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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1 제목 : 따뜻함 성경 : 열왕기하 4장 8-37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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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1 제목 : 따뜻함 성경 : 열왕기하 4장 8-37절

필명 이일기 2018. 12. 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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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1

제목 : 따뜻함

성경 : 열왕기하 48-37

 

날씨가 대단히 추워졌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이라는게 기본적으로 따뜻한 곳 찾기 마련이고, 또 몸이 움츠려들기 마련이지요. 몸이 움치린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몸의 모든 구조를 생각할 때 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몸을 움츠린다하는 것은 피가 잘 통하지 않는다. 하는 것과 또 연관이 있어요. 너무 움츠리게 되면 그러니까 피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니까 차가운 곳에 가면 차가운 곳에 가면...갑자기 따순곳에 있다가 차가운 곳에 딱 나가게 되면 몸이 움춧거리게 되는데 그렇게 머뭇거리게 되고, 움츳거리게 되는데 그때에 혈관이 축소되가지고 피가 잘 안 통하게 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나이드신 분들은 특히 혈압이 있고 이런분들은 갑자기 따뜻한 곳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면은 좋지 않고, 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TV를 보니까 고혈압 환자들이 특별히 뇌경색이 일어나는 때가 언제인가? 보니까 겨울철, 겨울철 될 때가 가장 높더라. 빈도수가 높더라 하는 그런 의학적인 그런 보고서를 내논 것을 봤어요. 따뜻한 데에 있다가 차가운 데로 나가면 그 차가운 것으로 인해서 움추리니까 갑자기 움추리니까 피가 잘 통하지 않는다. 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거지요. 사람은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기 마련이고, 따뜻한 곳에 있어야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차가운 곳에 있기보다는 따뜻한 곳에 있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해요. 물론 추위도 있어야 되죠. 또 더위도 있고 그래야 되죠.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특별히 건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곳에 있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이 겨울철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그 점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몸의 필요를 채워줘야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나이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제가 어저께 그저께 방안에 있다가 거실 쪽으로, 베란다 쪽으로 나가서 잠깐 있었어요. 잠깐 뭐 일을 하는데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잠깐 뭐 이렇게 뭘 보고 있는데 보니까 주변에 있는 것을 살펴보니까... 그 순간에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딱 들면서 감기 기운이 쫙 든다하는 느낌을 받겠드라고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차가운 곳에 오래있으면 감기 들기 쉽고, 또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몇 년전에 일본에 온열 치료기, 그 온열 치료기를 소개하는 것을 봤는데,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되가지고 온열치료 하는 그런 의료 기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 중에 대표적인게 세라젬이라고 하는 거랄지...이런것들이 나왔어요. 온열 치료기가 오히려 수술해가지고, 수술해가지고, 암을 수술해가지고 낫는 것보다도 온열 치료기로 거기에 따뜻하게끔 그 암 부위에다가 대주는 것이 훨씬 더 부작용 없이 치료가 잘 되더라 하는 의학적인 보고서도 있습니다.

