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080810주일낮예배 제목 : 마음 문을 열고 넓혀라 성경 : 고린도후서 6장 1-13절 본문
20080810주일낮예배
제목 : 마음 문을 열고 넓혀라
성경 : 고린도후서 6장 1-13절
1. 도통했다는 말.
사람은 어떤 일을 경험하면 그것을 알게 된다. 그것으로 인하여 다음에 대비하고 해결 능력이 생겨 그 문제에 관한한 통달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난과 실패, 부자와 성공 경험은 사람을 담대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험은 그 가난이나 실패, 성공, 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실을 알면 그것에 둔감해지기 십상이다. 하기 쉬운 말로 도통했기 때문인 것이다.
대통령(大統領)은 문자대로라면 크게 거느리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전 국민을 거느린 사람이다. 한때 노무현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노통 박통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박통은 박정희 대통령의 약자로, 무식하게 밀어부친다는 의미로, 노무현 대통령은 노짱이라 하다가 친근한 의미로 노통이라고 불렸다. 물론 노대통령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비아냥대며 부른 말이다. 하여간 대통령은 국가 통수권자라는 의미로 최고의 지위를 말하는데 국가의 모든 것을 통괄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통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도 살짝 포함하고 있다. 도통이라는 말로 인하여 잠시 옆으로 샜다.
도통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도를 통했다는 말이고 길[道]이 뚫렸다[通]는 말이다. 막힌 것이 뚫렸다는 말이다. 이것을 인생에 적용하여 말하면, 인생은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이래저래 막히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쩔쩔매다가 막혔던 길이 뚫리면 모든 것이 풀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평안하게 된다. 인생에서 닥치는 문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수학 문제를 잘 모르면 깜깜하다. 그러나 수학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은 그 수학 문제를 수월하게 평안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푼다. 그 문제에 도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즉 자기를 버림으로써 타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하여 사랑에 도통하신 분으로 인정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도통했다는 것은 어떤 일이나 사건에서 그 해결책이나 그 자체를 아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 기억, 경험, 원인과 원리를 아는 철학이라는 4단계의 지식을 말했다. 감각은 육체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아는 것이고, 기억은 그 감각을 기억하는 것이고, 감각에 의한 기억을 통합하는 것이 경험이고, 철학이란 원인과 원리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단계를 통달한 사람을 우리는 도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도(道=法[법])를 완벽하게 텅 빈 것이(虛,空)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수행(修行)을 통하여 마음을 비워 깊이 허(虛=空[공])의 단계에까지 이르면 자연히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을 도 닦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깨달았다거나 도통했다는 것은 마음을 텅 비웠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달아서 알게 되면 나도 달라지고 세상도 달라져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고 영원하고도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게 되는 것을 도통한 것이라고 하는 것에는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으나, 있는 것을 없는 것이라고 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도통했다는 말을 정리하면,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게 되면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담대해진다. 불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죽음의 문제까지 그렇다. 편안해지는 것이다.
2. 본문과 평안함. - 바울은 수많은 경험을 통하여 도통한 사람 평안한 사람이 되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여 그러한 상태를 알기에 도통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4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수많은 것을 경험했다는 말이다.)
6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된 바울이다.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이런 저런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도통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과 같이 마음을 넓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1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12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13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 세상과 충돌하라, A. W. 토저 -/자료ⓒ창골산 봉서방 글 인용한다.
보는 사람, 보지 못 하는 사람
폴 레이더(Paul Rader)는 종종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소년이 담장 구멍에 얼굴을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때때로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저 애는 왜 저렇게 난리인가?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이는 그 구멍을 통해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칠 때마다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행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 그 아이는 행인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미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미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분에게 반응하는 것은 완전히 정상적인 것이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에 대해 열광하는 것을 보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보이는데, 세상의 비웃음이 뭐 그리 큰 문제인가? 나는 세상의 따돌림 앞에서 눈물을 짜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도통한 사람들이다.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다. 무엇인들 거릴 낄 것이 있겠는가!
3. 결론
본문 1-3절로 결론을 맺는다.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사 49:8
3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바란다. 소홀하지 말기를 바란다.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살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삶은 도통한 삶이다. 믿는 사람으로서 당당히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사명에 충실하기 바란다.
주보에 실은 <뜻밖의 선물>에서처럼 이웃을 소중히 여기며, 내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거리낄 필요 없이, 당당하게, 평안한 사람으로서, 도통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복음 말씀을 증거 하는 데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