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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제목 : 나에게 은혜주시는 하나님 성경 : 고린도전서 4장 1-4절 주제 :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한다. 본문

설교

20080928 제목 : 나에게 은혜주시는 하나님 성경 : 고린도전서 4장 1-4절 주제 :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한다.

필명 이일기 2018. 12. 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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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제목 : 나에게 은혜주시는 하나님

성경 : 고린도전서 41-4

주제 :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한다.

 

1. 가장 부러운 사람은 제대로 보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다. 군소리나 잡소리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정확히 말하는 사람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맥을 정확히 짚어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 말이 정확해 옳아 틀림없어 하며 다른 사람들 말을 제치고 그 사람 말 인정하고 모두가 그 사람 말에 따르는 사람이 부럽다. 그런 사람은 그냥 그렇게 된 사람이 아니다. 부단한 훈련과 그러한 분위기와 영향을 받아 형성된 사람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그런 사람은 자기 관리가 잘 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반듯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끊임없이 반성하며 틀림없도록 온전하도록 노력한 사람이다.

또 다른 부러운 사람은 평생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지낸 부부들이다. 그들 또한 각자 자기 반성과 자기 노력을 한 사람들 일 것이다.

 

지독히 밉고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말을 듣지 않고 짜증나는 말만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하는가? 가장 좋은 예는 부부간의 관계이다. 부부가 서로 마음에 안 맞아 서로 보기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어야하는 경우, 갈등하는 경우 일반적인 현상은,

일차적으로 말하지 않고 보지 않고 피하고,

둘째 화가 나면 참고 인내하며,

셋째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고 다시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일반적인 대응방식은 상대방의 허물만 바라보는 입장일 가능성이 많다. 자신은 옳다고 하고, 자신은 언제나 주장하고, 왕으로 군림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하기 마련인 입장에 서면 그러한 대응 방법밖에 없다. 그러한 경우를 우리는 갈등하는 관계 속에 있다고 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싸움도 일어나는 그러한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피해만 보고 정신적 절망과 좌절감만 맛보게 된다.

결국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고 우리는 대부분 그러한 대응 방식을 알고 있다. 모든 원인에 자신이 있음을 우리는 아는 것이다. 설사 상대가 잘못하고 내가 잘했다하더라도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나 때문에 갈등하고 싸우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옳은 말이다.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바라보면 해결책이 보인다. 나를 제대로 보면 내게 문제가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온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음부터는 잘할게 하고 약조한다고 해도 갈등은 반복되는 것이다.

 

내가 변해야 하고 나의 습관이 변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제가 없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핸들링 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에 진실하게 기도하면 그 해답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해결책을 완벽하게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본문 말씀에서 이러한 점을 깨닫자. 우리를 심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우리 자신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다.

 

2. 본문 본장

1 사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2 이런 경우에 관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실성입니다.

3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다 나를 심판하고 나의 문제를 제대로 가르쳐 주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린도 교우들이 베드로와 바울과 아볼로 등에 대하여 각각 갈등할 때 바울의 입장을 표현한 다음절 5절 이하를 보자.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6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나와 아볼로에게 적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격언의 뜻을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배워서, 어느 한 편을 편들어 다른 편을 얕보면서 뽐내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 바울을 따르든 아볼로를 따르든 교우들 상호 간에 상대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7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노릇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왕이 되어 둘 사이에 심판자가 되어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교인들이 교만해졌다는 것이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11 우리는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양심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판단하고 비방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형수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 남들의 구경거리가 된 사람,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 약하고 천대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계속 12,13절 말씀을 보자. 12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13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매일 군림하는 왕이 되어 남을 심판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하고, 욕을 먹으면 오히려 축복해주고, 박해 받으면 참고, 비방 받으면 좋은 말로 응대하고,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만물의 찌꺼기처럼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음 14-18절까지에서 바울의 본심이 드러나 있다.

14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15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16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17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18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교만해진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19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속히 여러분에게로 가서, 교만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습니다.

20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21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채찍을 들고 여러분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남을 심판하는 교만한 고린도 교인들을 나무라며, 바울 자신이 체득하여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여 그렇게 살도록 하였으니, 교만한 말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으로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는 얘기는, 너희들이 멋대로 바울은 어떻고 아볼로는 어떻네 하는 식으로 평가를 해서 그것을 분쟁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심고 물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중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바울과 아볼로를 추종함으로 생겨나는 분쟁의 근거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중요하지 않은 심는 일이나 물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추종하고 그것 때문에 갈라져 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패싸움하는 꼴이 될 것이니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보시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오늘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판단을 받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칭찬과 호평을 받고, 또 어떤 때는 비난과 질책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인간에 의해 받는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완전하지를 못하다. 그냥 자기의 이권과 자기의 취향에 따라서 좋고 나쁘게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능력도 한계가 있고, 지식도 불완전하고, 마음은 항상 편견적일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그러니 사람의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실망하고 슬퍼하고 할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이고, 아볼로는 말씀을 조리 있게 잘 가르친 사람이며, 게바는 부흥 강사로 큰 은혜를 끼친 사람으로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떻고 어떻고 판단을 하는 것은 마귀의 속삭임에 빠져 교회로 하여금 손해를 끼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문을 다시 요약하여 말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 안에서 양육할 때, 이 땅에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같이, 낮은 자로,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기를 바랐는데, 교만한 말로 사람들을 편 가르고, 사람들과 갈등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3. 하나님 나라는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말에 있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평안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오는 것임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믿음의 능력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평안해질 것이다.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내가 상대를 심판하는 것은 내가 하는 말로 상대를 좌지우지 하려는 나의 교만이다. 모든 것을, 특별히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라.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이웃집의 감자를 훔치러 갔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고는 이웃집 담장을 뛰어넘으려는 순간 곁에 있던 아들이 이렇게 속삭였다. "아빠, 뭔가 잊으셨어요. 하늘을 안 봤잖아요!"

내 눈이 주변만 살피면 안 된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내가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맡겨라.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을 심판이라 하고, 남이 자기를 판단하는 것을 비판이라 하고,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는 것을 회개라 한다. 나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께서 나를 핸들링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나의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오히려 이러한 실패를 성공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다. 갈등한다고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좌절하거나 판단할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를 하나님께 맡겨 성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주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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