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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7. 11 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1999. 7. 11 주일낮예배 설교
제목 : 은혜와 제사
성경말씀 : 히브리서 13장 9-17절
주제 :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된다.
1.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문제(알코올 중독, 원한관계, 마음의 상처, 실망, 좌절, 이혼, 부도, 질병, 마약중독 등등의 사람들이 상시 '죄'라고 표현될 수 있는 문제들)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하기도 하고, "잊으면" 해결된다고 하기도 하고, "병원"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의지력, 돈, 물질, 힘, 권력, 해결사, 상담사, 심리치료사, 최면요법사, 형식적 종교 기법사(사이비 이단 교주), 무당, 점술가 등등이 그것의 해결을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일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판단되고, 또한 그 효험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이지 못하고, 그리고 그들의 부정적인 면도, 부작용도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2.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의 본문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 히브리서 13장 9-17절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
1) "여러 가지 교훈에 끌리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교훈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잘못되거나 오도하는 교훈은 교훈이 아니다. 잘못된 교훈을 쫓지 말라는 말이다. 혹 임시로 또는 상당한 해결책이나 교훈,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들이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정사역을 한답시고 공을 들이고, 그것을 배워 얄팍하게 그것을 말하고 선전하는 이도 있다. 가정사역을 만능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좋은 점이 있으니 그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으나 그래서 무시할 필요는 없으나, 그 맹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가정 사역은 기본적으로 원인과 결과에 관한 학문이다. 가정 사역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문제가 있으면, 예를 들어 이혼지경에 있다든가, 또는 부부가 갈등관계에 있다든가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원인 치유법이 현실을 과거에 비취어 자신의 잘못과 자신을 바라보게 하기는 하여 일정량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인에 관한 해결은 그 궁극성에 의하여도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한 부부가 갈등하는 것 중에 그 문제가 종래에 습관 차이라고 하자. 부인은 깨끗하고 완벽한 것을 추구하여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고 하는 습관과 성격을 갖고 있고, 남편은 그 반대로 별로 정리하는 것을 싫어하여 아무 곳에나 양말을 벗고 방치하고 어지렵게 정리하지 않는 습관과 성격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부부가 항상 사사건건 다투고 싸워서 이혼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을 때, 가정사역에서는 그 습관과 성격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과거 회기를 통하여, 왜 그 사람이 그러한 습관과 성격에 이르렀는지를 밝히고, 그것은 부모 등등의 영향이라고 말한다면, 그 잘못된 습관과 성격들의 원인을 계속 찾아야 한다. 그러면 미궁에 빠진다. 혹 그 분들의 부모 세대에서 그 습관과 성격의 원인을 찾았다고 한들 약간의 도움이 되기는(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이해에서 끝날 수 있고, 순간만 나는 그 원인에 의하여 현재의 나의 잘못된 습관이 생겨서 이렇게 행복하지 않는 부부 갈등을 하고 산다고 하여 그 잘못을 수정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순간 이해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 모든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지도 않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고, 어떤 충격에 의하여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등등의 여러 경험 속에서 형성된 것일 수 있다. 한마디로 종합적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부모 탓으로만 돌려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잠시 수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방 몇 일 안 가서 다시금 재발되는 것이 인간이다. 조금의 수정이 있다해도 해결은 안된 것이다. 또 그 원인을 찾았다 해도 그 원인의 원인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 결국 미궁에 빠지거나 그 원인을 하나님에게까지 그 책임을 돌리게 되어,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하나님만이 잘못된 존재로 파악하게 되어, 원망과 책임전가를 하게 된다. 결국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만들었으니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고 아무렇게나 살게 되기도 한다. 숙명에 빠지기 일수다.
2)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식물은 단순한 식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의 해결을 외적인 어떤 것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요, 은혜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부부가 갈등하게 되었다. 그 원인을 한 순간이나 한 지점에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보다는 여기에는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이 순간 행복해야 할텐데 왜 싸우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반성하고 그것을 통하여 내게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그분의 하시는 말씀을 상고해보면 어떤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된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것은, 갈등하는 것은 결국 상대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야, 또는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야, 또는 자녀를 위해 그런 것이야, 우리를 반성하도록, 또는 이웃을 바라볼 수 있도록, 또는 좀더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것이야 등등의 의미를 찾는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옴을 느끼게 된다. 아! 이 세상에 나를 살게 하신 하나님,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등등을 깨닫게 된다. 그때 부부는 서로를 향하여 사랑의 눈빛을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게 하고, 감사하고, 찬미를 올리게 된다. 마음에 은혜로써 굳게 함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고 유익한 것이다.
3)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다.
은혜는 나의 의지로 외형적 어떤 것으로가 아니다. 식물로써가 아니다. 돈으로가 아니다. 제사로써 가능한 것이다. 내가 식물을 음식을 제물을 드림으로 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제사를 통하여 값없이 은혜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은혜를 접하게 된다. 하나님 없이는 은혜가 없다. 그러므로 진실한 은혜는 진정한 제사를 통한, 제사라는 것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내려지는 것이다. 옛날 구약시대에도 성문 밖에서 제물의 육적인 부분은 밖에서 태우고 피만 가지고 들어갔다. 에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았다. 외형적인 식물은 우리의 의지나 힘이나, 돈이나 어떠한 해결책으로가 아니라 고생하고 갈등하고 고난받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우리는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은혜에 들어감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 또는 남에게 상처를 받아 괴로움에 있는 사람이 그 상처를 또는 마음의 원한을 분노의 감정을 풀 수 있는 것은 원인을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오 또 심리 치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종래에 하나님을 만나 그분께 그것의 연유가 나를 이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역사 가운데 겪는 고난이요 사명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해소되고 치유함을 궁극적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만 카타르시스(해결됨, 해체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명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4)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했다.
선이라는 말이 윤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살도록 하신 그것을 말함이다. 선을 행함이란 그것을 행함이다. 서로 나눠주기를 이란 그것을 서로 나누라는 말이다. 물론 세상의 물질을 나눌 수도 있다. 각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뜻을 서로 나누라는 말인 것이다.
5)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했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삶, 하나님을 만나는 제사의 삶, 은혜를 받는 삶, 그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말씀이다.
6)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했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그분의 우리를 향한 명령과 바램과 우리의 이 세상에서 왜 사는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그렇게 살도록 잊기 쉽고 건망증 많은, 배반하는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는 복종하도록 하는 인도자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전달자, 인도자는 이것만을 생각하며 깨어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그러한 삶으로 일관하는 하나님의 사자이기에 그들이 즐거움으로 이 일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말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도록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제사를 은혜를 입도록 한다는 말씀이다.
3. 결론적으로 인생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는 것이 없이 문제 해결을 받지 못함을 알게 된다. 제사에 들어가고, 은혜를 입는 믿음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찬미하며, 그 사명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살고, 그 사명을 귀중히 여겨, 이것을 못 깨닫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증거하며 하나님을 만나 문제 해결을 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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