지난번 한동안 지금은 다 나았는데요. 한동안 제가 위가 통증이 있었고, 쓰리고 특히 이제 그 (공고게?) 그랬어요. 그 세라젬 그 따뜻한 것을 갖다가 이 위에다 올려놓고, 한참 올려 놓고 난 다음에 보면 그 통증이 사라지더라고요. 왜 그러겠는가? 사람은 따뜻한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야 피가 통하거든요. 피가 뭐냐면 생명이예요. 피가 생명인데 피가 통해야 되고, 거기에 신경이 이 펼쳐있는데, 그 신경들은 추운 곳보다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기 마련이예요. 그러니까 건강을 유지할려면 어떻게 보면 따뜻한 곳에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이 맞는 말일 수 있어요.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아주 길게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수넴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넴여인이... 두 가지 행동을 잘 지켜봐야 되는데요. 8절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그렇게 나와 있어요. 여기에 이 수넴여인을 표현하는데, 그 여인이 어떤 여인이었냐 하면 귀한 여인이었다. 여러분 이 개역 성경에 보면 귀한 여인이었다 그러지만은 어 그 새번역에 새번역에 의할 것 같으면 이 여인을 뭐라고 얘기 했냐면 부유한 여인이었다 그랬어요. 그니까 귀한 여인, 물론 부유한 사람이 없는 시절에 그 돈 없고, 그런 시절에는 부유한 사람이 귀한 사람이죠. 귀한 여인이었는데 그 귀한 여인이 누구냐면 돈 꽤나 있는 여인이었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 여인이 여유가 있으니까 이 엘리사 선지자 엘리사를 대우를 했어요. 그 대우 한 것이 어떻게 되었냐하면 음식을 먹게 했다. 그니까 그 집을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이 여인의 집에 가서 식사도 하고, 대접도 받고 그랬다 그 얘기지요. 그것이 일상적이 되어 가지고 그 여인이 이제 이 엘리사를 위해서 그 남편에게 무슨 얘기를 하냐면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서 그러니까 엘리사를 위해서 그런 말이죠. 엘리사를 위해서 우리가 작은 방 하나를 여기에는 작은 방 하나를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 하시이다. 그러니까 그분을 위해서 드리겠다. 그걸 방을 만들고 거기다가 충분히 생활 할 수 있도록, 오셔서 쉴 수 있도록 그런 자기 집에다가 그런 방을 마련해 드리자고 남편에게 상의를 했다 그런 말 이예요. 그래서 결국에 남편한테 허락을 받아 가지고 그 방을 만들어서 그 엘리사를 위해서 공궤를 했다. 진설을 했다. 하는 거예요. 이게 인제 이 여인의 한가지 행동의 특징 또 우리가 주의해서 바라봐야 될 것입니다.

엘리사를, 엘리사를 그냥 홀대하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자기 성의를 다해서 음식을 지나갈때마다 대접하고, 그랬을 뿐만 아니라 이제 집 안에다가 방을 빌려 가지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이렇게 대접해 드렸다 하는 거예요. 그 결과 어떻게 되었냐면 이 부부가 아이가 없었는데, 이 엘리사의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능력으로 인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가 아이를 낳겠습니까?’ 했지만은 1년 지난 다음에 예언대로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 부부가 이 수넴여인이 아이를 나았다 그런 말 이예요. 그런데 좀 컸어요. 이제 이 아이가 커 가지고 이제 우리가 두 번째로 좀 지켜봐야 할 부분인데, 이 아이가 컸는데, 컸는데...자기 아버지가 아마 농사를 지었던 모양이지요? 농사짓는데 가서 도와 줬어요. 어느 날 농사지으러, ..농사 짓는 아버지의 가서 도와 주러 나갔는데 이 아이가 머리가 아픈 거예요. 머리가 아픈 거예요. 이 성경 표현에 의할 것 같으면 내 머리야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성경에 이렇게 문어체로 써 가지고 이렇게 하는 말이지 아이구 머리야 아이구 머리야했다는 얘기죠. , 논에 갔는데, 논에 가서 아이고 머리야 해서 머리가 아팠다는 거예요. 머리에 갑자기 통증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버지가 그 아이를 그 종을 시켜 가지고 그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어머니 무릎에서 이 아이가 죽었어요. 이 귀한 아이가 죽었다는 그런 말이예요. 그래서 결국에 또 다시 이 수넴여인은 그 엘리사를 찾아 가지고, 찾기 위해서 엘리사가 머물던 그 방에다가 이 아이를 눕혀 놓고는 엘리사를 모셔 올라고 보니까 엘리사가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은 내가 안가도 자기 휘하에 있는 게하시라고 하는 그 선지 생도죠 일종에.... 게하시를 보내어 지팡이를 갖다 거기다 올려놓으면 그 아이가 살아 날것이다.’ 하니까 이 수넴여인이 아닙니다. 직접 몸소 가셔야 됩니다.’ 해 가지고 결국에 몸소 가서 한 행동인데 어떤 행동이냐면 엘리사가 방에 들어가서 그 아이에게 한 행동을 써 놨어요. 34절을 한번 보세요. 33절을 보면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그리고 34절에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그러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이가 인제 하늘을 보고, 천장을 보고 누워있어요. 근데 엘리사가 그 배를 깔고 그 아이 위에 올라가서 입을 맞추고, 눈을 대고 이러고 .... 그러니까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런 말이죠. 그 표현을 이렇게 재미있게 썼어요. 그래서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이렇게 나왔어요. 새번역을 보니까 뭐라고 나왔냐면 엘리사가 잠시 내려앉았다가 집안 이곳 저곳을 한번 거닌뒤에 다시 올라가서 그 아이의 몸 위에 몸을 포개어 엎드리니 마침내 그 아이가 일곱 번이나 재채기를 한 다음에 눈을 떴다. 이렇게 써 놨었어요.

