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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6주일낮예배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다시 오심 성경 : 베드로후서 1장 16-21절 주제 : 재림 신앙을 갖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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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6주일낮예배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다시 오심 성경 : 베드로후서 1장 16-21절 주제 : 재림 신앙을 갖자

필명 이일기 2018. 12. 1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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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6주일낮예배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다시 오심

성경 : 베드로후서 116-21

주제 : 재림 신앙을 갖자

구조

 

1. 사순절 4주와 운칠기삼(運七氣三)

운칠기삼은 청나라 포송령(蒲松齡) 이란 작가의 작품 "요재지이(僥齋志異)"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한 선비가 과거공부를 했는데 흰 수염이 나도록 번번이 낙방하여 가산이 기울고 아내는 가출해 버렸다. 죽을 작정을 하고 대들보에 동앗줄을 매어놓고 생각하니 자기보다 못한 자들이 번번이 급제한 것이 억울하여 죽을 수가 없었다. 이에 옥황상제에게 가서 따져보기로 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시합을 시켜놓고 서생에게 말했다. "정의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네가 분개한 것이 옳고 운명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네가 체념하는 것이 옳다"했다. 술시합에서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을 마시고 정의의 신은 석 잔 밖에 마시지 못했다. 옥황상제는 말했다. "세상은 정의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이 꼭 따르는 법이다. 세상이 7푼의 불합리가 지배하고 있긴 하나 3푼의 이치가 행해지고 있음도 또한 명심해야 한다."

 

자연주의, 과학주의, 사실주의 관점에 의하면 세상은 원인에 의하여 결과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생 살면서 누구나 다 깨달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을 초월하여 작동되는 원리가 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자연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다 뜻이 있고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경배하며 찬양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사순절 기간을 지내기를 바란다.

 

2.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는 전통적 입장에 의하면, 베드로후서 본문에서 언급한 대로, 베드로가 나이 들어서 두 번째 편지를 그가 죽기 전 67년경 이전에 쓴 것이다.(벧후3:1) 예수가 당대에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시몬 마구스 등)의 불신에 대하여 경계하며, 그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확신을 가지고 살도록 아시아와 시리아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다. 예수에 대한 다른 인식을 하며 자기 정당화에 빠진 헬라 문화적이며 신화적이고 신비체험주의적이며 신령주의적인 영지주의 태동기에, 예수는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살았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분임을 목격한 당사자인 베드로 자신이 신자들에게 확고한 믿음 안에 살도록 쓴 것이다.

비록 재림이 지연되고 있지만 재림은 없다든가 하는 것은 인간들의 잘못된 판단에 근거할 뿐, 주님께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 오래 참으시지만,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이고, 그 때 세상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이니, 주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이 앞당겨지도록 거룩한 삶을 살아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3. 116-21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다시 오심에 관하여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며낸 신화, 영지주의로가 아니라 변화산(타보르 산 또는 헐몬 산)에서 눈으로 직접보고 귀로 들어 확인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인 구약성경의 예언의 말씀으로 확실해진 것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언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것은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구약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를 직접 목격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오신다는 것도 베드로 등이 직접보고 들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한 마디로 예수가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리고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것은 베드로 등이 직접 보고 들었고 이미 구약에 나와 있어 확실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은 그것을 헬라 문화적으로 다르게 이해하거나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상상과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다는 말씀이다.


4. 31-13

- 재림에 관한 자연주의자와 예수 믿는 자의 차이

- 두 가지 문화와 철학 또는 두 가지 세상사는 사람들의 인식과 방식

그것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인식이다. 세상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돌아가는 이치에 관한 것이다. 더 좁혀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보는 것을 보고 판단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자연 현상을 보고 자연은 예로부터 그대로이고 변함없다는 입장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헬라문화주의, 자연주의, 과학주의 입장으로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꽃이 피는 자연과 같이 계절은 바뀌지만 반복될 뿐 그대로라는 것이다. 사람은 태생대로 산다는 말이다.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역사는 히브리문화와 같이 하나님이 섭리한다는 입장이고 자연이나 사람은 변한다는 말이다.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그 처음이 있었던 것과 같이 언젠가는 종말이 온다는 입장이다.

 

자연주의의의 특별한 것은 없다는 입장은 언제나 하던 일 그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정적이다. 나름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은 예전 사람들이 살다가 죽는 것처럼 자신도 그저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 허무한 인생이 되고 아무 의미없이 살다가 죽는다. 하나님은 없다. 잘해야 처음 만들기만 했고 자연의 원리에 맡겨 스스로 알아서 돌아간다고 본다. 기계적으로 살다가 기계적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섭리의 역사에서 특별한 것이 있다는 입장은 변화하는 새로운 기대 속에 발전하며 산다. 변화를 주도한다. 그래서 어찌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안정적이다. 하지만 현재에 눌러앉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인류 역사가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기에 하나님은 이 역사에 개입하여 사람들을 돌보시고 그의 뜻대로 이끄신다고 믿는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변한다는 말이다. 어린이에서 청소년, 청년, 성인, 노인으로 변한다. 자연을 보더라도 변한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으나 신앙에 있어서는 후자가 옳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이고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죄악이 있고 그 죄악을 쓸어내는 역사가 진행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심판은 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하셨고 그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듣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 세상에 진행되고 있다고 하던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 알려진 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5.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었다. 신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그를 따르며 그의 복음을 전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이고 엉뚱한 해석을 하며 자기 정당화하고 살아간다. 자기 스스로 좌표도 모르고 살아간다.

물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본 사람도 처음에는 자연인들처럼 헬라사람들처럼 고민했다. 그 고민 끝에 자신에게 나타난 특별한, 일상적이지 않는 현상을 직시하고 듣고 양심대로 사실을 사실 대로 말한 것이다. 인류와 우주의 종말은 있다. 그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특별하게 사셨던 예수는 분명 다시 온다. 그를 믿고 현실을 돌파하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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