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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주일낮예배 제목 들을 수 있는 사람 성경 이사야 55장 1-8절 주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라 본문
20161016주일낮예배
제목 들을 수 있는 사람
성경 이사야 55장 1-8절
주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라
A. 서론
오늘은 이사야서로 말씀을 나누지만, 제1, 제3 이사야서는 많은 예언자들의 내용과 비슷하니 대략적으로 흝어보고, 제2 이사야서를 중심하여 말씀을 나눈다.
1) 3부분의 이사야서
이사야서 신약 곳곳에서 100회 이상 인용된다. 고난 받는 종과 예언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사야서는 최소 3부분으로 되어있다. 제1 이사야서는 1-39장이다. 구약성경이 39권인데 같은 수다. 제2 이사야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한 이사야의 제자가 저자로 40-55장이다. 제3 이사야서는 제2이사야의 제자?가 저자로 56-66장이다. 성경 총 66권과 같은 수의 총 66장이다. 제2,3 이사야서가 16+11=27장인데 신약 27권과 수와 같다. 이 같은 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 치고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2) 이사야
이사야는 추정컨대 기원전 765년경 선지자 아모스가 아닌 아모스의 아들로 태어난다. 아마도 분열왕국 남 유다의 20명의 왕 가운데 10번째 왕인 웃시야 왕(기원전 792-740년경)의 사촌이거나 9대왕 아마샤(기원전 796-767년경)의 조카였을 가능성이 높고, 성전과 궁정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6장), 궁중 서기관이었을 것이다. 이사야는 예언자인 아내와 두 아들 마헬살렐하스바스(노략이 속히 올 것이다)와 스알야숲(남은자가 돌아올 것이다)을 두었다. 그는 유다의 10대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14대 므낫세 왕 시대를 살았다. 이사야란 이름의 뜻은 “주님께서 구원하신다”이다.
3) 이사야의 소명 6장 6-9절
기원전 740년경 웃시야(기원전 792-740년경) 왕이 죽던 해, 6장에 의하면, 이사야는 높이 들인 보좌에 계시는 주님을 뵙고, 한 스랍이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너의 악이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주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할 때,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한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는 가서 백성들에게 성읍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듣기는 하지만 깨닫지도 못하고, 보기는 하지만 알지는 못한다”고 일러라 하는, 주님의 소명을 이사야는 받는다(6장).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된다. 루터가 하나님 앞에 대답한 내용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Here I stand.
4) 제1 이사야의 활동
우리 아이들이 북한하고 한판 붙자고 한다. 휴전선은 무승부고 중국은 미국이, 러시아는 일본이 상대하면 된다고 하고 샤드정도가 뭐냐는 것이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는 이로 대응해서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다. 게임에서 배운 것이다. 인명과 재산은 아무 관심이 없다. 전쟁을 반대하는 아이들이 없다. 평화와 정의는 사라졌다. 오직 이해관계에서 자기 욕망에 휩싸여 있다. 하나님이 없다.
이사야는 아하스왕 때와 그 후임 히스기야 왕 때 그들의 반 앗시리아 정책에 반대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당시는 타락한 사회였다. 오늘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심판하지 않을까? 북한 사회를 심판하고 남한 사회를 벌하지 않을까?
기원전 736년경 이사야는 아하스 왕(기원전 735-715년경)이 즉위한 해이고, 유다 번성기에, 윤리적 타락에 관한 경고의 말씀(1-5장)을 선포한다. 기원전 734년경 아하스 왕 통치 시기, 아하스가 시리아(다마스커스)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이야의 아들 베가의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 제안을 거부하자 르신과 베가는 유다를 침략한다. 이로 인하여 아하스는 앗시리아에 원군을 요청한다. 이사야는 아하스의 정책을 반대하며 경고하고 평화의 나라에 대한 말씀(7:1-11:9, 5:26-29(?), 17:1-6, 28:1-4)을 선포한다. 하지만 이사야의 아하스에 대한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이사야는 제자들과 숨어서 지낸다(8:16-18).
