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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06 주일낮예배 스릴러(thriller)(괴기, 공포영화) 성경 : 에배소서 4장 13-24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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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06 주일낮예배 스릴러(thriller)(괴기, 공포영화) 성경 : 에배소서 4장 13-24절

필명 이일기 2018. 12. 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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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06

주일낮예배

스릴러(thriller)(괴기, 공포영화)

성경 : 에배소서 413-24

주제 :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말고 심령이 새로워져 새사람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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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이면 방송사에서 스릴러로 사람들을 오싹하게 합니다.

- 실예(귀신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단정하고 스릴러를 방영한다)SBS 입장(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하지 않는다)

실제 귀신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있다고 증거를 대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귀신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어왔습니다. 성경에도 그 현상을 말하고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약에만 나오는 귀신이라는 용어는 총 100회 사용되었습니다.(사단 : 48)

지난주 위성방송에서 외국의 프로그램(과연 귀신은 존재하는가?)은 있다는 입장과 없다는 입장 양자들의 현상을 보여주면서 확실한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오히려 인간 환경과 교육과 인식에 의한 현상이 아닐까 추측하고 끝을 맺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아직도 그 명확한 입증을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귀신의 실체가 인간 두뇌작용과 연관되어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이 귀신의 현상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귀신이 존재하든 않든 간에 인간들은 귀신이야기를 통하여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송의 영향은 엄청납니다. 귀신을 말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면 그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더위를 이기기 위한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문화를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 귀신을 의지하게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광부 장관이 최근 방송사의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하여 경고를 했습니다.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요즈음 세태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세태, 세상의 가치관이 다 이 모양입니다.

일반적인 요즘 세태를 특징 지운다면 두 가지 - 황금만능주의(욕심, 쾌락), 가치관의 혼란(무질서)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인생이 보람있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모르고, 그저 돈 잘 벌고 배불리 잘 먹고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면 귀신 쫓기, 과학에 의존하기로 그저 갈피를 못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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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상에 오늘 본문이 주는 의미, 특히 믿는 여러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 에배소 지역은 소아시아 상업 중심지, 전략적 요충지, 종교적 중심지-다이아나(로마식 이름) 또는 아데미(헬라식 이름)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

* 에배소 교회는 아시아 처음의 교회.

* 에배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 함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 거지로 살아가는 무 리들에게 보낸 편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자!

* 본문 주요 단어 : 사람의 궤술, 간사한 유혹, 풍조, 요동, 자랄지라, 마음에 허망한 것, 무지함, 마음이 굳어 짐, 감각 없는 자, 방탕, 방임,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함, 유혹의 욕심, 구습, 옛 사람, , 진리, 거룩함, 새사람

 

1.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라! 충만하라! (가치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14절에 의하면 세상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의 풍조가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흔들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가치관에 의하여 삽니까? 귀신을 멀리하는, 귀신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사십니까? 최소한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은 여러분에게 괴로움을 주고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 세상의 널려있는 무질서한 가치관, 쾌락과 욕망의 가치관을 쫓으시렵니까? 세상 흘러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세상대로 따라 사시겠습니까? 그것은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남이 시장가니까 나도 따라가는 식의 삶을 살다간 돌이키기 어려운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창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30(1923-1929)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백악관에서 잠을 잤던 사람들은 이따금 아침 식사 때 크게 당황하는 체험을 해야했습니다. 손님들이 대통령과 함께 각 자리에 앉았는데, 대통령은 커피 잔 받침접시에 커피를 붓고 설탕과 프림을 타니까 손님들은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것을 따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접시를 고양이에게 주려고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일부 프로를 그대로 따라하는 모방풍조가 있습니다. 유익하면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문제 있는 프로는 가감 없이 비판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교과서에 나오면 정답이었는데, 요즈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 정답이 되어있는 풍조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을 비칠 뿐입니다.

