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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요한복음

필명 이일기 2015. 8. 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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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두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며 예수 탄생을 가름한다, 이어 세례 요한의 하나님의 어린양 증언, 세례 요한의 제자 안드레 소명, 베드로 소명, 빌립과 나다나엘 소명.

 

*** 요한복음서는 오늘날 터키 서부 지중해변 가까이에 위치한, 바울의 선교 여행지 에배소에서, 요한과 그 제자들에 의해, 그들의 공동체를 위해, 1세기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에배소는 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았던 곳으로, 그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 하고, 우주의 원리를 로고스라 했다. 기원전 1세기 필론 등은 로고스론을 이어 받았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 특히 요한공동체는 그러한 로고스를 예수를 설명하고 선교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선재적이고 신적인 표현 로고스로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유대인들이나 유대적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인간적 측면에서 인식하고자 한 것을 비판하고, 구약의 하나님과 하나임을 말하고자 로고스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두 신 야훼 신과 예수 신이 아니라, 하나인 신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요한공동체는 전통적, 구약적, 신성만 있는 신 중심적 경향의 유대인들, 예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 등 추종자들, 세례요한 추종자들에 비판적이었고, 베드로 중심의 사도적 추종자들을 견제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해 로고스 기독론을 주창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얌니아회의에서 구약 정경 선언 즈음, 요한공동체는 유대 회당에서 쫓겨나와 초기 독립적 기독교를 형성하였는데, 아직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내부 각 종파들을 경계하고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 이 로고스 선재적 기독론으로부터 일부 집단은 영지주의 가현설 등을 주장한다. 하지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예수의 피흘린 자국을 확인해 보라는 표현을 통하여 저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곧 예수는 육을 입은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후에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정리가 된다. 이른바 예수는 신이자 인간이라는 것과 성령도 하나님과 예수로 말미암코 하나님이라는 정리말이다.

 

2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 성전 청결과 파괴 예언과 자신이 성전이라 함, 사람들이 표징을 보고 믿었다 하며 사람들을 아셨다고 한다.

 

***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는 없는 가나 혼인잔치 표징을 먼저 보여서 예수의 신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을 것이고, 공관복음에는 잡히시기 전 언급하는 성전 청결 사건을 공생애 시작과 함께 다룬 이유는 아마도 유대인 바리새파 등과의 적대 갈등 관계 표현와 그들의 잘못된 점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공관의 제자들이 믿지 않았음과 달리 제자들이 믿었다고 표현한다. 예루살렘에 공생애 초기부터 가셨다는 것도 공관복음과 다르다.

 

3

바리새파 니고데모의 다시 남에 대한 질문에 물과 성령으로 되며 그것은 하늘의 일이라 하고, 하늘서 온 인자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도록 하는 것이라 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심판이 된다며, 이러한 진리는 빛, 곧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 진다고 한다. 그 뒤에 제자들에 세례를 주는 모습을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 보고하니 요한은 그는 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고 한다.

 

*** 공관에 없는 니고데모와 대화 그리고 세례 요한을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통하여 영생의 구원이 주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4

공관복음에 없는, 갈릴리로 복귀 위해 사마리아로 가다, 샘에서 문제의 여섯 남편 여인을 만나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제자들에게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며 수고하지도 않은 제자들에게 결실에 참여하게된다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여자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고 한다. 갈릴리 복귀 후 가버나움의 왕의 신하 아들을 고치셔서 온 집안이 믿었다고 하며 갈릴리 복귀 후 두 번째 표징임을 밝힌다.

