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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주일낮예배 제목 : 운명과 노력으로 또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성경 : 창세기 12장 1-9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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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주일낮예배 제목 : 운명과 노력으로 또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성경 : 창세기 12장 1-9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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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주일낮예배

제목 : 운명과 노력으로 또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성경 : 창세기 121-9


점을 치는 사람들에 의하면 얼굴의 점도 그 사람의 운명을 말한다고 한다. 관상을 본다. 생년월일을 본다. 육십갑자를 본다. 궁합을 본다. 손금을 본다. 어렸을 때 많이 듣던 말이다. 그것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보다 재미로 본다는 사람도 있었고, 형편이 안 풀려 본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뭔가를 알 수가 없어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도 참고할 뿐이라고 하면서 참고한다고 했었다. 사람이 인생을 모르기 인생을 모르고 안 풀리니까 그러한 데 의존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옛사람들의 경험에 의한 통계일 수 있다. 그러나 믿을 것은 못된다.

저는 살면서 어떤 일이나 사건이나 사물이나 관계나 사람이나 원리나 원인이나 결과나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을 제대로 아는, 알 수 있는,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 제대로 알기만 하면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그런데 현실을 제대로 알고 사는 것 이상으로 미래의 일을 미리 아는 능력인 예지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에게 예지력이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인간을 그런 예지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예지력까지있는 사람은 미래까지 대비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우연과 요행과 행운과 필연과 을 만난다. 우연은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 어떤 사상(事象)이 인과 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성질을 가지는 것, 어떤 원인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필연은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일, 원인에 의하여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우연과 필연은 우리 생활에서 일상적이다. 뉴튼의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처럼 우연은 우연히 지나가버리기도 하거나 위대한 혁명이나 능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연은 어떤 자극이나 만남을 어떤 행위나 사물들에 연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필연은 그 우연이 상대나 대상이나 사건에도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필연을 절대화하면 숙명론에 빠지고, 우연을 절대화하면 비결정론에 빠지게 된다.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사람들은 요행(뜻밖에 얻은 행운(좋은 운수(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과 기수(氣數))))과 복(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 또는 거기에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을 바라고 기적을 바란다. 확률 0%인 로또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고, 내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고, 돈 잘 벌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인간은 노력과 상관없이 운이 좋기를 바란다. 행운이 있기를 빈다.

우연 인가! 필연 인가!| 습관이 평생을 좌우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한다. 학교 공부를 하는 것도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또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한 사람이 되려는 것도 다 "잘 살기 위한 마음에서"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한다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또 남 보기에 착하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우선 "잘 산다"의 의미가 무엇일까? 잘 산다는 말은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 신이 원하는 바가 다 잘 이루어지는 삶을 말한다. 잘 못 산다는 말은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삶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잘 이루어진다는 말인즉, 자신이 원하는 바가 세상 이치에 잘 맞는다는 말이다. 세상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사람은 실수도 착각도 많이 하지만, 세상 이치란 눈꼽만큼도 착오나 우연은 없는 법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코스모스를 심었는데 장미가 나올 리 없고, 무우를 심었는데 인삼이 나올 리 없지 않은가! 비가 올 조건이면 반드시 비가 오고, 비가 올 조건이 아닌데 비가 올 리가 있겠는가! 사람의 운명도, 삶도 마찬가지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절대 우연이나 요행이 아니다. 반드시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알고 보면, 자기 믿음에 달려있다. 아주 간단하다. 매 순간 자신이 당면하는 상황 내지는 사물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에 그 원인이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 앞에 주어진 일, 내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내가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에 따라 나의 반응 즉, 내 느낌과 생각이 다르고 내 느낌과 생각 여하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의 대응이 달라진다. 같은 상황,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사람마다의 인식과 대응이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해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법이다. , 내게 주어진 상황, 내가 당면하는 사물들을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 왔는가가 곧, 내 삶의 현실로 이어졌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도 알 수 있는 법이다. 매 순간 주변 사물에 대해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 왔는가는 내 잠재의식 속에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믿음에서 비롯되며 그 믿음이 변하지 않는 한 내 삶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잠재의식 속 내 믿음의 뿌리는 나와 내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이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들이 단 한 순간도 놓침이 없이 경험 당시의 느낌과 감정 그대로 의식 무의식에 저장 기록되고 의식 무의식에 저장 기록된 경험정보들이 쌓여 매 순간 내가 당면하는 상황 내지는 사물들을 인식 대응하는 마음의 기준 잣대가 되고 믿음이 됨에, 사람은 누구나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 무의식에 각인된 자기 믿음 외에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경험(배움)(보다는 체험)이 의식과 무의식 속(두뇌)에 기억(배움)이 되어 그것들이 기준이 되어 말하며 행동하며 산다. 배운 대로 사는 것이다. 아는 대로 산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고 경험한대로 산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노력한대로 산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는 대로 사는 것 이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세상을 인간은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한계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산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아는 것 노력하는 것을 넘어 초월적으로 사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받아 믿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성공과 실패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가 있는가 무의미 곧 허무한가로 판명되는 것이다. 구별되는 것이다.

한편 기적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예지력을 가지고도 알지 못한 일이 나타나는, 원인에 의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 우연과 필연이 아닌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여 복된 삶을 살기를 소원하고 기도하기를 축원한다. 열심히 살자. 그러나 나의 예지나 기대나 예상 그리고 우연과 필연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믿고 살자.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그러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 복을 누린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다.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8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9 아브람은 또 길을 떠나, 줄곧 남쪽으로 가서, 네겝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의 마음을 다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면서 사는 사람이었다. 예배를 소홀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를 축원한다.

믿음으로 행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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