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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6 제목 : 심는 씨 성경 : 고린도후서 9장 1-15절 주제 : 봉사, 구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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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6 제목 : 심는 씨 성경 : 고린도후서 9장 1-15절 주제 : 봉사, 구제

필명 이일기 2018. 12. 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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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6

제목 : 심는 씨

성경 : 고린도후서 91-15

주제 : 봉사, 구제

 

[표준새번역]

1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을 두고,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글을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2 나는 여러분의 열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지난해부터 준비가 되어 있다" 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열성을 듣고서, 많은 사람이 분발하였습니다.

3 내가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우리가 이 일로 여러분을 자랑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내가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말한 대로, 여러분이 준비하고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4 혹시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나와 함께 그리로 가서, 여러분이 준비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이런 확신을 가진 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합니다.

5 그러므로 나는 그 형제들에게 권면하여, 나보다 먼저 여러분에게로 가서, 여러분이 전에 약속한 선물을 준비해 놓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이 선물을,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선물로 마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6 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7 각자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8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를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여러분이 쓸 것을 언제나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9 이것은 성경 말씀에 기록한 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로우심이 영원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서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 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13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14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보고,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15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서론

지난 62830회차 로또복권은 당첨번호가 8,17,20,35,36,44이었습니다. 충북 청주와 전주에서 각 1명씩 당첨됐는데, 전주에서 로또복권 추첨 사상 처음으로 1등 당첨자가 나온 것입니다. 주인공은 전동 시내버스터미널 앞에 위치한 꽃샘슈퍼에서 매주 일요일 복권을 정기적으로 구입해 간 5060대 남자로, 공무원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라는데, 71일 현재 당첨금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1등 당첨금은 1745,7111,000원으로, 2명의 당첨자가 각각 872,8555,500원씩을 나눠 가지게 되는데, 실수령 금액은 세금 20%를 제한 645,9131,070원이랍니다.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또 그 주인공은 그 돈을 어디에 쓸지 궁금합니다.

본래 복권은 선한 곳에 쓰도록 사람들이 기부하는 데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부행위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선한 일을 위하여 기부금 중 일부를 행운으로 당첨되도록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고, 그런 뜻에서 복권을 산 모두에게가 아닌 몇 사람에게 행운을 주는 것이지요. 구호와 구제를 위해서 하는 기부(헌금)를 위한 본 뜻은 사라지고 일확천금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고 강제적인 매표행위로 전락된 복권제도 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각 절을 이해해 보자.

1절에서 성도를 섬기는 일이란 8장에서부터 계속 다루어 온 문제로(8:4)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때 몰아친 심한 기근으로 인해 생활이 몹시 궁핍해졌기에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한 구제 헌금 내는 일을 가리킵니다.

2절은 구제 헌금을 모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쓸 필요가 없는 까닭은 그 일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원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참고 : 아가야는 바울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고 고린도의 수도. 고린도 교회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 본절은 바울이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고린도)에서는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준비하였다고 자랑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8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헌신을 고무시키기 위해 마게도냐 교인들의 모범에 관해 말한 것처럼 본장에서는 과거에 마게도냐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을 소개했었습니다. 그 표현을 격동시켰느니라는 경쟁시키는 말로 고린도 교인들의 모범을 보고 늦게 시작한 마게도냐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8:2) 불구하고 이미 구제 연보를 마쳤던 반면, 먼저 시작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어서 이제는 도리어 마게도냐인들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3'이 일'이란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자랑하였던 바 고린도 교인들이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기가 한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형제들을 보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모금 운동이 바울의 자랑에 비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4절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시작과는 달리 구제금을 다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은 두 가지 걱정을 하는데, 첫째는, 만약 바울이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고린도를 방문할 때까지도 구제금 사업이 지지 부진(遲遲不進)한다면 마게도냐인들이 보기에 고린도 교인들은 형제된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주님께 대한 헌신이 없는 형편없는 성도들로 보일 것이라는 것과, 둘째는, 마게도냐 성도들에게 바울의 신뢰가 실추되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며 더 나아가 고린도교인들을 믿었던 바울 자신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일이 현실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습니다.

5절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바울의 의지가 다시 드러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 일행을 보내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고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으로 심리적으로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한 것입니다. 바울은 구제 헌금에 관한 모든 결정은 고린도 교인들 스스로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또한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에 대한 약속을 스스로 지켜주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만에 하나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를 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있다가 바울과 고린도교인들이 간 다음에 마지못해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보가 아닌 것이지요. 본문에서 쓰인 '연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기안''좋은 말', '찬양', '후한 선물', '축복'의 의미를 갖습니다. '축복'으로서 '참연보'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으로 '참연보'는 의무에 의해서나, 체면 때문에, 또는 자랑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책임 의식과 신앙적 사랑에 의해서 하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참연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었으며, 이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6절의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은 잠11:24,25과 잠19:17을 인용한 것으로 '뿌리는 것에 비례해서 거둔다'는 추수의 비유를 통해 적극적인 헌금의 필요성 및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베푸는 사람은 그 만큼 많은 것으로 축복을 받지만, 적게 베푸는 사람은 그 아낀 것이 모아지지도 않을 뿐더러 돌아오는 것도 적어 늘 가난할 뿐인 것이지요. 이것은 내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겠지요.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곧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므로 그렇게 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많은 상급을 받지만,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한 사람은 그 쌓아둔 것이 없으므로 받을 상이 없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6:19-21 12:33,34 6:7)

7절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란 연보의 액수가 많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충동적이거나 우연한 결정이 아니라 내적인 결심에 의해 즐거운 마음으로 연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누가 자랑하거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또는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많이 바쳤다면 그것은 참다운 연보가 아니겠지요. 본절에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라는 말은 주기 싫은 것을 아까워하면서 연보하거나, 대의 명분이나 외부적 압력에 의해 연보를 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즐겁게 주는 자를 축복하신다'는 잠22:8의 인용입니다.