 

*** 요한 저자는 공관과 다르게 예수가 행한 표징들을 열거하며 자신을 드러냈다고 하며 사람들이 믿었다고 긍정적 표현을 한다.

 

5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양의 문 곁 베드자다 못 환자들 중 안식일에 38년된 중풍병자를 낫게하고, 다시는 죄 짓지말라 한 일과 안식일이라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 하니, 유다인들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다며 죽이려 했다고 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사람을 살리니 자신도 살린다 하며, 자신을 공경하도록 심판은 아들에게 맡겼다 하고, 자신의 말과 자신을 보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 받지 않는다 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살 것이라 하고, 인자이기에 하나님의 생명과 심판을 받아 죽은 사람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며, 선한 자는 부활해 생명을 얻고 악한 일 한 자는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하고, 아버지뜻대로 한다고 한다. 요한보다 큰 하나님이 완성하라 주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을 보냈다는 것을 증언한다고 하며, 또 그것을 아버지가 증언해 주신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생명이 있는 성경을 연구하는데 성경은 자신을 증언한다고 하며, 그런데도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고, 자신에 대하여 쓴 모세의 글을 믿지 않으니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 예수의 행위와 말들을 통하여 계속 유대인들과의 갈등을 표현하며 비판하는 요한복음 저자는 유대적 전통을 유지하려던 자신의 공동체 일부를 바판하고 자신들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6

갈릴리 디베랴 바다 근처 산에서, 유월절 명절이 가까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한 모임에서, 예수님이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만 5,000명을 먹였고 남은 부스러기가 12광주리였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묻는다. 빌립은 200데나리온 어치를 사와도 모자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계획대로 하리라고 알고 있었다. 한편 안드레는 한 아이가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있으나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며 무리들에게 나누어 먹게 하였다.갈릴리에서 네 번째 표징이다. 사람들이 그 오병이어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가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예언자라고 인식하며 강제로 왕으로 모시려하니 예수님은 피했다. 제자들이 먼저 배를 타고 가는 중 예수님이 풍랑 이는 물 위로 걸어오셨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무리들에게 예수는 생명의 빵이라고 하며, 무리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던 곳에서 먼저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갔지만 예수님은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예수를 찾다가 못 찾고 배들을 타고 마침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무리들이 언제 이곳으로 오셨냐고 하니, 예수님은 무리가 자신을 찾는 것은 오병이어의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고, 거기서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먹을 것을 위해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며,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이러한 썩지 않을 양식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무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질문 하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답한다. 무리는 또 하늘로부터 빵이 내려와 먹었다는 출애굽기 164,5절과, 시편 7824절 성경 말씀과 같이 모세는 선조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였는데, 당신을 무슨 징표로 믿게 하며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하고,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무리가 그것을 달라하니 자신이 생명의 빵이다 하고, 자신에게 오면 주리지 않을 것이고 자신을 믿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 하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람은 자신에게 오고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고 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준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살리는 일과 자신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이어서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하며 불신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끄는 사람만이, 그리고 예언서대로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만이 아버지를 보았고 자신에게 오며, 그들을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다고 하고,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영생하게 하는 빵이라고 거듭 반복하며, 그 빵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하고, 그 빵은 자신의 살이라고 하며,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말한다. 유대사람들은 살을 먹을 수 있는가 하지만 예수는 자신의 살과 피-빵과 음료를 먹는 사람은 자신이 그와 하나 되며 생명이 있고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처럼 그 사람도 자신 때문에 살 것이라고 하고 마지막 날에 살 것이라고 반복한다. 이어서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확신하지 못함을 보고 그리고 배신자 유다를 두고, 자신이 있던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떨 것이냐 하며,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라며 자신이 말한 것은 생명과 영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자들 중 이에 속하지 않은, 믿지 않는 자가 있다고 말한다. 본래부터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하고, 이 때문에 제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가려느냐고 하니, 베드로가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하고 고백한다.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롯 유다가 자신을 넘겨줄 자라고 말한다.

