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001224 제목 : 소외와 성탄 성경 : 마태복음 11장 1-30절 본문
20001224
제목 : 소외와 성탄
성경 : 마태복음 11장 1-30절
주제 : 믿음과 전도
01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0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0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 0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0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0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0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0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0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 선지자를 보려더냐 ?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0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구조 :
1) 인간들의 상처(버려지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과 인간들)
2) 예수그리스도와 성탄절(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3) 한국교회와 믿는 이들의 삶(MBC PD수첩과 한국 기독교 비판)
구세주가 났으니 그를 믿고 그를 따르는 삶은 귀한 것이다.
4)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따라 믿음의 삶을 살며 그 복음을 전하자.
1)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와 의문과 절망과 불안과 건강치 못함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살아간다. 특히 올해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꽁꽁 얼어붙어 불안 심리가 만연하다. 해직 걱정, 일 못하는 것 등으로 심리적 공황 속에 있다. 이 때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감사한 것이다.
한편 수많은 남자들이 집안에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일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냥 나날을 지내며 괴로움 가운데 산다. 전도하려 가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대부분 남자들이 집에 없었으나 요즈음은 여자들이 집에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여성들이 일하는 사회가 되었다. 옛날 이 부분에 대하여 설교한 적이 있다. 여성들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여성들이 축복을 받았다고. 남성들은 지금이라도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교회에 여성이 많았던 시절의 하나님이 섭리하셨던 계획이었다. 물론 오늘날도 아직은 남자들이 여성보다 그 수에 있어서 많이 일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있다. 경제가 어려워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일자리가 없다.
남녀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이들이 일하지 못하고 있는, 생계 문제를 힘들어하는 요즈음의 상황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린아이들이 버려지고, 자녀 양육에 어찌하지 못하는, 통제 불능의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부모들을 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생각할 때 가슴 아프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을 버리겠는가? 주변에 집에서 놀 수밖에 없는 아버지, 남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 손이라도 잡아주어야 한다. 기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모두도 어린아이를 버리는 부모와 하등의 차이가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들이 특별해서 그들과 같은 형편에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도 다 마찬가지 존재들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직장을 잃는다면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인간은 불쌍한 존재들이다.
이와 같은 인간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은 큰 의미가 있다.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 죽은자, 가난한자와 같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오셨다.
사람들이 그를 불신하지만,
마치 광야에 허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하지만,
그는 우리 고난받는 인간들을 위해 오셨다.
죄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오셨다.
그가 우리를 향하여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셨다고 우리는 그를 무시하고 팽개쳐버리지만,
우리에게 직장을 구해주지 못하고,
쾌유의 병 고침을 줄 수 없다고 무시하지만,
우리와 같이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사는 것으로 그를 무시하지만,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고 하니 먹기를 탐한자요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인식하여 무시하지만,
진실로 순전한 마음이 있는 자에게는 그 비밀을, 그 신비를 하나님은 깨우쳐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우리에게 자신에게 오면 쉬게 해주신다고 했다.
문제해결과 평안을 느끼게 해주신다고 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낸 것이요, 그 구원의 섭리를 우리에게 펼치시는 것이다.
호성보육원에 수용되어있는 아이들( <어떤 사랑 하나> 몇 년 전 나는 보육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공식적인 표시명이 보육원이고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고아원이다. 4살부터 18살까지의 아이들이 90명쯤 수용되어 있던 곳이었다. 부모가 안계신 아이를 `고아'라 여겨왔던 내 통념이 깨진 건 그곳에서였다. 아이들의 환경조사를 하던 나는 80명 이상의 아이들이 양부모 중 한 분이 생존해 있고 양부모 모두 건재해 있는 경우도 많은 걸 알고 놀랐다. 7살짜리 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가출한 뒤 어머니는 어느 날 현이를 재워놓고 혼자 집을 나간 것이다. 처음 수용되어 왔을 때 현이는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도 잘했고 조금만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오실 거라고 묻지도 않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성격도 밝았고 똑똑한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녀석이 조금씩 기가 죽기 시작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하루에 몇번씩 나에게 달려와서 "선생님 우리 엄마 안 왔어요?"하고 묻던 그 또랑또랑하던 음성이 힘이 없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녀석은 아주 말을 잃어버렸다. 묻는 말에 대답을 안하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싫어했다. 지켜보던 내가 당황해서 타이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모두가 허사였고 그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선생님들의 말조차 안 들었다. 종일 어느 구석에 앉아 밥도 먹지 않을 때도 있고 놀이공부시간에도 조금의 흥미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자연히 또래들에게서 고집장이로 따돌림을 받게 되었고 할 일이 너무 많은 보육사 선생님들에게는 골치 아픈 아이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도 접근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밥도 저 안 먹고 싶을 때는 아무리 먹이려 해도 거부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 한마디 않고 그네에만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차츰 얼굴도 해쓱해지고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스물 아홉 살의 예쁜 아가씨 후원자를 만난 건 그 즈음이었다. 친구소개로 왔다며 한 아동과의 결연을 원했을때 나는 현이 얘기를 자세히 해주었고 그녀는 기꺼이 현이의 후원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매달 후원금을 보내주었고 일주일에 두번쯤을 들러서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갔는데 특별히 현이에게 얘기를 많이 했다. 땅바닥에 앉아서 말 한마디 않고 낙서만 하는 현이의 곁에 쪼그려 앉아서 백설공주 얘기랑 로봇 얘기를 해주기도 하고 장난을 걸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에는 꼭 현이를 안고 가서 현이의 얼굴이랑 손발을 씻기고 정성스럽게 자기가 사온 크림을 발라주고 볼에 살짝 뽀뽀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녀석의 무반응과는 상관없이 올 때마다 웃는 얼굴로 그 일들을 계속했다. 