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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4주일예배 제목 : 하나님의 작품 성경 : 요한복음 4장 20-24절 본문
20090524주일예배
제목 : 하나님의 작품
성경 : 요한복음 4장 20-24절
1. 막 태어난 아이는 자의식이 없다. 순수하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의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자라면서 세상에 물들고 그 세상 가치관(범죄)으로 인하여 자의식이 생겨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고 부모로부터 떨어져 스스로 살아가려고 한다. 자기주장을 하며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방어를 하며 부모님께 불순종하며 살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절망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까닥하여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부모님께 순종하게 된다.
우리는 까딱하는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까딱하는 순간을 경험해야 그것으로 인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아이를 낳는 까딱하는 순간 즉, 어머니 배 안에 있다가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 어머니는 드디어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아파서 까딱 하는 순간을 경험하면 건강이 무엇인지 알게 되듯, 죽으면서 까딱하며 죽어봐야 저 세상을 알 수 있듯이 성령에 의하여 까딱하며 영적 출생을 하여야 곧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인생의 새로운 순간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 세상에 까딱하는 순간 보내셨고, 성령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까딱하는 순간에 오셨다. 영적인 출생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발생된 것이다. 자기 정체성 그 기반과 기저가 바로 하나님에서 비롯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왔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그의 뜻을 위하여 살게 된다.
그러나 세상적 가치관에 기인하여 살면 자기 아집에 의하여 살게 되고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원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그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2. 에배소서 2장 1-10절
1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러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그러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회복되어 거듭나 살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그의 계획과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성령을 안다. 성령을 알면 하나님께 예배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세상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으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 곧, 그의 자녀로 살게 된다.
하나님을 발견할 때 그분의 계획이 우리에게 드러나며, 그의 계획에 맞추어 사는 법을 알게 된다.
3. 본문과 예배
신앙의 가장 기본이요 중심은 예배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오늘 말씀 본문의 배경은 앞 절에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 사역 중에 어느 날 갈릴리를 가기 위하여 사마리아를 통과하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 수도였으며 우상을 섬겼고 혼혈족이 살았기 때문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고 언제나 베뢰아로 돌아다녔다. 또한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로 가신 것이다. 그곳에 수가라는 도시를 지나가실 때 한 여인이 물동이를 가지고 우물에 물을 길러 왔다. 그것도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 아주 뜨거운 한 낮 12시였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자 긍휼한 마음이 들었다. 그 여인의 삶은 기구했지만 마음에 간사함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물을 좀 달라고 했다. 그 여인을 전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여인은 놀라서 말을 한다. 어찌 유대인인 당신이 우리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가 하고.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데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니 자신을 드러내며 영생하는 생수를 마셨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또 여인이 묻는다. 이 우물은 야곱이 준 선물이고 이 우물도 야곱의 12아들이 먹고 짐승도 먹었는데 이 우물보다 더 좋은 물이 어디 있습니까? 14절에 생수에 대하여 비로소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러자 여인은 바로 그 물을 구한다. 그렇게 좋은 물이 있으면 내게도 달라고. 예수님은 여기서 동문 서답을 하신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보시며 5명의 나편을 지적한다. 그러니 여인이 "당신은 예언자다" 하면서 오늘 본문인 20절에서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옳은지를 묻는다.
20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19절에서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고 한 말씀에서 보면 인간은 영적인 존재를 제대로 알거나 만나기 전에는 진정한 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이와 같은 대답을 한 것이다.
본문 23절에서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 그런가? 4가지 이유를 알아보자.
(1)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찬양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5장 1절 그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를 불러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내가 주님을 찬송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2절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 “당신의 백성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원수들은 그 오른손으로 쳐부수시는 분.” 예배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예배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 그 여인에게 있어 예수님은 누구였나?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였다. 그리곤 유대 남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인에게 있어 예수님은 예언자였고, 끝내 메시아였다.
아마 처음에는 지나가는 유대인 남자가 자기에게 수작을 부리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해 보니까,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이분이 예언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시면 알려주신다고 전해진 예배에 대해 예수께 여쭈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주 속 시원하게 그 여인의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그 순간 “아! 이분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구나.” 하는 감격과 확신이 생겼다. 그리곤 동네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니다. 41절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다.” 그리고 42절에서 그들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절에 세워놓은 부처와 같이 여기는 사람이 있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 일년에 몇 차례, 때에 따라 가면 된다. 그 몇 번의 불공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처의 영험을 빌리러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영험이 떨어졌다 싶거나, 필요할 때 가면 된다.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들이고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
(2)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이유는 예배하는 자들은 주님께 기도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있는 4장 10절에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여인은 자기 앞에 있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이 여인처럼 지금도 수많은, 사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모른다. 그냥 막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입니다.” 그 정도다. 정말 그분에게 기도하면, 그분이 생수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감히 기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배에 그냥 나와 앉았다가 간다. 목사님과 성도들의 눈도장 찍는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예배의 중요성은 없는 것이다. 그냥 주일이니까 나왔다가 가는 정도인 것이다.
13-14절에 예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기도하라는 것이다. 달라고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달라고 하면 주신다는 것이다. 예배하는 자는 그렇게 주님께 기도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주님 약속대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들이다. 주님은 그렇게 당신께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원하신다.