 

*** 요한복음 저자는 요한공동체에 아직도 예수에 대하여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할 목적으로 기록하였으며, 또한 당시 이단들의 주장 도케시즘, 마르시온, 영지주의, 발렌티누스 등을 경계한 것이다. 예수를 올바로 이해하고 인식하라는 말이며 예수를 제대로 믿어 그가 말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는 말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든 복음서에서 다루고 있다. 요한 저자도 그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로마나 제사장 통치를 제거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살고자 했다. 그러나 만약 그랬으면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것은 완전한 실패다. 예수님은 그것을 넘어 인류를 구속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했다. 때문에 요한복음 저자는 인간적인 세상 통치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더 높은 차원의 일을 하시려 십자가에 달리셔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셨음을 말하고자 했다. 단순히 기적을 행했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하나의 수단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저자는 가나 혼인잔치,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림, 오병이어에 이은 네 번째 표징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인 것이다.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90년 초 유대교에서 쫓겨나는 상황에서, 그리고 종말의 지연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종말론적 시각에서 유대인들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공동체를 강화한 것이다. 제자들의 불신과 유다에 대하여 본래부터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는 것이고, 그것은 베드로 등 제자들을 따르던 사람들을 견제하며 배도자를 비판하고자 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7

예수님은 유대서 자신을 죽이려 하니 갈릴리서 지냈는데 형제들이 자신의 하는 일을 드러내라고 불신하지만 세상이 악하다고 하기에 자신을 미워한다 하고 자신의 때가 아니니 초막 명절에 예루살렘에 가지않겠다 한다. 그러나 형제들이 올라간 후 아무도 모르게 명절을 지키려 올라 갔는데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찾고 무리 가운데 평하기를 좋은 사람 또는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하나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 드러내고는 못한다.

명절 중간쯤 성전에서 가르치니 배우지 않은 사람이 학식 있음에 유대사람들이 놀라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은 자신을 보내신 분의 가르침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사람은 진실하다 하며 유대 사람 가운데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 하고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데 자신이 안식일에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고 화를 내거나 죽이려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한다. 예루살렘 사람 중 몇사람이 예수가 드러내놓고 말하는데도 아무말도 못하니 혹 지도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자신들은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만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한다. 예수는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자신은 자기 맘대로 온 것이 아니고 자신을 보내신 분은 참되다며 자신은 그분을 안다고 하고 자신은 그분이 보내셨기에 그분에게서 왔다고 하니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 했지만 때가 아니었기에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하고 무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가 오신다 해도 예수님 보다 많은 표징을 행하시겠는가 한다. 그러니 바리새파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 성전 비병들을 보내나 예수는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고 하고 너희는 올 수 없다고 하니 의구심을 갖고 이해하지 못한다.

명절 마지막 날 내 말을 듣고 성경이 말한대로 자신에게 온 사람은 생수가 흘러나올 것이라 한다. 생수는 예수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이라 한다. 이를 듣고 무리가 예언자라 또는 그리스도라 하기도 하고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날 수 있을까 하며 성경은 베들레햄에서 날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한다. 성전 경비병들은 돌아와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지금까지 한 사람이 없다 하니 바리새파사람들이 미혹 되었느냐며 자신들은 믿지 않는다 하고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렁이들은 저주 받은 자들이라 한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율법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거나 하는 일을 알아보지 않고 심판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들은 니고데모에게 갈릴리 사람이냐며 성경을 보면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8

1-11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하기 위하여 붙잡아 온 간음한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니, 땅에 손가락으로 무언가 쓰고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하니 다 흩어져 가버린 후 여인에게 다시는 죄 짓지 말라 한다.

*** 율법을 말하는 유대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죄성, 곧 그들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12-20예수님은 자신은 세상의 빛이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니 그들은 그것은 네 스스로 하는 말일뿐이기에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예수는 너희는 모르고 나는 아는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하고 증언하기 때문에 율법대로 맞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들은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단 말이냐고 한다. 예수는 너희는 나와 나의 아버지를 모르지만 만약 나를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성전 헌금궤 있는 곳에서 하셨지만 예수님을 잡지 못한 것은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하나님을 믿지 않고 율법만을 강조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며,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의 본성에 관한 말씀이고 그의 인생의 목적과 활동은 정당하다는 말씀이다.

