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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설교 관점의 차이 요한복음 9장 35-41절 본문
20180624설교
관점의 차이
요한복음 9장 35-41절
1. 나그함마디 문서는 1945년부터 1946년 사이에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농부 무하마드 알리에 의해서 발견된 파피루스 코덱스문서다. 콥트어로 된 그노시스파(영지주의파)의 성서 사본 13부와 그것을 해석한 52편 주석서들, 헤르메스 문헌, 플라톤의 국가론 등이다.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영지주의 문서들은 내 안에 있는 참 빛을 찾는 것, 그 빛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며 그 영을 찾아 가는 길을 최근 영지주의 문서라는 도마복음서는 말하고 있다. 예수는 이를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선각자가 되는 것이다. 동양적인 가치관과 연관이 된다.
그런데 파코미아 수도원 소속의 나그함마디의 이들 문서들은 367년 아타나시우스 등이 신약성경을 27권으로 정한 이후 이단으로 정죄되어 대부분 소멸한 것인데 오늘날 다시 등장한 것이다.
아리랑에 관한 한 다른 유래
아(我)는 참된 나(眞我)고, 리(理)는 알다, 다스리다, 통하다며, 랑(朗)은 즐겁다, 밝다는 한자어로, 그래서 아리랑(我理朗)은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뜻이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을 반복하는 것이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해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것이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참 나를 외면하는 자는 완벽 수인 10리를 못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란다.
동양적 가치관의 반영이다.
2. 요한복음 관점
오늘 우리들이 가져야 할 관점은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 일반 서민 대중 등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1947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사해의 서북쪽 연안에 있는 쿰란(Qumran) 지구의 동굴 등지에서 발견된 사해문서 쿰란문서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 등으로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무렵까지의 문서로 그곳에 기거했던 에세네파는 메시아 사상과 묵시적 종말론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에세네파에게서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요한복음 저자는 종말론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공동체는 아마도 에베소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 영지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하여 승천하고 재림하여 인류를 심판하신다는 분으로 믿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선각자, 진리를 깨달은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 하나는 오늘날까지 이어온 기독교고 다른 하나는 동양적인 영향을 받은 그러나 이단 처분되어 소멸한 길이다.
3. 본문에서 저자는 두 가지 문제를 논하고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고 있다.
1)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에 대한 바리새인들 입장의 예수님 심판
바리새인들의 관점은 눈 먼 사람이 된 원인은 그 부모와 그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와 그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기에 그들은 죄인이다. 사건 사고나 장애가 그 사람이나 부모로 인한 것이다는 말이다. 우리와 부모 탓이니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눈 먼 사람이 된 원인은 그 부모와 그 사람이 아니기에 그 부모와 그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은 죄인이 아니다는 것이다. 사건, 사고나 장애가 그 사람이나 부모로 인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눈 먼 사람에서 사건, 사고자와 장애자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의 사역, 곧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을 눈 뜨게 하는 일로 인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는 말이다.
2) 안식일 문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눈 먼 사람을 눈 뜨게 했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지만 율법,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오히려 안식일을 범한 죄인이다고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안식일에 일 하시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응당 하나님의 일을 한 것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는 것이다고 본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죄인이라고 심판한다.
제 삼자인 이웃들과 부모는 자신들의 문제를 알 수 없기에 바리새인과 예수님 사이에서 방황한다. 당사자인 눈 먼 사람은 자신이 눈 뜨게 된 것으로 인하여 예수는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한다.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저자의 입장은 이 사건(기적)을 통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낸다. 곧 예수님의 입장에서 눈 먼 사람을 바라보고 자신의 공동체에 선교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4. 율법과 도덕의 깨달음의 길과 예수의 길
깨달음의 길도 의미가 있다. 율법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고 문제가 많은 인간이 그 율법과 도덕을 모두 지켜서 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사건과 장애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어떤 계획 하에 발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모른다.
예수님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며 우리에게 부활로 인하여 인간 현실 문제의 극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다.
우리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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