 얻

못했던 마음의 평안을 수도원에서 얻으리라 희망했다. 단식과 고생, 엄격한 규율에 전심전력했다. 그러

죄의식은 날로 더해갔다. 루터는 "하나님이여, 당신은 미운 존재십니다. 어찌하여 지 킬 수 없는 율법을

주시고 우리로 멸망케 하시렵니까?"하고 부르짖었다. 계율은 엄하고 인간은 약하였 다. 루터의 고민은

육체의 쇠약 만을 가져왔다.

151012월 성도 로마로 간 루터는 성 성트람 교회당 계단(무릎으로 기어오르며 수도를 하는 곳)을 기

올랐다. 두 무릎에 피가 맺혔다. 그러나 그 피눈물의 고행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 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죄와 율법에 점점 노예가 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루터는 그 길 로 계단 오르기를

중단하고 귀가했다. 수도원으로 돌아온 루터는 성경을 읽었다. 주린 자가 음식을 탐 하듯이 읽고 또 읽

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로마서를 읽어가다가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는 한 구절을 읽고 큰 감동

받았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은혜가 그를 사로잡는 듯 하였다. 그는 계속 성경을 읽어 내려갔

. 드디어 로마서 4장 이하를 읽을 때 일대 확신에 도달했다. 그는 `죄인은 복되다. 하 나님의 사랑을 믿는

까닭이다'라는 말을 외쳤다.

당시의 교황은 레오 10세였다. 종교보다도 미술. 문학. 건축에 더 열중한 사람이었 다. 교황의 수입은

막대했지만 교황의 사치성이 그 많은 수입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다가 선 대교황으로 이어

내려오는 위를 돈 받고 팔기도 했다. 나중에는 면죄부라는 것도 만들어 냈다. 사람 들이 모인 앞에서

참회하던 것이 성직자 앞에서 비밀리에 행해지게 되고 죄에 대한 벌금을 내면 벌을 면하게 해주는 일까

생겨났다. 이러 던 것이 레오 10세는 면죄부만 사면 참회가 없어도 면죄가 된다고 공포했다. 그뿐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위시하여 역대의 성직자들의 쌓은 공덕을 면죄부를 통하여 교황으 로부터 부여받는다

것과 연옥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면죄부는 효력을 발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가며 면죄부를 샀다.

루터는 이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1517111일 루터는 면죄부에 대한 항의를 제기하였다.

전문 95개조로 된 항의 논제를 비텐베르그 교회 벽에 게시하였다. 신앙과 회개에 의하여 구원받는 것이

면죄부는 구원을 얻는 길이 아니라고 하였다. 더욱이 사후의 생명이 면죄부에 의하 여 좌우된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하여 전국은 찬반의 두 부류로 나뉘었다. 15206 15일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장을 받았으나 그해 1210일 이를 회중 앞에서 소각해 버렸다. 이 일로 독일의 국

회가 소집되었다. 에크 감독이 루터의 저서를 앞에 놓고 힐난을 했으나 루터는 들꽃 한송이를 손에 들고 그와 맞섰다.

꽃을 기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에크는 루터에게 저서 20권을

취소하겠느냐 못하겠느냐 하는 대답을 촉구했다. 루터는 하루의 유예를 구하고 물 러 나와 그 날 밤을

새워가며 깊은 기도를 드렸다. 동틀 무렵에 루터의 심중에는 강한 힘이 솟아났다. 국회로 갔다.

"사복음서와 선지서의 말씀에 의하여 나의 의견을 취소할 수 없다. 나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말 한 마디를 던지고 나서 루터는 퇴장해 버렸다. 당당히 걸어나오는 루터에게 아 무도 말을 할 수 없

었다. 그러나 회의가 속회되고 루터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국회를 박차고 나오는 길 에 루터는 돌연

누구에겐가 피납되었다. 루터의 행방은 그날 이후 전혀 알지 못했다. 루터 논조에 동조했던 색소니공에

의하여 피납된 루터는 그날부터 은밀한 처소에서 성경번역에 착수했다. 자르지 않 은 머리, 수염, 그 위

무사 복으로 위장한 루터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25년간 루터의 종교개혁운동 은 계속되었다. 마침

교황청에 의하여 유폐되었떤 성경은 날개 돋힌 듯 만백성들 손에 들려지게 되었다.

루터는 키타린 폰 보아라와 결혼하여 33녀를 두었으며 37편의 찬송가를 지었고, 그의 나이 63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승천하였다.

♥♧♥♧♥♧♥♧ 성품이 다른 두개혁자 ♥♧♥♧♥♧♥♧

마틴 루터와 에라스무스 두 사람의 성격도 다르다. 에라스무스가 마틴 루터 이전에 종교개혁 의지를 가

지고 있었다. 여러 번 교황청에 청원을 했었다. 에라스무스는 성격이 온유하여 교황이 하 지 말라고 하면 조

용히 있다가 또 청원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또 조용히 있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 온유하여서 종교개혁

마무리하지 못했다. 반면에 루터는 과감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루터는 controling taking 성격을 가 진 사람이었다.

터의 탁상담화에 보면 "에라스무스는 교황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바나바

처럼 성격이 유순한 사람이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볼 때는 따뜻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품 좋은 사람은 통해서가 아니라, 나쁜 성품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신

.

2. 느헤미야의 개혁 (본문배경 해설)

1) 회개를 선포하다.

포로된 바벨론에서 돌아오는(1,2,3)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죄(하나님을 믿 는다고 했지만 제

각기 하나님을 핑계 삼아, 하나님을 하나님께 등 돌린,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 을 챙기는 삶을 회

개하고

2) 하나님의 전을 먼저 짓다.

그들의 신앙괴 회개의 표현으로 그리고 그들의 결단과 다짐의 표시로 앞으로는 오 직 하나님만을 섬기

살겼다는 각오로 하나님의 전을 먼저 짓는다.

3) 개혁 사업은 이방인들과 혼인 관게에 있던 잘못(택함 받은 자들이 오직 여호와 만 섬기겠다던 자들

이방인과 결혼함으로서 그들이 믿는 이방 신을 섬겼던 것을 회개하고 대대적인 단 죄를 행한다.

3.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종교 개혁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가적으로 부패했다. 그 원인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이다.

이승만에 의한 초대국회 개회에서의 기도- 두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건 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세웠다는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고백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을 기원했다. 다른 해석은 그들이 잘못된 믿음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에 바르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계속해서 오욕의 유산을 남겼다. 대통령을 위해 기도 하지만 그것이 근본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

자신을 드러 내는데 급급한 것이다는 평가가 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4. 성경으로 돌아가자. 신앙으로 돌아가자. 하나님께 돌아가자.

이길 만이 우리의 잘못된 신앙과 잘못된 삶을 바꿀 수 있다.

김진홍 목사의 운동권에 대한 비판 - 운동이 무어냐 너희들의 이념이냐? 아니다. 성경만이 운동이다.

개혁은 바로 성경으로 말미암는다. 지식으로가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하나님의 말 씀을 그대로 사는

신앙이어야 한다. 심지어 신앙도 잘못될 수 있다. 사이비를 보라. 잘못을 바로 잡을 기준은 바로 성경이

. 성경을 그냥 지식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 가는, 꿈적도 않는 내 삶 이 변화되는, 삶을

살자. 전도하는 것은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고 책임성 때문에 확실한 평가 수단이다. 한 마디로 전도하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