21-30예수는 너희는 나를 찾다가 죄 가운데 죽을 것이며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니 그들은 자살할려는 것인가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와 같지 않은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너희는 죄 가운데 죽을 것이며, 내가 나임을 믿지 않기에 너희는 죄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 한다. 그들이 당신은 누구요 하니 나는 나를 보내신 분에게 들은 대로 세상에 말한다고 하고 인자가 들릴 때에야 내가 나라는 것과 내가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말하고 그분의 일을 하여 그분께 가지만 세상에 속한 유대인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예수를 인식하여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31-59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내 말에 머물러 있으면 참 내 제자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그들은 종노릇한 적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죄를 짓는 사람이 죄의 종이라며 집에 머물지 못하는 종과 달리 집에 머무는 주인인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자유롭게 될 것이다고 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나 아브라함이 한 일을 하지 않고 나를 죽이려하는 것은 내 말이 너희 속에 없기 때문이지만 나는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고 하나님이신 아버지만 한 분 계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이 보내셔서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을 보면 내 말을 들을 수 없는 너희는 악마에게서 났으며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 하니 본래 살인자요 진리가 없으니 진리편에 서지 않는다고 하고 본성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라 한다. 예수님은 내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진리를 말하는데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하고 믿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대사람들이 예수께 사마리아 사람이거나 귀신 들린 것이라 하니 예수는 나는 귀신들리지 않았고 아버지를 공경하는데 나를 모욕한다고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구해 주시며 심판해주신다고 하고 내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생한다고 한다. 이에 유대사람들은 당신은 귀신들렸다고 하고 아브라함도 예언자도 죽었는데 그렇게 말하니 그들보다 당신이 위대하다는 것이냐고 하며 과연 당신은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나를 영광되게 하는 분이 바로 너희가 말하는 하나님이라 하며 너희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하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이에 유대사람들은 당신이 아직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말이냐고 하니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한다. 이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하치려 하여 예수님은 몸을 피해 성전 바깥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 예수님의 적대자들과의 관계에서 요한복음 저자는 적대자들은 죄있는 인간에게서 났지만 예수는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에게서 났다는 신앙을 보여 주며 예수의 출생에 관한 비방들을 비판하고 교회와 회당간의 분쟁에 대한 유대인들의 잘못을 비판한 것이다. 적대자들이 예수를 거부한 것은 본래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9

안식일에 눈 먼 사람을 보며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 하니 예수님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라 하고 자신을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며 자신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의 빛이라고 하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발라 실로암 못서 씻으라 하여 눈 먼 사람이 눈이 밝아져 돌아갔다고 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본래 거지였다며 누가 낫게 했느냐 하니 예수로 인하여 낫게 되었다 하고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모른다고 말한다. 그들이 바리새파사람들에게 눈 먼 사람을 데려가 또 다시 눈 뜨게 된 연유를 묻고 예수님이 낫게 했다 답하니 안식일에 한 것으로 보아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온 자가 아니며 죄있는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고 의견이 갈리고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시 물으니 눈 뜬 사람은 그는 예언자라 답한다. 유대사람들이 믿지 못하여 그 부모를 불러 연유를 물으니 무서워 성인이니 그에게 물어보라 한다. 바리새파사람들은 두번째로 그 사람을 불러 예수는 죄인이라 하지만 그는 그것은 모르고 하여간 자신은 그로 인하여 낫게 되었다 한다. 다시 물으니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하냐고 한다. 그러자 욕을 하며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 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였다며 그 사람은 모른다 한다. 그러니 자신을 눈 뜨게 해준 분을 어디서 왔는지 모르다니 하며 이상하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 안다고 창세로부터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네가 죄 가운데 태어났는데도 우리를 가르치려냐며 내쫓는다. 그후 예수는 그를 만나 자신을 믿느냐고 하니 믿는다고 하고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며 보는 사람은 못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에 바리새파사람들은 자신들이 눈 먼 사람이란 말이냐 하니 너희가 눈 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지만 본다 하니 너희 죄가 남아 있다고 한다.

