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051225 제목 : 한해를 보내며, 중용? 성경 : 에배소서 1장 3-14절 본문

설교

20051225 제목 : 한해를 보내며, 중용? 성경 : 에배소서 1장 3-14절

필명 이일기 2018. 12. 6. 10:29
반응형

20051225

제목 : 한해를 보내며, 중용?

성경 : 에배소서 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 한해와 황우석 쇼크와 성탄절

올해도 이번 주 한 주 남았습니다. 한 주간 동안이나마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 왔는가 반성해 보고, 새로운 해인 2006년을 계획하시는 기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해인들 다사다난하지 않았겠습니까 마는 올해 그것도 년 말에 우리는 엄청난 쇼크를 받았습니다. 체세포에 의한 줄기세포의 발견과 그 효용성 그리고 그 진위는 차치 하더라도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쇼크는 참으로 과학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온 국민에게 엄청난 혼란을 준 것이 틀림없습니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진실한 것처럼 말하고 거짓이었으니 충격이 컸던 것이고, 엄청난 과학적 발견으로 인하여 치료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불치병 환자들에게 치료의 기회가 생겼다는 발표와 그것으로 인한 소망을 갖게 되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한다면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시간상의 문제일 뿐 이 소망을 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안에 우리들의 젊은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소망을 가져도 됩니다.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한편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역 균형 발전 법에 의하여 지방에서도 서울로 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서 지방도 소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 사업이면서도 우리 지역의 문제였던 새만금 문제도 원만히 풀려 전라북도도 발전의 기회를 얻었다고 봅니다. 물론 전주는 근처에 혁신도시가 세워져 더 발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우리와 관계된 이곳의 발전으로 인하여 우리는 지난 시절과는 다른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소망과 발전은 그 영역 안에 있을 때 혜택을 입는 것이지 그밖에 있으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 안에 있어야 나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영역 안에 있어야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그 안에 있으려면 그 안에 들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합니다. 발전하는 지역에서 그 발전에 관심을 갖는 여러분 되셔서 여러분 각 개인들도 발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영역 안에 든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발전유무와도 관계가 있음을 우리는 깨우쳐야 합니다. 로또 복권이 횡재의 수단이지만 그것을 사지 않으면 관계없습니다. 사서 당첨된 사람만이 횡재를 얻는 것입니다. 관계 있는 사람만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본문과 중도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만드시고 그 안에 선택받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의 계획 가운데, 그 수혜자가 되도록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로 죽은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의 선택은, 본문 표현대로 말씀 나누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그 복을 누리도록 우리를 그 안에 그의 계획안에 선택하시고 은혜 받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의 화해자, 중보자, 대속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탄절은 그것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혜택 받는 여러분 되셨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성탄절에 기뻐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한해의 반성 - 진정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가?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였고 그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지난 한해를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편 여러분 가운에 이 믿음에 소홀했다면 그것은 그 소홀한 것만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 업싱 지낸 것이고, 신령한 하나님의 복과 관계 없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중용(中庸)은 중요한 용어입니다.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중용은 한편 능이 보통임.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유교 철학의 기본 개념입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이 '()'이며,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이라는 말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지적으로 볼 수 있는 눈 곧, 지견(智見)에 의하여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하는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말했습니다.

중용과는 다른 말이 사회과학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당파성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편에 속했다는 말입니다. 중용이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한편 모든 편에 속한 것이라는 애매한 면이 있는 반면, 이 당파성이란 분명하게 어느 한 편에 속해 있음을 말합니다. 그 편에 속해서 그쪽 편의 입장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데 중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편이냐 아니냐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가운데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편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 믿고 사탄도 믿고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두 쪽 다 관심을 갖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믿든지 말든지 하여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4절에서 4-7절 말씀을 보면, 4절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 안에 살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다른 어떤 분이 아닌 유일하신 한 분이고, 그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 세상에 오신,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고, 그 하나님에게 우리를 나아가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도 다른 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분입니다. 구원의 길이 부처나, 알라나, 공자에게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입니다. 그 말씀이 5,6절의 말씀입니다. 5,6절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바울은 이를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전도자와 사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사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했습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섭리와 선택과 예정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구원받는 진리를 위한 편에 확실히 서서 왔다갔다한다거나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편에 살았습니까? 반성해보는 시간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손에 쟁기를 잡은 자는 예수님의 길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내년에는 전적으로 믿고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분의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섭리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의 목표는 교회가 성장에 있다고 말합니다.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못해도 교회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한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를 성숙한 교회라고 합니다. 일부 잘못된 성장론자들은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한 성숙한 교회를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성숙한 교회들의 입장에서 성장한 대형교회는 문제가 있다고 한 것도 일부 문제는 있습니다. 분명한 편에서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 죄인을 구하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받아 실천하는 교회만이 올바른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올바른 교회의 편에 있어야 합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의 잘못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과 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삶을 사는 편에서야 합니다. 교회의 목표는 성장 자체도, 봉사 자체도, 구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을 구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받아 실천하는 데 즉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평안을 이루는, 종래에 천국 가도록 하는 기관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우리의 잘못과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열심히 전도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목사인 나를 비롯하여 모든 교우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짝하여 우리는 살았습니다. 내년에는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서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중보(中保)란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은 일을 말합니다. 중보자는 바로 그러한 중보의 일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우리는 지난 한 해를 살았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스런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씀 나누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에게 영향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됩니다. 다른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도 나와 관계없으면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새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