기원전 722년경 – 706년경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히스기야(기원전 715-686년경)가 등극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개혁을 단행하나,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반 앗시리아 그리고 친 이집트 정책으로 히스기야 왕을 조종한다. 이때 이사야는 친 이집트 정책을 반대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14:28-32, 18:20, 28:7-22, 29:1-14, 30:8-17 말씀을 선포한다. 하지만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는 반군을 진압하고(20장), 아쉬돗을 함락시킨다. 이사야는 또 다시 숨어서 지낸다. 기원전 705년경 히스기야 왕은 다시 앗시리아에 대항한다.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701년경 팔레시티나를 침략하나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지지하고 1:4-9(?), 10:5-15:27b-32, 14:24-27 등 말씀을 선포한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은 완전 함락되지는 않는다.
5) 제1 이사야의 처형
기원전 700년경 이후 기원전 695년경 유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폭군 므낫세 왕(기원전 696-642년경)에 의해 처형된다.
6) 제1 이사야서의 남은 자 메시아 사상
이사야는 남은 자들의 왕인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평화와 정의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세상에 퍼뜨리는 분임을 예언한다(2:1-5, 7:10-17, 9:1-6, 11:1-9, 28:16-17).
7) 제3 이사야서
제3 이사야서는 기원전 538년경, 56-66장에서 시(詩)로 되어 있는 63:7-64:11은 포로 생활이 끝나기 전 쓰여 진 것으로 보인다. 66:1-4의 예언은 성전 재건 시대인 기원전 520년경 에 써진 것으로 본다. 66:1-4을 제외한 65-66은 묵시문학은 포로 귀환 직후나 그리스 시대에 써진 것으로 보인다.
8) 이스라엘 회복과 구원 사상
11-12장, 35장, 42장, 49장, 53장 등의 이스라엘 회복은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다고 신약 저자들은 말한다(요한복음 12장 37-41절 등).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이사야 65-66장에 의존한다. 남은 자, 선택된 자만 구원된다는 구원사의 원리는 이에 근거한다.
B. 구체적인 제2 이사야서 말씀
제2 이사야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2 이사야는 기원전 550년경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하는 시기와 포로 귀환을 결정한 고레스의 칙령(기원전 538년경)이 선포된 시기에 활동한다.
1) 위로의 하나님
40장 1-31절 심판, 용서, 위로, 희망, 창조의 하나님, 풀과 꽃에 불과한 인간, 인간이 만든 우상
41장 9-10절 너를 선택하고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 말라는 하나님
42장 1-4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
2) 유일하신 하나님(나만이 하나님이다)
43장 10-11절,
44장 7-20절,
45장 5-6절, 9-10절,
46장 9절
- 나만이 하나님이다는 말은 배타성을 낳는다. 그러나 차별과 독특성 곧 정체성인 본질이 드러난다.
종교는 다 똑같고 하나다는 말은 기독교에 대한 불교인들의 얹혀가기 수법이다. 결코 종교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산에 오르는 길이 여러 개라 할지라도 정상은 하나다고 하는 논리를 종교에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산정상이라는 불교의 극락이나 기독교의 천국은 죽어서 선한 사람들이 가는 낙원으로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 같은 곳에 가기만하면 된다는 논리다. 불교의 낙원의 극인 극락과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은 다르다. 더구나 가는 방법에 있어서 확연히 다르다. 모로 가나 옆으로 가나 마찬가지가 아니다. 불교는 스스로 도를 닦아 불이 되어야 극락 곧 낙원의 최고로 좋은 지극한 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자기 의로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불교가 고타마 싯다르타가 부처가 된 것처럼 모든 중생 인간들이 도를 닦아 부처가 되어 극락왕생, 지극히 즐거운 곳에서 영원히 살자고 하는 불교가 현실적인 종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곧 예수를 믿어 죄 사함 받아 공로 없으나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영원히 즐겁게 살자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비슷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고 다르다. 종교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조상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속에서 말하는 귀신이 아니다.