 

10

1-21예수님은 자신이 양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에 의하여 스스로 원해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한다. 이에 많은 유대인들은 귀신들려 미친 자의 말을 듣느냐 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의 말은 귀신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며 어떻게 귀신이 눈먼 사람의 눈을 뜰 수 있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며 분열한다.

22-42- 성전 봉헌절은 예루살렘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는 절기다. BC 167년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리아 총독정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이스라엘의 헬라화 정책의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신전으로 바꾸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율법이 부정하게 여기는 죽은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이로 인해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을 등에 업고 마카비를 중심으로 성전 탈환과 독립투쟁이 일어났다. 이는 3년후 인 BC 164년 성전 탈환과 성전 예배회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다. 성전 봉헌절에 예수님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고 계셨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이방인의 뜰 영역 동쪽에 위치해 있다. 기둥들이 서 있고 지붕이 덮여져 있어서 예수님은 이곳에서 주로 사람들과 대화 나누시고 말씀을 가르치셨다. 이곳은 이방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영역이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이방인이라도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들리신 곳이다. 예수님 승천 후에도 사도들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던 장소이기도 하다.(5:12) 그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당신이 그리스도면 분명히 밝히라고 한다. 이에 이미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고 하고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해주는데 믿지 않는 것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며 내 양들에게 영생을 주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되고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하며 나와 하나님은 하나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다시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보여주었는데 나를 돌로 치려하냐고 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네가 자칭 하나님이라 하며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돌로 치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31절은 밝히고 있다. 성전 봉헌절로부터 약 3개월 전인 초막절 명절에도 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하였다고 요8:59에서 기록하고 있다. 34-36절에서 하나님 모독이라니 하며 시편 826절을 인용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으로 내가 너희를 신이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지 않았느냐며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폐하지 못한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내신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며 만약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아야 하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 않을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임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을 눈 뜨게 할 때도, 38년 된 병자를 고칠 때도, 52어의 기적 때도,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변했는데 그들은 그러한 일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임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11

11장의 나사로는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와는 동명이인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후 예수님이 살렸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 보도는 다른 사건에 비해 무려 12장에 걸쳐서 길게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게 다뤘다는 말이다. 그것도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날 예수님의 부활 전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사람들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형태다.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동정어린 모습과 나사로를 살리고 난 후 예수님의 대적자들인 바리새파사람들과 대제사장 가야바의 언행이다.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안식일 금지법을 위반하여 안식일에 병자를 낫게 하고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하여 자신을 신이라고 하므로 신성모독 했다는 것과 병들어 죽은 나사로를 살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 쪽으로 사람들이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나사로도 죽이려고 했다.

왜 나사로를 예수님은 살리고 그들은 죽이려했는가?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려는 자들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준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자 언약을 지키지 못한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한 것에서 반성하며 나온 생각으로, 결국 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722 앗시리아 사르곤2, 587-539 바빌로니아 느브갓네살-포로귀환, 539-330 페르시아 키루스, 330-323 마케도니아(그리스) 알렉산더, 319-198 이집트 프톨레미왕조, 198-165 시리아 페르시아 셀레우코스왕조, 169-167 안티오쿠스 IV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 침략, 165-134 마카비가의 봉기, 134- 63 마카비가의 하스몬왕조(바리새파 등 출현),< 63- 37 로마 폼페이우스 예루살렘 침공, 37-서기4 로마 헤롯왕조>, 결국 167년 사건으로 인한 것이다. 유대의 헬라화, 곧 이방인의 문화를 혼합당한 유대인의 자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기에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이 나온다. 그 전통에 의하여 율법을 강화한 것이다. 이들은 당시에는 민중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생각, 곧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율법의 울타리를 치면서 강화하였지만 경직되고 말았다. 안식일 엄격한 준수, 할례 등을 통하여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타민족과의 혼합을 거부하고 닫힌 경직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형식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이 성취해야 한다는 독단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작 사랑에 의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곧 사람들을 살리는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위배하고 오히려 반역하며 사람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살리려고 생명을 주시려는데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도 죽인 것이며 생명을 죽인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러한 그들의 언행 속에 하나님은 역사하고 있었다. 요한복음 저자는 11장의 45절 이하에서 가야바를 통하여 그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자 죽음도 이겨내신데, 그들은 그 죽음의 길로 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다. 인간은 죄악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고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종말에 그것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12