지금 여기 이 두가진데요. 두가지를 여러분 우리가 관심을 좀 가져야 된다라고 했는데... 하나는 앞에 이 수넴여인이 엘리사를 공궤한 것, 엘리사에게 봉사한 것 지나갈 때마다 들어 오서셔 식사하세요. 배고프실 텐데,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하면서 식사 대접을 하다가 나중에는 방한 칸 마련해 가지고 거기서 쉴 수 있도록 했다는 거지요. 그 내력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순 없어요. 그 상황을 정확히....그냥 간단하게 이렇게 써 놓아서 그렇지 왜 이 여인이 왜 이 엘리사가 그 집을 앞을 지나가게 되고, 식사를 하게 되었는지... 방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는지. 형편이 그 정도였는지 하는 것들을 우리가 더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어요. 아마 추측컨대 제 생각에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로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바뻤을 것이고 고단했을 것이다. 그런 말이죠. 그래서 옆에서 보고 그 하는 모든 일들이 엘리사가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정말 하나님의 일이고,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인데... 이 여인이 감동해 가지고 정말로 이 분에게 내가 봉사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되요. 그것이 결국에 이 여인에게... 나이들은 그 여인에게 아이를 낳게끄름 하는 그 봉사가, 그 봉사가 이 여인에게 복을 받게 끄름 하는 아이를 얻게끄름 하는 동기가 된거죠. 이 여인이 이 수넴여인이 엘리사를 따뜻하게 맞이했기 때문에 결국에 아이를 얻은 겁니다. 수넴여인이 아무리 길가를 지나가는 엘리사를 보고 아따 저 양반 참 좋은 일 많이 하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야. 당신과 나는 아무 관계없어. 그래 당신이 하는 일 좋습니다. 좋아요.’ 하고 끝났으면 이 여인에게 무슨 아이가 생길 수 있겠습니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 여인이 엘리사를 공궤를 했어요. 엘리사에게 봉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여인이 늦은 나이에 아이를 얻게 되었고, 두 번째 34절에 나와 있는 대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대고, 자기 눈을 그 눈에 대고,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려서 결국에 그 죽은 아이가 눈을 뜨게 되었다. 살아나게 되었다. 하는 그 일이 벌어졌었는데.... 사람이 따뜻하다는 것이 있어야지만이, 죽는다는 것이 뭡니까? 죽는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기가 다 빠지고 따뜻한 것이 다 사라진다는 거예요. 나이들게 되면 몸이 차가워지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젊었을 때 피가 뜨거웠다가 나이들게 되면 점차 점차 사라져요. 이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몸이 차가워집니다. 몸이 차가워진다는 것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요.