8절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주실 능력이 있는데 이는 착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복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복은 그의 뜻대로 주시는 것이지요. 이는 많은 선행이 하나님께 복 받은 조건이 아니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불행에 처한 형제들을 위하여 구제금을 내는 것은 선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선행은 그가 그토록 반대하는 바 율법의 요구에 복종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율법주의에 대한 반대와 모순된다고 볼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단 율법주의와 다른 것은 선한 행위를 하되 의롭게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된 결과로 한다는 것입니다. '넉넉하여'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헬라어 '아우타르케이안'은 스토아 철학의 견유학파에서 '자족', 또는 '충족'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 개념은 인간 자신의 내재적 잠재력 안에서 완전히 만족하는 존재, 즉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만으로서 완전한, 독립적인 인격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결국 스토아적인 '넉넉함'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인 반면 바울이 말하는 기독교적 '넉넉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토아적 단어를 사용하되 스토아적 개념이 아닌 기독교적 의미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9절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는 시112:9을 인용한 것으로 가난한 성도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의와 일맥 상통(一脈相通)하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런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방법은 즉시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이었습니다. ''는 마 6:1,2에서 나타난 '' 개념과 동일하게 '자선을 베푸는 것'을 의미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10절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란 사55:10과 호10:12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인용한 말입니다. '씨와 먹을 양식'은 본래부터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추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심을 것을 주시고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11절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이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인들을 부요하게 해주시는 것은 그들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말입니다. 또한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란 고린도 교인들이 후한 구제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가 되고,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는 유익이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제 연보의 수혜자들이 그 연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절 이 봉사란 용어는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를 한 것'을 말하는데, 헬라어 '레이투르기아스''공중(公衆)'을 뜻하는 '레이토스'''을 뜻하는 '에르곤'의 합성어로 '공적인 섬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뜻하지요. 이렇게 볼 때 바울이 구제 연보 행위를 '봉사'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의 의미를 넘어 예전적(禮典的)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행위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봉사 행위라는 것입니다.

13절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란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의 직무(12)를 잘 수행해 내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나 동정심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즉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것이 바로 참 믿음입니다(1:5).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연보 행위는 그들이 가진 바 복음 안에서의 믿음을 행동으로 고백한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보여준 것입니다.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란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헌금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신들을 도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과 형제애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이방 땅에도 복음을 통한 참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 생겨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진정한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과 덕행이 복음의 본토인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을만큼 보편성을 갖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14절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는 고린도 교인들의 예루살렘 성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섬김은, 위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했고 자신들로서는 중보의 기도를 받을 수 있는 동지를 얻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중보(仲保) 기도를 한다는 것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에 형제애가 생겨났음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이와 같이 두 교회가 민족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연대 의식을 갖게 된 것은 기독교가 더 넓게 뻗어 나가는 역사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런 변화는 할례를 받아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을 만큼 유대인 성도와 헬라인 성도 사이에 있었던 좋지 않은 감정들(15:1-21)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는 '사모하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포둔톤''그리워하다', '애정을 보여주다'의 뜻으로 바울이 그의 개종자들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였습니다(1:11 1:8 살전3:6). 본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고린도 교인들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인들이 고린도 교인들과 교우 관계를 맺고 형제애를 나누기 원한다는 것은 단지 예루살렘 교인들이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한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기꺼이 구제 연보를 하는 것은 단순한 구제의 행위를 지나 하나님의 은혜를 성취(成就)하는 것이었습니다.

15절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고린도 교인들이 베푼 은혜는 그들 스스로에게서 온전한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그 참된 의미가 발견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또 도울 수 있는 물질적 여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모든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카리스)는 고린도 교인들의 풍성한 연보와 그것으로 말미암는 예루살렘 성도들과 고린도 성도들 간의 화해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14)를 의미합니다.

 

정리하자면 예루살렘에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구제하도록 합니다. 이는 단순히 구제하는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 예루살렘교인들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2. 예루살렘교인들은 고린도인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3. 예루살렘 교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4. 예루살렘 교인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감사하게 생각게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했던 것입니다.

1. 고린도교인들은 예루살렘 교인들을 구제한 것입니다.

2. 고린도교인들은 구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복(은혜)을 받은 것이다.

3. 고린도교인들은 복(은혜)을 나누었습니다.

4. 고린도교인들은 복(은혜)을 받게 될 것입니다.

5. 고린도교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이 심은 씨가, 고린도교인들의 심은 씨가 이토록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그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구제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또한 이 고린도교인들의 구제로 인하여 다른 문화와 민족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1989. 10. 24 창립, 국내적으로는 결식아동들에게 급식비 지원사업,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서 무료로 식사를 제공, 경로당을 운영, 영세장애인 시설의 주부식비를 지원하며, 빈곤 장애인 가정에 직접 반찬을 배달 중증장애인을 위한 목욕차량을 구입해서 이동목욕서비스를 제공, 실직노숙자 및 장애인들에게 식사를 제공,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 및 갑작스런 질병들으로 단회성 구호가 요청되는 곳을 지원, 또한 북한에 분유보내기 등 수십억을 지원하고 전 세계 27개국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지원 사업 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봉사정신을 실현하며 선교하고 있다. 새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와 국가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까?

결론

구제, 봉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는 마음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복을 받았다는 마음으로, 복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우리 이웃을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곧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임입니다. 구제와 봉사로 복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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