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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7 제목 : 나의 문제를 고백하며 믿음 안에 살기 성경 : 다니엘서 9장 1-19절 본문

설교

20070527 제목 : 나의 문제를 고백하며 믿음 안에 살기 성경 : 다니엘서 9장 1-19절

필명 이일기 2018. 12.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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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7

제목 : 나의 문제를 고백하며 믿음 안에 살기

성경 : 다니엘서 91-19

 

1.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 인간에게 있는 사건 해석, 특히 고난과 실패, 바라지 않는 일의 발생 곧 인생의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지난주 송장로님의 사위가 운영하는 음식점 직원의 배달 과정에서 직원의 오토바이에 부딪혀 노인이 넘어져 사망한 사건에서 그 고생하며 사는 직원의 왜 내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비명 지를 때 그에게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선량하게 살아오고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왜 그와 같은 불행이 발생하는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 직원이 평소 살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벌한 것인가? 아니면 그의 평소에 범한 범죄와는 관계없이 그 자신이 오토바이 운전을 안전하게 하지 않은 것으로 일어난 단순한 사건인가?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열심히 고생하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찌 이런 어려움이 발생될 수 있는가? 등등의 의문이 생기고, 인생에 대한 회의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부정적이고 불행한 모든 문제 즉 병의 문제, 늙는 문제, 죽음의 문제, 실패의 문제, 못사는 문제, 일하지 못하는 문제, 즐겁지 않는 문제 등, 뿐만 아니라 모든 긍정적이고 행운에 관한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며, 왜 나는 현재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가? 즉 왜 나의 남편을 만나고 내 자녀를 만나고 부모를 만나며 친구를 만나고 이 교회에서 여기 모든 교우들을 만나고 사는가? 등등 다 이 직원이 고통스러워하는 문제와 비슷한 문제들이다. 비록 그것이 불행이거나 또는 행운이거나, 또는 행, 불행과 관계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다 비슷한 문제들이다.

사실 이들 문제들은 오래전에 2차 대전 중 일어난 유대인 포로생활과 학살 등의 문제를 다룬,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 소설의 주제로써 설교 말씀으로 나눈 적이 있다. 그러나 다시 이 문제를 다룬다. 사실 이 문제는 설교와 목회의 영원한 주제이고, 인생 문제에 관한 영원한 주제이며,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관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어렵고, 평생 연구하며 궁구하고 구도해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이 주제에 관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직원에게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네가 잘못해서 네가 운전을 잘못해서 천천히 달리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고 몰아세우겠는가? 아니면 믿음이 좋은 양 표시하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야 라고 말하겠는가? 그 직원은 답할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거 인정한다. 그러나 왜 꼭 나같이 열심히 살려는 사람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 또는 손님들이나 사장님이 음식배달을 빨리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전적으로 내 책임만 물으면 억울하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오토바이가 좋지 않아서 또는 앞의 시야가 가려서 또는 할머니가 갑자기 그곳에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전적인 책임에 대하여는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 가능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져보면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의 다니엘을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본문

유대인들은 BC605년 바벨론에 제1차로 포로로 잡혀간 후 제2차 제3차 포로로 잡혀가 70년 동안 그곳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바벨론이 메데와 바사(페르시아)에 의하여 망하고 난 후,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때, BC534년 페르시아왕 고레스 칙령에 의하여 이스라엘로 귀환한다. 다니엘은 10대에 제1차 포로로 잡혀갔다. 물론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왕들의 꿈을 해몽해 고위직에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문제로 복을 누리기도 했지만 수없이 많은 고난도 받았다. 그는 예레미야서 29장을 읽으며 깨달은 것 곧 하나님께서 포로 70년 후 귀환 즉 구속하실 것이라는 알고 이제껏 바빌론 치하의 공무원으로 살았지만 조국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본문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다니엘의 사자 굴에 관한 이야기 그곳에서 살아 나오는 다니엘 그러나 그것은 사실 괴로움이었다. 좀더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호위호식 하였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항상 괴로운, 통탄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고향에서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제로 끌려가 사는 인생이라니 그것도 나이 어린 10대에 끌려가 한두 달, 일이년이 아니라 70여년 거의 평생에 해당되는 인생을 그렇게 살았으니, 왜 그는 그러한 포로생활을 해야 했는지,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지만 그러나 유대 민족 전체는 왜 그렇게 살았어야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니엘은 그 이유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고백한다. 특히 그를 깨닫게 한 성경말씀 예레미야 29장을 보면 그 이유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라는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3. 단순히 나 자신의 잘못의 문제로써 끝나는 것인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인생은 살아간다. 하나님의 계획 하에 사는 것이다. 인간은 그 범주 안에서 자신에 대한 책임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부동산 정책에 의하여 부동산이 거래가 안 된다. 큰 틀이 잡히니 그 속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국민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중계를 생계 주 수단으로 직업으로 사는 사람들은 파리 날리는 자신들의 사무실로 인하여 아우성이다. 돈을 벌지 못해서 죽을 지경이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큰 틀 속에서 그러한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그러한 중에도 돈 잘 버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전체 중계인들 입장에서 보면 죽을 지경인 것이다. 정부의 정책 때문이고 그 정책은 국민들의 투기와 그에 따른 국민들의 요구에 의한 것에서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중계인들이 돈 잘 벌고 못 벌고가 결국 국민들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다. 거기서 끝나는가? 그 이상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깊이 따지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에게로 그 원인을 돌릴 수 있다. 한마디로 큰 틀에서 보면 중계인들이 돈 벌고 못 벌고가 하나님과 관계한다.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중계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말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중계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잘못된 문제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이유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 직원이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직원이라면 왜 내게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나는가? 왜 자꾸만 불행이 겹치는가? 하며 원망하고 한탄할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에게 그 사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괴로움만 줄 뿐이다.

인생은 자기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도 큰 틀의 세상이 있는 것이고, 그 속에는 질서와 법칙과 규율과 섭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문이다. 불행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에게 희망을 걸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자신의 불순종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핍박을 당하면서도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고난이 있을 수 있다. 고난에도 또는 행운에도 하나님의 은총에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을 믿으며 그에게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한다. 내게 있는 행이나 불행은 다 하나님 안에 존재 하는 것들이다. 믿음으로 항상 승리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한다.

18절 중하반절과 19절 상반절의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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