시체를 보세요. 시체를 만져보면....여러분 시체 만져 봤습니까? 여러분 시체 만져보신 분 한번 손들어 보세요. 죽은사람, 죽은사람....( ....)우리 김덕순 자매님 만져보셨구만... 죽은 곧바로 말고, 한참 지난 다음에 만져보셨어요? (.......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직도 온기가 있지요. (...........)그럼요. 그럼요. 조금 지나면 하루만 지나면요 시체가 싸늘....만져보면 차가워요. 저는 한번 만져 봤어요. 하루 지났는데 시체를 만지는데 정말로 섬짓하다. 시체가 싸늘하다라고 하는 말이 그런데서 나오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이 죽으면 싸늘하다라고 하는 말이 시체는 싸늘하다. 한번 만져보는데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냐면 왜 사람이 이렇게 악수를 하면... 따뜻한 손을 만지면 훨씬 더 정감이 가고, 포근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손을 만졌을 때 차가우면 어때요? 만지고 싶질 않잖아요. 그런데 그 정도는 괜찮아요. 시체는요 만지는 그 순간에 어떤 느낌이 드냐면 물론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서 그렇겠지만 움찔하게 되더라구요. 움찔하게 ... 차가운 것이 없는 그 시체에 이 죽은 아이에게 이 엘리사가 따뜻하게 해줬다는 거죠. 따뜻하게 했더니 이 애가 살아났다는 거예요. 따뜻하게 했더니 살아났다.... 저는...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고 실제로 처가 여기 있으니까 다 아는데 우리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또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따뜻하게 대하덜 못해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할 때에는 반드시 불화가 있습니다. 차갑게 대하고 쏘아 붙일때에...쏘아붙일 때에는 분명히 상대방이 화가 나 있어요. 기분 좋지 않아요. 냉정하게 아주 냉철하게 딱 쏘아붙이면 그 순간에 상대방이 느낄 때도 기분 안 좋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아이들도... 물론 벌을 줘야 될 때가 있죠. 벌을 줘야 될 때가 있죠. 그러나 따뜻하게 아이를 대할 때 따뜻하게 안을 때에 아이가 풀어지고 바뀌어지지... 뭐라고 한다고 해서 되질 안터라고요. 여러분 다 경험 하셨잖아요. 화를 내고 뭐라고 얘기를 하면 애들이 오히려 더 거부감을 갖고 받아 드리질 않아요. 바뀌어지덜 않더라고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애 앞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안을 수 있었을 때가 애가 바뀐다 그 말이예요. 내 말을 듣게 할려면 내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런 말을 해야 된다 그말이지요. ‘ 니가 알아서 해관심없는 투로 니가 알아서 해그러면 그 아이는 지 알아서 합니다. 내 말 안들어요. 경험있는 내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라고 하는 것을 아는 내가 그 아이한테 좀 가르쳐 주고 싶은데 그 아이가 그 말 듣지 않아요. 그 길 가면 좋지 않은 거..뻔히 알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공궤를 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했다. 이것이 기적적으로 기적적으로.... 젊은 사람도 아닌 이 부부에게 나이든 이 부부에게 아이를 낳게끄름 한거죠. 죽은 아이를 따뜻하게 했더니 눈을 뜨고 살아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과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마치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그것과 비교할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말로 진정으로 내가 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내 마음 가운데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그 아이에게 그 사람에게 또 그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따뜻한 마음을 내가 가져야 되겠다고 해가지고 그래 목사가 설교 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니까 내가 그렇게 해야 되겠다라고 한다고 해서 여러분 그렇게 됩니까? 따뜻하게 내가 해야 되겠다 라고 마음먹는 다고 해서 내가 따뜻해집니까? 따뜻해 지덜 안해요. 왜요? 미운걸요? 상대가 미운걸요? 하는 짓거리가 내 눈에,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따뜻한 마음을 갖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따뜻하게 대 할 수 있겠어요. 저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이쪽에서 저희에게 고소를 했어요. 재판을 걸었어요. 그런데 그 재판을 건 사람이 눈에 내 눈에 사랑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내가 저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겠냐 그말이예요. 나 보고 사랑하라.라고 한다고 해도 내가 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사랑 못하는 겁니다. 사랑 못해요. 목사님이 어떻게 사랑해야지. 사랑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그렇게 합니까? 라고 질문 할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그 마음 ... 제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까... 제가 우리 처에게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하지 못하고 하는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을 제 자신이 깨우쳐요. 그것 안 되는 겁니다. 따뜻하게 아무리 해야 된다라고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 하더래도 엘리사가 따뜻하게 이렇게 했으니까 사람이 태어나더라 다시 살아나더라.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따뜻하게 대했더니 이 여인에게 아이가 생기더라. 