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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설교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필명 이일기 2019. 10. 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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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설교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

고린도후서 416-18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1. 불편부당하고 자기 이해에 급급한 세상 그러나 밝게 보자.

 후진으로 주차하다 후진 화면에 보이지 않는 조수석 뒤 휀다가 상대 1톤 차 모서리에 찌그러지고, 평상시 주차하다 앞 범버 좌, 우를 여러 차례 긁혀, 수리를 위해 온라인 앱을 통해 비보험 수리 견적을 내니, 3곳에서 각각 200,000, 380,000, 410,000원이 나왔다. 200,000원 쪽은 휀다만 보고 견적한 것이었다. 더구나 직접 가서 상담하니 보험비용으로 그렇다고 하고 전체 550,000원을 요구했다. 온라인 앱에서 견적 낸 것은 무시한단다. 불쾌했다. 세 곳 공히 휀다 180,000~210,000, 범버 200,000원 합계 380,000~410,000원이다. 그렇다면 400,000원이 적정 금액이다.

 다른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소규모 업체에 들러 견적을 요구하니 350,000~400,000원이고 밀려 있으니 다음 주에 오라고 했다. 다시 가다가 중간에 옛날 다녔던 공업사로 가 견적을 받으니 600,000원을 요구하여 다른 곳에서 400,000원 정도 하는 대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그 곳으로 가라고 했다. 여기까지 왔고 다니던 곳이니 400,000원에 해달라고 간청하여 결국 하기로 하고 대차해준 차를 타고 집에 왔는데, 2시간 정도 지난 후 전화가 왔다. 머뭇거리며 지금 잘 수리 중이라고 했다. 끊고 나니 1분도 안되어 다시 전화가 와 범퍼가 문제가 있으니 교환해야 한다고 하고 150,000원을 더 내야한단다. 결과적으로 550,000원인 것이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500,000원 드리겠다고 하니 다른 데로 가라는 것이었다. 타협이 안 되었다. 수리 중단시켰으니 가져가라며 전화를 끊었다. 불이 나게 가 찾아오려는데 앞 범버를 분해해 놔 원상 복귀하는 중 기다리다가 가져오며 결국 380,000원하는 곳에 전화했더니 내일 오라하여 다음 날로 예약했고 문제없이 수리했다.

 불공정한 부분에 대하여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싼 게 비지 떡이지만 좀 더 싸게 수리하고 자 하였고 다른 곳에서 하는 정도의 금액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데 처음부터 200,000원을 더 받으려고 한 장사 속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로 인하여, 그 까짓 돈에, 아니 그 수리업체의 불편부당에 화가 난 나인 것을, 살면서 비슷한 것들을 겪으면서도 다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세상은 왜이런가? 그리고 나는 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가? 불편부당함에 대한 편리하고 당연한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충 두리뭉실하게 사는 게 잘 사는 세상에서 완고함을 부리며 사는 것은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한다. 세상이나 나나 인간 참 문제가 많다. 세상은 문제가 있는 곳이다.

 

 사심이 없고 자기 이해에 밝지 않는 사람과 그 반대인 사람은 구별된다. 물론 100% 사심이 없는 사람과 이해에 밝은 사람은 없다. 경향과 스타일, 그리고 환경과 유전에 따라 구분될 수 있을 뿐이다. 사심 없는 사람은 이해에 밝은 사람이 불편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불유쾌하며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누가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해에 밝은 사람은 현실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도 한다. 사심 없는 사람은 바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까탈스러운 면에서 접근하기 어렵고 대화하기 쉽지 않다. 빈틈이 없어 숨이 막힌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세상이 나가야할 방향의 지표자는 될 수 있지만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추천받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의 추앙은 받지 못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세상은 이렇다.

 

 인간 현실은 혼탁하다. 현실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있다. 인간의 욕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숨긴 욕망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경계를 넘어 서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려니 하면 된다. 어떤 뜻이 있겠지 할 뿐이다. 세상을 밝게 보자. 가을 단풍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은 보기 나름이다.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편백나무로 침대를 만들고 나무의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하고 모서리를 곡면화하기 위해 샌딩기에 사포(페파)를 장착하고 작업을 하니 먼지들이 날린다. 마스크를 했는데도 코와 목 안이 껄끄럽고 칼칼하다. 미세먼지라 할 수 있는 공장의 매연 보다 크지만 보이지 않은 목재 먼지를 흡입한 것일까?

 미세먼지를 주의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각종 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초 또는 극초미세먼지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미세먼지는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 손톱의 때라는 것도 먼지가 모아진 것이다. 옷이나 몸에 묻은 때도 미세먼지 자국이다.

 먼지는 물이나 공기에 씻기거나 날아간다. 때문에 그것들을 제거하려면 물과 공기를 사용한다. 점성이 있는 것과 결합된 것은 점성을 제거하기 위한 세제를 사용한다.

 먼지의 성분을 분해하면 다양한 원소들이 나오고 그 원소들이 원자다. 원자 atom은 나눠지지 않는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지만 현대 과학은 나눈다. 원자핵와 전자로, 또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눌 수 있다. 원자의 크기는 지구의 억분의 일 정도의 탁구공 크기를 억분의 일로 나눈 정도다. 원자를 물질이라고 하면 반물질은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전자가 결합된 것이다. 물질과 반물질이 접촉하면 빛이 나온다. 더 나아가 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쪼개면 쿼크(현재까지 6종류가 발견된 입자, 퀘크를 현재는 나눌 수 없지만 미래에 나눌 수 있을지?))와 렙톤이 된다. 세상은 현재까지 퀘크와 렙톤을 관찰하지만 그것들을 감각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보이는 부분은 먼지 크기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먼지와 같다. 수소와 산소는 물을 위하지만 물은 식물 동물을 위하나 결국은 인간을 위해 있다. 학자들은 만물이 다 각각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고 하지만 만물은 다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결국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2. 보이지 않는 신앙의 세계

 긍정 마인드

 고린도후서 416-18,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현실의 고난을 넘어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세상을 살고 미래에 전개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고 산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산다. 그 소망이 고난의 현실을 이겨내게 한다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조들이 살던 시대에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문제가 많고 고난이 있는 세상 삶을 오히려 훌륭히 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믿음 안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제대로 보고 인식하여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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