곧 지치리라 걱정했던 나는 그녀의 끈질김에 감탄했고 라면 몇 박스 사다주고 지방신문에 이름내던 어떤 어른들은 그만 두고라고 일년치 후원금 한꺼번에 다 내고 아이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던 후원자들에게 실망한 내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거기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녀는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동생 둘을 돌보는 그리 넉넉지 못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내 얘기에 "저 나이에 엄마사랑이 얼마나 받고 싶을까요. 너무 가엾어서 아주 조금만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하며 환하게 웃었다. 현이가 그녀에게 대답을 하고 웃기 시작한 건 결연이 되고도 시간이 많이 지난 뒤였다. 조금씩조금씩 아이답게 떠들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림을 아주 잘 그려 우리를 놀라게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오면 가장 먼저 뛰어가서 안기고는 까르르 웃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그들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사랑의 표현과 관심이란 걸 다시 깨달았다.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얼굴을 씻겨주고 하는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따뜻한 사랑이 전해질 때 한 아이를 변화시킬 만큼의 큰 힘으로 나타날 걸 나는 본 것이다. 얼마 후 크리스마스 전야의 행사에서 현이는 사람들을 한번 더 놀라게 했다. 그녀와 함께 열심히 연습한 율동을, 그녀가 정성스레 챙겨 입혀준 산타 복장으로 나와서 깜찍하게 해 낸 뒤 자기는 다음에 커서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선물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씩씩하게 말했을 때 장내가 온통 환성과 박수로 넘쳤고 참석한 다른 후원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말았다. 현이의 부시도록 밝은 얼굴빛과 생기 있는 말소리는 보육사 선생님들을 눈물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내가 그곳을 그만두고 세월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연말에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다고 외칠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스물 아홉이었던 그녀를 기억한다. 현이가 장가 갈 때까지는 지켜보고 싶다던 그녀는 지금도 현이에게 줄 크리스마스선물로 스웨터를 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땅에 오셨다. 사랑은 내려다보며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등함으로 나누어 주는 것임을 생각하며 지금 어느 곳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나는 사랑을 나누는 이가 있을 것을 오늘 같은 날 또 새롭게 믿어본다. 낮은울타리 중에서...)의 부모들, 그 아이들의 관리자, 모두 부패했지만 우리와 똑같은 존재들이지만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그 연유(욕망, 죄 등)를 생각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로하신다. 마치 우리가 그 못생기고 말듣지 않는 그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동정심이 있어서 그들을 후원하고 봉사하는 것 이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그의 구원의 섭리를 드러내신 것이다. 달라 들고 원망하고 되바라진 모습에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이들 만이 아니다. 부랑인들, 노숙자. 그들을 돌보시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죄 없이 옥에 갇힌 사람들,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소외된 모든 이를 돌보시는 것이다. 부부간에 생활이 어려워 자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일을 봐주는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회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돌보신다. 부부싸움으로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격 차로 인해 갈등하는 사람들을 위하시는 것이다.
3) 이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그의 사랑을 위하여, 그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마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을 나누고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결코 자신의 욕망과 죄악에 물들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구하는 그것이 결코 나뿐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오용하는 똑같이 욕심에 사로 잡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단체가 ,심지어 교회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떻든 하나님의 역사 그 자체가 나뿐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매도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 김모교수와 mbc 의 PD수첩이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근본적으로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모두 몰아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더구나 그런 것으로 선의의 피해를 입게 하는 것은 더욱 잘못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절망과 좌절과 상처와 괴로움을 구하시고자 한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신다. 모든 인간이 그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신다. 이 일에 교회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교회는 존재한다. 우리 교회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우리 교우들은 이 역사를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며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을 가르치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죄악을 고치시려고 감싸 안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다.
구세주가 났으니 그를 믿고 그를 따르는 삶은 귀한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 그것을 불신하는 사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들의 형편을 보건대 더욱 그렇다. 오늘과 같이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때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구하고 귀한 것이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결코 우리를 위한 평안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지 무시되거나 없애야할 그 무엇이 아니다. 도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도덕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불쌍한 영혼이 더 귀중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그의 은총을 받는 여러분, 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사랑 받는 여러분은 행복하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따라 믿음의 삶을 살며 그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 그것에 감사하고, 그 은총 아래 행복을 찾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역사를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여러분에게 보람있는 인생이 주어질 것임을 확신하고 그 길을 멈추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생활 합시다. 사랑 받고 사랑하는 삶을 이룹시다. 구원의 은총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10107 주일낮예배 제목 : 믿고 구하여 다 받으라 성경 : 마태복음 21장 18-22절 (0) | 2018.12.04 |
---|---|
20001231 주일낮예배 제목 : 저문 해 성경 : 디모데전서 1장 3-7절(2장 1-7절) (0) | 2018.12.03 |
20001217 주일낮예배 제목 : 벧엘과 벗음 성경 : 창35:1-15 (0) | 2018.12.03 |
20001210 제목 : 목자 성경 : 사40:1-31 (0) | 2018.12.03 |
20001210 제목 : 목자 성경 : 사40:1-31 주제 : 믿음 (0) | 2018.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