박수홍 개그맨이자 mc가 어떤 프로에서 흥청망청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고 점도 보고 하는 것을 중계한다. 현대 지식이 충천한 시대에 하나님을 잊고 잃어버린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인생살이에 불안해하며 갈피를 못잡고 있는데 그런 우리 사회와 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민족이 참 신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큰 복이고 하나님의 역사다. 그간 한민족은 옥황상제, 천신, 귀신, 조상신을 믿어 왔으나 본래 천지 창조 주인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그간 수백 년 기천 년 동안 잊어버리고 잃고 살아왔다. 개신교 130년의 역사로 인하여 한민족이 깨어난 것이다.
3) 귀를 열어주시는 하나님
50장 4-9절
하나님이 귀를 열어주셔서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당당히 산다고 말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결단하기 전에 하나님은 나의 귀를 열어주신다. 그 때 비로소 당당할 수 있다. 결국 내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다. 나를 돌아보고 나의 부정한 모든 것을 사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다리라. 하나님은 나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신다. 나를 하나님께 맡겨라.
4) 고난의 종 메시야 하나님
53장 1-7절
사도행전 8장 26-40절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재정 관리 고관이 읽고 있던 구절에서 그는 이사야 예언자를 말하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말하냐고 물을 때, 빌립이 그는 예수라고 해석해준다.
예수님 자신은 고난당하는 종의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한다(눅 22:19-20, 막 10:45).
초대교회는 종의 노래에서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겼다(마태 12:17-21, 요한 1:29).
C. 결론
55장 1-8절(귀를 기울여 주님께 돌아오라)
이사야와 이사야서
신약 곳곳에서 이사야서 구절들을 100회 이상 인용 확대 해석할 정도로 이사야서는 고난 받는 종과 예언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근거다. 이러한 이사야서는 최소 3부분의, 일칭 제1 이사야서는 저자를 이사야로 보는 1-39장, 제2 이사야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한 이사야의 제자로 40-55장, 제3 이사야서는 제2이사야의 제자?로 56-66장으로 편집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765년경 선지자 아모스가 아닌 아모스의 아들이며, 왕족 출신, 곧 웃시야 왕의 사촌이거나 아마샤의 조카였을 가능성이 높고, 성전과 궁정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6장), 궁중 서기관이었고, 예언자 아내와 두 아들을 두었으며,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이사야가 출생한다.
기원전 740년경 웃시야(기원전 792-740년경)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높이 들인 보좌에 계시는 주님을 뵙고, 한 스랍이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너의 악이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주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할 때,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한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는 가서 백성들에게 성읍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듣기는 하지만 깨닫지도 못하고, 보기는 하지만 알지는 못한다”고 일러라 하는, 주님의 소명을 이사야는 받는다(6장).
기원전 736년경 이사야는 아하스 왕(기원전 735-715년경)이 즉위한 해이고, 유다 번성기에, 윤리적 타락에 관한 경고의 말씀(1-5장)을 선포한다.
기원전 734년경 아하스 왕 통치 시기, 아하스가 시리아(다마스커스)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이야의 아들 베가의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 제안을 거부하자 르신과 베가는 유다를 침략한다. 이로 인하여 아하스는 앗시리아에 원군을 요청한다. 이사야는 아하스의 정책을 반대하며 경고하고 평화의 나라에 대한 말씀(7:1-11:9, 5:26-29(?), 17:1-6, 28:1-4)을 선포한다. 하지만 이사야의 아하스에 대한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이사야는 제자들과 숨어서 지낸다(8:16-18).