(3) 예배하는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53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것은 너희의 조상이 먹고서도 죽은 그런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것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60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서 여럿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기를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61 예수께서, 제자들이 자기의 말을 두고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이 너희의 마음에 걸리느냐? 62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이며, 자기를 넘겨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66 이 때문에 제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7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서 하나는 악마이다." 71 이것은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서 하신 말씀인데,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를 넘겨줄 사람이었다.
19세기 중엽. 헨리 워드 비쳐라고 하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유명한 설교자였고, 그의 누이동생은 미국 노예의 참혹상을 폭로한 소설, ‘잉클 톰스 케빈’(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우 부인이다.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의 설교는 화려하지도 않았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사이처럼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런 설교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람들은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집회였다. 교인들은 당연히 비쳐 목사님이 설교 하시는 줄 알았는데 초청된 목사님이 설교 하시는 것이다. 그것도 알지도 못하는 목사였다. 일부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초청 목사,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헨리 워드 비쳐 목사를 예배하기 위해 오신 분들은 지금 다 나가십시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기 위해서 오신 분들은 그 자리에 않으십시오.”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 누구를 예배하느냐는 것인가? 우리가 지금 누구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인가? 예배하는 자들은 세상의 소리를 들으러 온 것 아니다. 사람 사귀느라고 온 것도 아니다. 예배하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면, 잘했니 못했니 하는 평만 남고, 때로 그 말씀에 대한 불평만 남께 된다. 그 때는 은혜가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사람의 말로 들은 그 말은 실제로 사람의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가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설교는 제가 한다. 제 입술을 통해 나온다. 그러나 저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 마이크가 제 소리를 받아 전달하여 크게 소리 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소목사다. 육으로 보면 그냥 육이다. 목사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영으로 보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다. 몸만 어느 장소에 갔다가 왔다는 것으로 예배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영으로 예배하는 사람은 영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세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으로 예배 한다. 예배하는 자리에 왔다 간 것으로 예배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영적 예배라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설교만 들으면 예배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늦게 나오고, 좀 일찍 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헌금 드리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예배했다고 만족해한다. 아니다. 참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24절 하반절에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는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실하게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다.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려지는 예배가 진리인 예배라는 것이다. 주님은 예배를 통하여 영과 진리로 우리를 만나고자 하신다.
(4)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자들이 예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헌금 액수를 세고 계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영적 예물을 원하신다. 영적 예물이란?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찬양에도, 기도에도, 헌금에도, 이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이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낮추어 예배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또 그렇게 우리를 만드신다.
신명기 8장 1 "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아서 번성할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들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2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 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3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는 줄 믿으라. 그렇기에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교만이다.
주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라.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으라.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기도하여 주님 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낮추어 주께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라.
4. 결론
미국 남북 전쟁 당시에 유명한 '올리버 하워드' 장군은 저명한 하워드 대학의 창설자이기도 한데, 그는 어느 날 서부 해안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친구가 수요일 날 큰 파티가 있으니 참석해 다라고 했다. 대통령도 축하 인사를 보내오는 파티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군은 일언지하로 거절했다. 이유는 매 주일과 수요일은 선약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주의 왕과 약속한 예배를 빠질 수 없다 것이었다. 세상 파피에 즐기는 것보다 자신을 하나님 만나는 예배에 드리고자 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기 바란다. 여러분 가족과 친척의 평생 한 번 있는 당사자의 결혼식 또는 장례식에도 가봐야 하지만 매주 있는 예배시간도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시간에는 평생 한 번 있는 것이다. 다음에 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이 우리 인생을 80년으로 놓고 30년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30년은 잠자면서 보내고, 7년은 먹고 마시면서 보내고, 7년은 쉬면서 즐기면서 보내고, 3년은 남 기다리다가 보내고, 1년은 전화통 붙들고 보내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데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전화하는 시간과 비슷한 1년 반 정도 된다고 한다. 80년 중에서 1년 반이라고 하니까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 있으나 그러나 1년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함 1년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적어도 5분 이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적어도 5분 이상 하루를 잘 보내게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기도 그리고 매주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에 나와 적어도 3시간 정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교회를 세워 주신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성막에서 예배를 드렸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왕정시대에는 솔로몬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고, 예수님 시대에는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오늘날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귀중하게 여기기 바란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도 하나님을 예배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결국 하나님께 예배 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백성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만나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신다.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의 축복은 예배를 통하여 주어진다. 교회가 세워지고 참 예배를 드릴 때 그 민족이 축복을 받았다. 유럽에서 예배가 사라지니 미국으로 경제권이 넘어 갔다. 미국은 20-30년 전엔 주일 날 온 상가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축복을 받아 세계 최 강대국이 되었다. 워싱톤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의 유럽인이 미국에 최초로 도착하여 발을 디딘 버지니아가 있다. 1607년 5월 14일 도착하여 맨 먼저 교회를 세워 6.15일 완공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광야의 성막과 같았다. 그들은 매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이곳에 모여 매일 예배를 드렸다. 그래서 역사상 최고의 부유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노아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가는 곳마다 먼저 단을 쌓았고, 그래서 기업을 얻었고, 솔로몬은 자가 궁전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7년을 걸려 아름답게 먼저 짓고 하나님께 예배하여 40년 동안 왕으로 통치했으며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예수 믿고 그에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많아 질 수록 이 민족이 복을 받을 줄 믿는다. 가정도 여러분 개인도 마찬가지다. 예배를 귀중하게 여기시길 바란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시길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복을 내리실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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