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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9주일낮예배 제목 : 인생은 특별하다. 성경 : 창세기 22:1~14, 시편 13, 로마서 6:12~23, 마태복음 10:40~42 본문
20140629주일낮예배 제목 : 인생은 특별하다. 성경 : 창세기 22:1~14, 시편 13, 로마서 6:12~23, 마태복음 10:40~42
필명 이일기 2018. 12. 12. 11:1520140629주일낮예배
제목 : 인생은 특별하다.
성경 : 창세기 22:1~14, 시편 13, 로마서 6:12~23, 마태복음 10:40~42
창세기 22:1~14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신은 다 똑같은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아직도 신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데! 사실일까요? 산을 오르는데 이런 길 저런 길 수많은 길이 있지만 정상은 하나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때문에 산 정상인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불교의 부처나 무속종교의 귀신이나 다 똑같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신은 다 똑같은 신인가?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 지만 정상은 하나다는 말은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산 정상이 하나인 것처럼 신도 다 똑같다고 할 수 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은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은 수많은 민족들을 돌보지만, 그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인류 구원을 위해 모든 민족을 선택하여 그 민족들 모두에게서, 곧 수많은 가문 성씨들에게서 한명의 구세주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수많은 민족 가운데 대표적으로 한 민족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 중에서도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후손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탄생하게 한 하나님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신이다. 신은 다 같지 않다. 따라서 어떤 종교라도 믿으면 되지 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선택하여 믿어야 한다.
창세기 본문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시기도 하지만, 특별하게 필요한 제물을 준비 시켜주신 하나님이다.
창세기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에만 있어서 그저 우리의 지식에 불과하고 우리 인생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 아니고, 우리 인생을 섭리하고 좌우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분이다. 그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이다. 극단적인 순간에 숫양을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리도록 하신 하나님이다. 14절 말씀대로 말하면 여호와이레다. 준비시켜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가 바치라고 한 이삭 대신 아브라함에게 숫양으로 제사 드리도록 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마저도 이때가 아닌 다른 경우나 때에 하나님의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제물을 준비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다. 물론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하다. 신이 다 같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본문의 하나님은 인간을 궁지에 까지 몰아넣으시며 시험하시되, 그 궁지에서 아무 염려하지 않아도 되도록 필요한 것을 특별하게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시편 13
1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2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3 나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
4 나의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
5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6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절망 가운데 시편기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에 기뻐하며 찬송한다.
이삭과 같이 죽을 순간에 직면한 입장에서 절망의 극에 와 있는 것처럼 느낄 때 시편 본문의 기자에게 하나님은 전혀 자신에게 무관하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이전에 경험한 하나님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셨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해주실 것을 생각하여 기뻐하며 찬송 드린다고 말한다. 시편 기자는 그렇게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참을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신 하나님, 확실히 자신을 구원해주실 하나님이시기에, 숫양을 준비시켜주시는 하나님임을 알기에 절망의 순간에도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 드리겠다고 말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각 개인에게 각 상황에 맞게 특별하게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이 아니다. 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여러분 각자와 각각의 순간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로마서 6:12~23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1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여러분이 아무에게나 자기를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죄의 종이 되어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거나,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18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22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23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 본문은 거룩한 삶을 살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고 말한다.
로마서 본문은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서야 되겠는가 하며 부활의 은총으로 다시 사는 믿는 사람답게 거룩해지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의 지배를 받을 때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 믿는 사람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죄는 죽음이고 의는 생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3절로 요약된다. 죄의 삯은 죽음이고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룩 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신 숫양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다른 종교에는 예수가 없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다른 종교와 다르다. 다른 종교에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음 가운데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없다.
마태복음 10:40~42
40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복음 본문은 예수를 맞아들인 사람이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이고, 작은 자를 맞아들이며, 그래서 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본문은 로마서 본문의 말씀대로 죄에 죽고 의에 사는, 거룩하게 사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은 예수를 시인하고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곧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으로 의인이 되어 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한 사람은 예수, 하나님인 작은 자라 할지라도 맞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기독교는 예수 믿는 특별한 종교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다. 같은 것이 아니다. 천국 가는 길이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믿고 천국 간다. 특별하다.
믿는 사람도 특별하게 각각 상급이 다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르게 특별하게 역사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 믿는 사람들 각각도 각양의 모습대로 각각의 삶의 역할과 소명에 따라 다르게 역사하신다. 모든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만 그러나 상급은 다르다. 작은 자 하나에게 한 행동에 따라 상급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서 우리 각각에게 하나님은 다르게 특별하게 섭리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 인생에서 똑같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상황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역사하신다. 특별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각기 다른 인생에 다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각 사람을 특별하게 선택하여 그에 따라 상급을 주시니 특별한 상급을 받도록 충성을 다하자.
세상에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지만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은 각각의 특성과 역할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수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로 선택하신 하나님,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 다르게 역사하신다. 그 한 사람에게도 상황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역사하신다.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넘어간 이후 우리 믿는 사람은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 똑같이 공부해도 똑같이 좋은 직장 갖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특별한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특별히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하여 상 받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필요를 준비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신 예수를 믿음으로 매 순간과 상황에서 작은 자도 맞이하는 거룩한 삶을 살자.
하나님은 각각 다르게 상을 주실 것이다. 여러분은 특별한 상을 받기를 바란다. 특별한 상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자.
작은 자에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다.
그 상은 특별한 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