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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7주일낮예배 제목 : 두렵고 떨리는 마음 성경 : 빌립보서 2장 12-18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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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7주일낮예배 제목 : 두렵고 떨리는 마음 성경 : 빌립보서 2장 12-18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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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7주일낮예배

제목 : 두렵고 떨리는 마음

성경 : 빌립보서 212-18

 

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14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18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전남 보성의 박모목사 자녀 사망 사건만이 아니라 매일같이 추악한 기독교인들 목사들의의 행태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믿음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보도 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저지른 일들로 인하여 믿음이 무시되고 있다. 반 기독교적 분위기가 형성되며 기독교를 불신하도록 한다. 물론 문제가 된 사람들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이며 오도된 믿음에 의한 것은 분명하다. 바르지 못한 신앙과 신학에 의하여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어리석음이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목사부부 보성 3남매 치사사건충격 전말

이들 부부는 성경 잠언 2313‘13 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여서 죽지는 않는다. 14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죽음 또는 죽은 자의 영혼이 거처하는 곳)’라는 구절을 들어 이 같은 행위를 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또 고린도후서 1124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라는 구절에 따 라 때리는 횟수를 정했다. 감기라는 질병과 금식기도로 인해 속이 굶주려있는 상태에서 3남매는 부모의 채찍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일과 2일 잇따라 숨졌다. 박씨가 속한 교회는 한국 기독교 5대 교파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 부부는 애들이 죽자 겁이 나 거짓말을 계속했다. 애들을 굶기고 때린 것이 후회스럽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지체장애 2급으로, 정식 신학대를 졸업하지 않았다. 박씨는 내가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지만 기존 교회에서 이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1999년부터 전남 진도의 한 교회를 다니다 20093월 보성으로 와 월세 20만원에 1층짜리 단독주택을 얻어 자신만의 교회를 열었다. 신도는 약 10~20명 사이로 마을 주민은 없고 거의 외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들은 박씨를 '형제님'이라고 호칭하고 있으며 일반 주민들은 '목사님'으로 부르고 있다.

그들 역시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아꼈고, 잘 키워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잘못된 종교적 맹신에 빠진 나머지, 이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박씨는 종파가 없는 진도 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정규 신학교는 물론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채 부인과 함께 20093월부터 전남 보성읍 한 주택에서 '보성교회'라는 이름으로 일명 '형제교회' 목회활동을 하는 등 이단 목회자로 생활해 왔다.

 

치유한다고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들의 자가 치유능력을 불러일으켜 질병을 낫게 하는 비의료적 신앙적 행위. 사람은 자가 치유 능력이 있다. 수면이라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무지하고 잘못된 신앙 이해에서 치유를 오도시키는 미련한 기독교인들이 있다. 기독교는 무당종교도 아니고, 의술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며, 기적만을 체험하도록 하는 종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주된 목적이 아니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여, 예를 들면 믿음이 있으면 농약을 먹어도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무지한 것이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잘못된 행동과 언어와 사상과 생각을 후회하도록 회개케 하여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래서 다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며 절망을 이겨내고 소망을 갖게 하며 결과적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는 구원의 방편인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본문 12절에 나오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갖는 두려움과 떨림, 죄렌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면, 공포와 전율(Fear and Trembling)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믿음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약속에 대하여 예리하게 그의 책에 기록하며 믿음과 약속에 대한 그의 믿음의 확신과 본질을 말한다.

창세기 221-19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1)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의 본질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가는 현상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경외심과 숭고심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부러진 세상에서 자신을 바르게 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그의 도움과 안내를 받으며 사는 것이고, 그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탄의 나라, 세상나라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인생을 살고 그의 나라에 종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도덕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현상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약속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는 자기 자식을 죽이는 살인행위지만,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행위다고 말한다. 이는 무서운 모순이다. 모순 속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불안이고 공포고 전율이다. 살인행위인가 신성한 행위인가의 문제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하나님은 결코 이삭을 요구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모순 속에서 부조리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은 것이다. 현생에서 행복을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것, 인간적인 일체의 타산을 버리고 유한한 것을 단념하고, 부조리하고 모순되고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단념하고 포기하는 가운데 오히려 유한한 것을 세상 것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살인까지도 신성한 행위로서 이삭을 되돌려준다는 역설이 아브라함의 생명의 내용을 이룩하고 있는 믿음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돌파하는 믿음이다. 외로운 길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해시킬 수도 없다. 절대자와의 관계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뇌와 불안이 있고, 이 고뇌와 불안이 없이 믿음의 축복도 없다.

정리하면 살인 행위라는 윤리적인 목적 보다 더 고차원적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의무라는 목적이 있어서 반윤리적인 행위인 자식 살인이라는 행위마저 허용, 시인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홀로 서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역설이다. 믿음은 그래서 삶과 인생의 열정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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