1-11절 베다니 부활한 나사로 집에서 예수를 위한 잔치에 나사로 등과 식사 때,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을 낭비라고 말리던 가룟 유다에 가난한 사람과 달리 자신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했고, 유대사람들이 나사로를 보려 몰려왔으며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를 죽이려 모의하였다 한다. 12-19절 명절에 무리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예수를 맞으러 나가 찬양한 것은 성경말씀대로 행한 것이고,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가 영광 받으신 뒤 깨달은 것이며, 나사로를 살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을 증언 하였기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제 다 틀렸다고 하며 사람들이 다 예수를 따라갔다고 한다. 20-26 명절에 예수를 보러 온 그리스 사람들에게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며 자신을 섬기려는 사람은 자신을 따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높여줄 것이다고 한다. 27-36 예수님은 자신은 죽기 위해서 왔다고 하고, 들려야 하는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빛의 자녀가 되라 한다. 37-43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믿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사야서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었으며 유대 지도자들 가운데 몰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나 그것은 그들이 회당에서 쫓겨날까함이었으며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것이었다 한다. 44-50절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고 한다. 또한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며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할 것이며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여 주신 대로 말할 뿐이다고 말한다.

 

13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친구라 하고, 세상과는 거꾸로 주인이 종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복이 된다고 하신 예수님. 그러나 한편 모두는 아니라고 하며 성경에 따라 돈 때문에 배반하는 유다를 말씀하고 내가 보낸 사람을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하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충성을 다짐한 베드로에게 오히려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4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임을 말하며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빌립에게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보도 믿으라 하고 그러면 자신과 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하며 내 이름으로 구하면 이루어주겠다고 하시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하고 진리의 영이고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 함께 하시겠다 하며, 다시 오시겠다 한다. 왜 드러내놓고 행하지 않느냐는 유다에게 아버지를 사랑하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할 것이라고 하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다고 말한다. 평화를 남겨 주니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한다. 세상 통치자는 어떤 권한도 없다며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신 그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15

예수님 자신이 택해 세운 제자들이 열매를 맺도록 참 포도나무이며 사랑인 자신 안에 머물러 있어 서로 사랑하면 내 친구다고 하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나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보낼 보혜사 성령이 증인이 될 것이니 너희도 세상에서 증인이 될 것이라 하신 예수님.

 

16

성령과 제자들이 증인이 될 것이라는 것은 제자들을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제자들을 회당에서 쫓아내고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할 때 제자들이 그러한 사실이 생각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성령은 불신과 십자가의 의와 세상통치자의 정죄에 대하여 깨우쳐 주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며 주님을 영광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것을 가진 주님의 권한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십자가로 인하여 구하는 대로 받을 것이기에 제자들의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세상에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믿기에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지만 너희가 흩어져 환난을 당할 것이 용기를 내라며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한다.

 

17

예수님의 기도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하신 말씀의 종합이다. 때가 왔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주신 권세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는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며 사명을 감당하여 영광을 돌렸으니 영광되게 해달라고 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명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고,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을 알게 되었으며, 믿게 되었으니, 저들을 지켜주셔서 하나 되게 하시라고 하며, 저들 속에 내 기쁨이 넘치게 해달라고 한다. 저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니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거룩하게 하게하고. 하나님 안에 있게 하여 세상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하시며 저들 안에 아버지과 자신의 사랑이 있게 해달라고 한다.