한편 교육프로그램들은 많은 유익을 줍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프로가 재방송까지 되고 있는데, 인기가 있고, 상당히 유익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강의를 하는 그(독신자)와 가수 조영남(이혼자)(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그를 그 강의에 초대하여 그 자신의 입장을 강화했음)은 문제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둘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옅은 신학을 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심 없이 신학을 했고, 학문으로만 연구했으며, 신앙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미국에서(하버드대), 중국에서, 원대 한의대에서, 사회학과 신학과 철학과 한의학을 연구한 김용옥이고 고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그입니다. 교만한 모습이 그들의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비판합니다. 그의 생각은 일반 대중들은 압도할지 모르나 전문 지식인들에게는 비판받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자신은 현재 한의업을 하지만 한의학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유리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노력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용옥은 예수를 믿지 않고 학문으로만 연구하여 노자와 비교하였는데 그는 쾌락주의의 에피쿠르스 철학을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을 합리화한 철학으로 삼고 그것을 무지하고 나약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는 것입니다. 욕망이 가득합니다. 이 세상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을 하나님 수준으로 알려고 하는 교만한자요 욕망이 가득한 입니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편을 그 수많은 정력과 시간과 경비를 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 것입니다. 결국에는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는 그들의 실제 어떻습니까? 그렇지도 못하고 오히려 유리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즈음의 풍조는 바로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쾌락의 끝은 파멸의 구렁텅이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풍조에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풍조에 요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사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욥기 17, 2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세상 풍조를 조장하는 것들과 백성과의 관계를 스가랴와 마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02>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하나님은 세상 풍조에 요동하는 이들에게, 또 그것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예레미야 3122> 패역한 딸아 !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고 묻습니다.

 

믿는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신학자 키에르케고오르가 문학의 종말에 대하여 말한 유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무대는 어떤 극장입니다. 그 극에 나오는 주인공인 희극배우는 각광을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서 침착한 음성으로 지금 이 극장에 방금 화재가 났다는 사실을 관중들에게 일러줍니다. 그는 관중들이 이 사실을 알게될 때에 일대 공황과 수라장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일부러 침착한 어조로 이 사실을 공포합니다. 그러나 거기 모인 관중들은 이것도 그 희극배우의 하나의 웃음거리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여, 가벼운 희극으로 취급하여 한층 더 큰소리로 그 배우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큰 고민에 싸인 그 배우는 그들이 어서 바삐 조용히 일어나서 이 극장을 떠나가기를 애원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전보다 더 큰 소리고 박수갈채를 그에게 보냅니다. 그러는 동안에 불은 점점 맹렬히 그 극장 전체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극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전부 화염에 둘러 싸여 나갈 길이 막혀 불에 타 죽을 때까지 이 갈채는 계속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기 착각 속에서 이미 오염된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자신을 화염에 스스로 몰아넣는 삶을 세상 사람들은 삽니다. 세상 온갖 풍조들에 의해 오염된 채 화염에 휩싸여 사는 것입니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새사람이 되라.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1) 의로 살라

세상에는 불의가 판을 칩니다. 구습과 세상의 유혹은 불의를 쫓습니다. 그래야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혼을 팔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지만 그 약속이 다하면 그 생명은 끝이 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목숨과 욕망을 바꾸시렵니까? 세상의 불의를 쫓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만 잠시뿐인 순간의 쾌락을 위해 여러분의 귀한 영혼을 팔면 그것은 파멸입니다. 의롭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요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로 사는 것은 죄 가운데 사는 것이요 영혼을 파는 것임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2) 진리로 살라

거짓된 세상의 허울, 새긴 조각, 인간이 만든 조형물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의 대표가 바로 인간 스스로 만든 지폐나 돈 그것에 얽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왜 텔레비전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관심을 사려고 합니까? 그것은 상혼과 선정성과 인기와 욕망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복음의 말씀, 곧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의 표현인 진리로 살아야합니다.

3) 거룩함으로 살라

요즈음은 거룩하게 사는 것이 무시되는 세상입니다. 편하면 되고 멋이 있으면 되는 세상입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눈쌀 찌푸리지 않게 삽시다. 내가 내 몸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은 자극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발가벗을 때도 있지요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비속하게 사는 것이 편한 것이요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비속하므로 비속해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한마디로 말씀 드리면 믿음으로, 그리스도로, 살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비계살

노르웨이의 들오리가 추운 겨울 날 기후가 덜 추운 덴마크로 먹이를 찾아 내려왔다. 해빙기가 되어 노르웨이로 다시 돌아가는데 덴마크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먹이가 많이 보였다. 다른 동료 오리들은 날아가는데 한 마리가 내려 그 맛있는 먹이를 실컷 주워 먹었다. 그 먹이에 정신이 팔려 동료들을 잊고 6개월이 되자 추운 겨울이 되어 동료 오리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 오리는 자기도 합세하려고 하였으나 너무 살이 많이 쪄서 날아갈 수 없었다. 다시 주저앉은 오리는 많은 먹이를 먹으며 지냈는데 또 다시 6개월이 흘러 동료 오리들이 고향으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시도했으나 전번의 반도 못오르고 주저앉았다. 그 오리는 몸이 너무 비대해져 고향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비계살로 너무 비대해지면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새사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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