기원전 722년경 – 706년경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히스기야(기원전 715-686년경)가 등극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개혁을 단행하나,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반 앗시리아 그리고 친 이집트 정책으로 히스기야 왕을 조종한다. 이때 이사야는 친 이집트 정책을 반대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14:28-32, 18:20, 28:7-22, 29:1-14, 30:8-17 말씀을 선포한다. 하지만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는 반군을 진압하고(20장), 아쉬돗을 함락시킨다. 이사야는 또 다시 숨어서 지낸다.
기원전 705년경 히스기야 왕은 다시 앗시리아에 대항한다.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701년경 팔레시티나를 침략하나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지지하고 1:4-9(?), 10:5-15:27b-32, 14:24-27 등 말씀을 선포한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은 완전 함락되지는 않는다.
기원전 700년경 이후 기원전 695년경 유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폭군 므낫세 왕(기원전 696-642년경)에 의해 처형된다.
이사야는 남은 자들의 왕인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평화와 정의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세상에 퍼뜨리는 분임을 예언한다(2:1-5, 7:10-17, 9:1-6, 11:1-9, 28:16-17).
기원전 550년경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하는 시기와 포로 귀환을 결정한 고레스의 칙령(기원전 538년경)이 선포된 시기에 제2 이사야는 활동한다. 제2 이사야서는 소명에 해당하는 40:1-11으로부터 결론에 해당하는 55:6-13으로 끝나며, 하나님의 심판은 예루살렘 멸망으로 끝나고, 포로 귀환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고 위로한다(40:1).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우상철폐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부각시키고, 종교적 보편사상을 강조한다. 새롭게 창조하는 구원의 하나님을 말한 것이다.
제2이사야서는 네 편의 ‘종의 노래’가 들어 있다(42:1-4[5-9], 49:1-6, 50:4-9[10-11], 52:13-53:12). 세 편은 제2 이사야가 썼고 넷째 노래는 그의 제자가 썼을 것이다. 유다전승의 일부는 종의 노래들을 메시아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종은 장차 올 구원의 중개자로 보고 있다. 메시아는 희생을 원한 것이 아니지만 끝까지 ‘종살이’(봉사)에 충실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희생된 것이다. 하나님은 종의 헌신과 사랑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치유를 가능케 하신다. 예수는 고통당하는 종의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한다(눅 22:19-20, 막 10:45). 초대교회는 종의 노래에서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겼다(마태 12:17-21, 요한 1:29).
기원전 538년경 제3 이사야서, 56-66장에서 시(詩)로 되어 있는 63:7-64:11은 포로 생활이 끝나기 전 쓰여 진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520년경 66:1-4의 예언은 성전 재건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포로 귀환 직후나 그리스 시대에 써진 것으로 보이는, 66:1-4을 제외한 65-66은 묵시문학이다.
내용
1-12장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구원 예언
13-23장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과 구원 예언
24-27장 하나님의 열방에 대한 심판, 포로 이후 대묵시록
28-39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말씀, 불행 예고, 포로 이후 소묵시, 역사적 부록(왕하 18,19장) 후대의 역사 기록
40-55장 이사야의 제자로서 포로 말기 바벨론 포로에 대한 위로
56-66장 제2 이사야의 제자에 의한 포로 귀환 이후 만물을 새롭게 하는 종말에 대한 소망 예언
11-12장, 35장, 42장, 49장, 53장 등의 이스라엘 회복은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다고 신약 저자들은 말한다(요한복음 12장 37-41절 등).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이사야 65-66장에 의존한다. 남은 자, 선택된 자만 구원된다는 구원사의 원리는 이에 근거한다.
핵심어 : 거룩하신 하나님, 우상숭배, 신뢰할만한 하나님, 사회적 정의,
핵심 메시지 : 거룩한 하나님을 믿고 앙모하라.
1947년에 이사야서 전체와 다른 하나의 이사야서 일부 사본이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사본은 2007,8년 서울에서 전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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