 

18,19

예수님께서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 게쎄마니 동산(농원, 과수원)에서 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과 로마 군인들이 등불과 햇불과 무기를 들고 유다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와 신분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185,6절에 보면, 예수님이 내가 너희가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 때, 그들은 뒤로 물러나서 땅에 쓰러졌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요한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예수님이 신적 능력이 있는 신이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자들은 잡지 말고 가게 하라고 하며 제자들을 보호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내게 준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잃지 않는다는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고 요한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으로 예수님이 잡히려하니 단검을 가지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서 자르나 11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아라 하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이후 예수님은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 전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잡혀가 제자들과 그의 하신 일을 심문받고 이미 다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라하며 심문에 답하지 않으니 그 종들이 건방지다며 때리는 것에 잘못에 대한 증거 없이 때리느냐며 항의한다. 그리고 가야바에게 보내진다. 가야바의 집 뜰에서 하녀가 베드로에게 제자가 아니냐고 할 때 아니라 하여 예수님을 부인하고, 불을 쬐고 있을 때 사람들의 같은 질문에 아니라고 하며, 말고의 친척이 예수님이 잡힐 때 현장에 있었다는 말에도 아니라 하니 닭이 울었다고 하여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함으로써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있으신 분이심을 요한 저자는 표현한다. 어어 새벽에 빌라도 총독 관저로 가서 심문을 받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이방인과 접촉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 위하여 관저에 들어가지 않은 그들은 소요를 빙자하고 로마 황제에 충성하지 않음을 빙자하여 빌라도를 압박하여 따라 죄수를 풀어주는 유월절 관례에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한다.결국 돌박은 자리라는 리토스트론(가바다) 재판석에 앉은 빌라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메리에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이라는 명패를 쓰고 십자가에 달린다. 병정들은 성경말씀대로 겉옷을 4사람이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제비뽑아 가진다. 그 현장에 모친 마리아,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고 함께 있던 요한에게 예수님은 모친을 부탁하여 자기 집에 모신다. 그 뒤 예수님은 목마르다하고 우슬초를 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입에 받으시고 다 이루었다 하고 머리를 떨어뜨리고 숨을 거두신다. 유대사람들은 그 날이 유월적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그냥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치워달라고 하고 한 강도의 다리를 꺾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었기에 다리를 꺾지 않았지만 한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성경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뒤 빌라도에게 청하여 아리마대 요셉이 시신을 거두고 디고데모는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가지고 시신을 모셔다가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아 동산 새 무덤에 모셨다 한다.

 

20,21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아내일 가능성을 추론 하고,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내주셔서 재산을 바쳐 예수님 사역을 협력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 말하니 그들도 빈 무덤을 확인하고 돌아간 후, 두 천사를 보고, 부활하여 변화된 예수님을 만나, 제자들에게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을 전한다. 부활장이라고 하고 복음서보다 먼저 50년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는 바울의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막달라 마리아가 맨 처음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기사는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주간 첫 날 저녁에는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평화의 인사를 하고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며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한다고 하고 숨을 불어 넣으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며 죄사면의 용서권을 주신다. 이때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제자들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말을 듣고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하나 8일 후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확신하나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이어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의 표징이 많지만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저자의 차후 추가 기록이나, 아니면 요한복음 저자의 제자에 의한 추가 기록일 21장은 디베랴 바다에서 7제자에게 나타난 예수님이 물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153 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하고, 함께 식사하며, 베드로의 사명을 다짐받는 내용과,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요한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요한에 대한 당시의 죽지 않을 것이 아니라 하며 바로 잡는 해명을 기록한다. 21장 추가 저자는 이러한 요한복음 기록자가 바로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그 제자이고 추가 기록 저자가 요한의 제자들임을 암시하는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고 하며 예수께서 하신 일을 다 기록하는데 모든 책을 동원해도 부족할 것이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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