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190901 #혼란과 진리 안에 사는 모습 #요한3서 1장 1-4절 본문
20190901
혼란과 진리 안에 사는 모습
요한3서 1장 1-4절
1.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
더위가 있기는 하지만 무더위는 가고 벌써 9월이다. 다음 주는 추석 명절이다. 우리 전통은 명절에 선조들을 기리는데, 사실 추석 명절은 결실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간이다.
고대 터키 에베소 주민들은 사냥하는 풍요의 신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했다.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져서 여성 갱년기 증상 완화 호르몬 제제 아르테미스정, 2024년까지 우주인을 다시 달에 보내는 유인 우주선 '아르테미스 1호' 외에도 수많은 시, 소설, 영화, 만화 등등에 등장한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9장 21-41절,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에도 등장한다.
2. 에베소에서의 대 소동은 바울의 선교로부터 시작된다.
바울은 온 도시에 주님의 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어 구원받으라고 하며,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신이니 신이 아니다”고 선교했다. 그 영향으로 온 도시에 변화가 일어난다. 은장식장이 데메드리오가 아르테미스 신전을 은으로 만드는 직공들에게 돈벌이를 시켜주었는데, 그 신을 신이 아니라고 하니 그것들이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는 동업자인 직공들을 선동한다. 결국 군중들에 의해 바울의 선교 동역자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극장에 붙잡혀 들어가고, 논쟁을 위해 유대교인의 대표 알렉산더를 내세웠으나, 군중들은 거의 2시간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르테미스 여신은 위대하다”고 외친다. 소요가 일어난 것이다. 종래 시청 서기관이 나서서 송사할 일이 있으면 재판정, 총독들에게 고소 맞고소 하고, 문제가 있으면 정식 집회에서 처리해야지 잘못하면 오해되어 소요죄로 문책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며 모임을 해산시킨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기존의 가치관과 문화가 변화하게 되는 과정이다.
소위 전통적인 문화가 변화하는 것은 어떤 요인에 의한 것인데, 특히 종교적 요인은 사회 전체 문화를 바꾸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유교적 전통이 기독교적 문화로 바뀌는 과정이 한 예다.
이 변화의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아직도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추석의 영향 아래 있지만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교하면 충효가 중요한 가치관이다. 사람들이 나라에 충성하고 선조들에 효도하는 것은 유교의 밑바탕을 이루는 좋은 유교 철학이다. 유교 도덕관은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이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사단(四端) 4덕에서 나오는 인간의 네 가지 마음씨, 곧 맹자의 가르침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삼강(三綱)은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고, 오륜(五倫)은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로써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그런데 그러한 유교 문화가 퇴색된 지 오래다. 젊은이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에 효를 다하는 문제 보다 자신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는다. 유교의 사덕사심과 삼강오륜은 오늘 우리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왜 그럴까? 평등의 민주적인 가치관이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기독교 사상이 있다. 불신자들에게도 기독교의 사랑이라는 가치가 영향을 준 것이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이 존중되는 평등을 지향한다.
3. 요한3서 배경과 목적 그리고 1-4절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가 판을 치는 지역의 교회들을 돌보기 위하여 사람들을 파송한다. 그 사람들을 잘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이 파송한 사람들을 거부한 반면 1절 이하에 나오는 가이오는 잘 접대하고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교우들을 사랑하였다. 가이오는 이집트 더베 사람으로 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 때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니아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하는 과정에 에베소 대소동에 등장한다(행20:4). 후에 요한 사도에 의해서 터키의 버가모 교회의 첫 목회자가 된다. 요한3서는 이 가이오에게 요한이 쓴 편지다. 따라서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2절에 나오는 가이오의 협력자 데메드리오를 소개하고, 사후 방문하여 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하는 것이다. 데메드리오는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위에서 살펴 본 사도행전 19장 24절에도 등장한다. 동일인이라면 아르테미스 여신을 믿던 그가 전도 받아 예수를 믿고 선교 협력자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곧 하나님 복음의 본 뜻을 거부하고 자신을 드러내어 으뜸 되고자 한 디오드레베를 치리할 계획을 하고 그 준비를 한 것이다.
정리하면 가이오는 당시 있었던 거짓 교사들에 의연하게 대처하여 복음을 지키고 복음대로 살았다. 6절에 의하면 진리인 복음의 행위, 사랑을 하며 산 것이다. 1절에서 표현한대로 그러한 가이오로 인하여 요한은 기쁘다고 표현한다.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나는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2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3 신도들 몇이 와서, 그대가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그대의 진실성을 증언해 주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4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요한3서 저자는 2절에서 영혼의 평안함, 일의 잘 됨, 건강함을 등치시킨다. 무탈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표현한 말씀이다. 평안하게 사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프고 일이 잘 안되고 마음이 불안한 것과 반대의 삶이다. 평온한 상태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평안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3,4절 표현대로 하면 진리 안에 사는 모습이다. 거짓이 난무하다면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짓은 해체가 필요하다. 거짓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
4. 언제 화가 나는가?
상대가 거짓이나 진실을 배반할 때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 판단하여 다른 말을 할 때 상대는 나를 억압하는 것이고 나는 불만과 불평이 쌓여 병이 나는 것이다. 올바른 관계가 맺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이 아니며 진리를 펼치신다. 정상적이고 평안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 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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