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100926주일낮예배 제목 : 명절에 있었던 일 성경 : 요한복음 7장 1-24절 본문

설교

20100926주일낮예배 제목 : 명절에 있었던 일 성경 : 요한복음 7장 1-24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0. 12:14
반응형

20100926주일낮예배

제목 : 명절에 있었던 일

성경 : 요한복음 71-24

 

1. 명절에 있었던 이야기 본문, 예수님은 우리들과는 다른 인생을 사셨다.

 1) 같은 핏줄의 형제라도 예수님은 달랐다.

2) 더구나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유대인)이라도 예수님은 달랐다.

* 나를 보내신 분의 뜻 - 계시

 

18절 말씀,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 그러한 사람은 불의가 없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모세의 법(율법)을 따르는 너희는 할례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약속이라 하여 안식일이라도 할례를 행하고도 내가 안식일에 하나님의 뜻이기에 사람의 몸을 성하게 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범한다고 죽이려 한다. 불의한 것이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지(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사람들과 예수님은 다른 것이다.

형식적으로, 그저 전통적으로 명절을 지켜야 한다는 형제들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기 때문에 명절에 굳이 유대로 올라가려하지 않은 다른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욕망을 위하여 살지만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산다. 여러분도 세상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삶을 산다. 하나님의 계시는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자기 욕망에 끌려 사는 사람과 하나님을 바라고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라. 삶이 다르다.

절망하지 않는다. 활기가 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울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희망을 갖는다.

 

2. 다른 가치관에 의한 다른 인생

평범한 탈북여성의 기막힌 인생 여정

[탈북민이야기] 탈북, 북송, 강제노동, 인신매매, 그리고

우리 네 자매는 모두 남한에 내려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두 그리스도인이구요. 첫째인 제가 교회 전도사고, 둘째가 집사, 셋째가 권찰이랍니다. 아버지는 현재 영국 런던의 한 한인교회에서 평신도 사역자로 탈북민들을 돌보고 있어요.”

7월 중순 서울 한 커피숍에서 만난 탈북민 차혜원 씨(41)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녀의 인생은 죽음과도 같은 처지였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었다며 지난날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차혜원 씨의 고향은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도 온성이다. 아버지는 노동당 간부들의 차량을 책임지는 운전기사로 일했다. 어머니는 재봉틀 일을 했는데 차 씨가 15세 될 무렵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차씨가 3명의 여동생을 돌봐야 했다. 가난했지만 네 자매가 모두 고등중학을 나왔고 차 씨는 전문학교에서 크레인 기술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크레인을 보면 운전하고 싶다고 한다. 차 씨는 의붓 엄마의 소개로 스물네살 때 세 살 위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네 살 된 딸을 둔 기혼남이었고 평범한 노동자였다. 차 씨의 집안이 결혼 지참금을 내놓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해 총각 남편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마음이 여린 편이었는데 집에서 지참금 탓을 하며 아내와 헤어지라는 핀잔이 잦아지자 아사자가 속출하던 90년대 중반 그만 자살하고 말았다. 차 씨는 시집 식구들의 천대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을 결심했다. 그때가 19994, 딸의 나이가 네 살 무렵이었다.

이미 2년 전 중국으로 탈북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차 씨는 여동생과 함께 딸을 업고 아직 녹지 않은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차씨 일행은 탈북 직후 중국 공안에 발각돼 북송됐고 청진 도집결소에서 두 달, 온성 노동단련대에서 한 달을 고생하며 보냈다. 차 씨는 그곳에서 생지옥을 경험했다며 치를 떨었다. 도집결소에 처음 들어서자, 거의 백골 상태로 발가벗겨진 한 남자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수용된 사람들의 운명이고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결소 안에서는 경비원과 남자 죄수들이 보는 가운데 여자들을 발가벗기는 일은 보통이고 숨겨온 돈을 찾겠다고 다리를 벌려 몸속을 검사하는 일도 허다했다. 생지옥 같았던 노동수용소 하루 두 끼 식사라고 주는 것은 ...

 

같은 한민족인데 이북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은 다른 모습으로 산다. 특히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생하다. 왜 우리는 잘 사는데 이북은 잘 살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그래도 국민들을 위하여 정부가 있는데 이북도 인민들을 위할 텐데 정일 일당들은 잘 살고 인민들은 못 사는가? 잘못된 가치관과 체제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부정하는 칼 맑스의 사상의 실천이 레닌으로 다시 스탈린으로 이북에서는 김일성으로 그리고 현재 김정일로 이어진 것이다. 맑스는 헤겔로 헤겔은 칸트로부터 나온 인본주의적 현실만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보지 못하며 인정하지 않는 결과였던 것이다.

 

다른 예를 든다.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71), 마가레트(70) 소록도에서 43년의 생을 소록도 사람들과 함께 산, 굳이 봉사했다 또는 희생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인생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산다.

* 43년간 소록도봉사 외국인 수녀 2, 2007- -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나 -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을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

3. 예수님의 명절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을 배운다. 명절도 그렇게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인생은 허무로 끝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다른 인생을 사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