그 따뜻한 것을 우리가 알지만은 따뜻한 것이 그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알지만은 우리가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 왜 우리가 따뜻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상대방이 밉고, 내 마음에 가득한, 내가 좋아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 그럼 내가 좋은 마음이 생겨야 되는데 왜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따뜻하게 내가 우러나오고 마음에서 좋아서 기분좋게 되어가지고 부부 지간에도 좋고, 자녀 교육에도 좋고, 가정도 좋고, 이 사회도 좋게 하는 그런 내가 행동을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이 없어요. 내 머리가 바뀌어져야 되요. 내 생각이 바뀌어져야 되요. 내 생각이 바뀌어지지 아니 하는데 내 생각이 바뀌어 질라면 다른 것이 없어요. 엘리사가 이 수넴여인을 보고는 보니까 ~ 이 집에... ’ 여기에 제가 부각을 시키지 아니하였음니다만은 거기에 나와 있어요. 이 여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 보라. 그랬어요. 게하시에게 이 여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한번 알아봐라. 알아보니까 이 집이 자녀가 없더라 그런 얘기지요. ‘그래 자녀가 없으니까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 마음이 생기는 거죠. 엘리사에게 ... 바꿔서 얘기해 볼까요? 수넴여인이 엘리사가 지나가는데 오셔서 식사 좀 하세요. 그냥 식사를 하라고 한다고 마음이 내킵니까? 그게 ... 당신과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생각하면 오셔서 식사하라고 얘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무슨 생각을 했기 때문에...‘아 저 사람을 보니까. 저 양반이 하는 일을 보니까 힘들고 어렵겠구나. 아니 식사라도 내가 대접해야 되겠다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이겁니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 할 수 있어야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 할 수 있어야 내게서 따뜻함이 우러나오는 거란 말입니다. 내 입장에서 나만 고집하면 절대로 내게서 따뜻한 마음이 생길 수 없는 거예요. 내 입장만 주장하고 내 생각만 하고, 내가 옳다라고 얘기하고 내가 다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질 않아요. 내 교만, 높아지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과 똑같은 것이죠. 내가 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내 앞에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 자연을 보면서 인생을 보면서 정말로 이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우쳐 보면 하나님이 보이게 되어 있어요. 나만 쳐다보고 나 자신만 높이니까 세상이 안보이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 하나님을 내가 아닌 하나님을... 주변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바쁜 가운데에도 내 일 하는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가운데에서도 잠깐 주일을 쉬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 자신이 보이게 되고, 내가 바뀌어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게서 따뜻한 기운이 나와 가지고 상대방과 교통이 되는 거예요. 내가 차가우니까, 내가 관심이 없으니까 상대방과 내가 소통이 되지 아니하고, 소통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어떠한 존재라 할지라도 진정 살인하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죄인이라도, 범인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조차도 따뜻한 마음을 갖고 그 사람을 얘기를 들어보면은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요. 그 보는 순간 그것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 줄줄 알고, 도와 줄려고 마음먹고, 저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 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드린 말씀 중에 이 지역에 모 시의원이 그런 행동을 했다. 그 순간에는 우리 마음속에서 저 사람을 정죄하고 저 사람이 그럴 수 있는냐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고 생각하지 만은 그 얘기를 아마 지금 한번도 제가 듣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 왜 그렇게 되었는가 까지 그 인생이 왜 거기까지 갔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들어보면은 그 마음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 당신은 어디서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거기서 돌아 왔어야 되는데 거기서 못 돌아 와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인간인들 어느 악한 사람인들 변화하지 않겠습니까? 변화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은 그 사람을 정죄하고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소통하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 때 상대방을 이해해 주었을 때야 비로소 변화가 있는 거고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이번주 25일은 예수님 탄생하는 그런 크리마스 날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 인간의 죄를 이해하시고 용납하시는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도록 하나님 역사를 이루신 거예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따뜻함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 가운데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상대를 이해 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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