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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설교 자연 인간 하나님의 역사 시편 104편 33절 본문
20191201설교
자연 인간 하나님의 역사
시편 104편 33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1. 이 교회 저 교회 다녀도 되나? 교회를 넘어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고 절에도 가고 무당한테도 가고 또는 안 가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 성당 절 무당에 다녀도 되고 안 다녀도 되는 것인가?
법륜 스님의 결론은 맘대로 해도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었는데, 그 하나님은 그가 만든 것이나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니 목사도 신부도 스님도 무당도 다 하나님이 만든 것이니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사랑의 하나님이니 다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시니 다 문제없다는 것이다. 목사 신부 스님 무당 입장에서 안 된다고 할 뿐 하나님 부처님 하느님 귀신 모두가 다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이다. 고객입장에서 이 가게 저 가게 이 마트 저 마트 갈 수 있는 것처럼 신자 입장에서는 교회 다녀도 성당 다녀도 절 다녀도 무당한테 가도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마음이 문제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했다. 신은 옹졸하지 않다고 했다. 기독교 비판이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하니 인기가 있다. 더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에 부응하여 그 마음의 진실을 말하니 감동하는 것이다.
법륜의 법문은 사실 불교의 관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는 다 같다는 논리를 편다. 불교가 아량이 있어서 모든 종교를 포괄하는 것처럼 말하며 모든 종교를 이해하고 있고 다 받아들이는 종교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불교가 가장 우월한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니 일면 타당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법륜 스님은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귀결 시켰지만 그것은 불교적 관점이다. 종교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 다르다. 목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며 그 가는 길이 다 다르다. 마음을 다 잡자는 종교도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도 있으며, 예수를 통하는 것과 같이 교회를 통하여 신부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종교도 있다. 귀신을 통하여 복을 받는다는 종교도 있는 것이다.
2. 시편 104편 저자는 자연과 인간,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만들어지고 움직이고 존재한다. 시편 저자는 그것을 본 것이고 깨달은 것이며 그렇게 살겠다고 한 것이다.
1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십니다. 권위와 위엄을 갖추셨습니다.
2 주님은 빛을 옷처럼 걸치시는 분, 하늘을 천막처럼 펼치신 분,
3 물 위에 누각의 들보를 놓으신 분, 구름으로 병거를 삼으시며,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분,
4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신 분, 번갯불을 시종으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5 주님께서는 땅의 기초를 든든히 놓으셔서, 땅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6 옷으로 몸을 감싸듯, 깊은 물로 땅을 덮으시더니, 물이 높이 솟아서 산들을 덮었습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한 번 꾸짖으시니 물이 도망 치고, 주님의 천둥소리에 물이 서둘러서 물러갑니다.
8 물은 산을 넘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서, 주님께서 정하여 주신 그 자리로 흘러갑니다.
9 주님은 경계를 정하여 놓고 물이 거기를 넘지 못하게 하시며, 물이 되돌아와서 땅을 덮지 못하게 하십니다.
10 주님은, 골짜기마다 샘물이 솟아나게 하시어, 산과 산 사이로 흐르게 하시니,
11 들짐승이 모두 마시고, 목마른 들나귀들이 갈증을 풉니다.
12 하늘의 새들도 샘 곁에 깃들며, 우거진 나뭇잎 사이에서 지저귑니다.
13 누각 높은 곳에서 산에 물을 대주시니, 이 땅은 주님께서 내신 열매로 만족합니다.
14 주님은, 들짐승들이 뜯을 풀이 자라게 하시고, 사람들이 밭갈이로 채소를 얻게 하시고, 땅에서 먹거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15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를 주시고, 얼굴에 윤기가 나게 하는 기름을 주시고, 사람의 힘을 북돋아 주는 먹거리도 주셨습니다.
16 주님께서 심으신 나무들과 레바논의 백향목들이 물을 양껏 마시니,
17 새들이 거기에 깃들고, 황새도 그 꼭대기에 집을 짓습니다.
18 높은 산은 산양이 사는 곳이며, 바위 틈은 오소리의 피난처입니다.
19 때를 가늠하도록 달을 지으시고, 해에게는 그 지는 때를 알려 주셨습니다.
20 주님께서 어둠을 드리우시니, 밤이 됩니다. 숲 속의 모든 짐승은 이 때부터 움직입니다.
21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찾으려고 으르렁거리며, 하나님께 먹이를 달라고 울부짖다가,
22 해가 뜨면 물러가서 굴에 눕고,
23 사람들은 일을 하러 나와서, 해가 저물도록 일합니다.
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
26 물 위로는 배들도 오가며, 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8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 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30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32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33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35 죄인들아, 이 땅에서 사라져라. 악인들아, 너희도 영원히 사라져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3.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거나 보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그저 살고 의미 없이 산다. 무감각한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오직 자신만 존재하는 것이다. 동물에 불과한 삶을 산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자신이 누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고 객관화시켜 성찰하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에게 경배하며 그를 찬양하는 존재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8-23절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비판하고 있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자연은 인간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간을 위해 필요한 존재다. 자연 스스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인간과 상호 연관되어 있다. 한편 자연으로 인하여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으로 인하여 자식 키우듯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나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개고기는 고단백이었다. 그런데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야만인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럼에도 최근 버려지는 개, 고양이가 들개, 들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젠 법에 의하여 버리는 개 주인을 처벌할 지경이 되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살지만 자연이 인간의 소유가 되면 그것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소유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법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개나 고양이지만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끼쳐 그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처벌받기도 하는 것이다.
피해를 주는 잘못된 행위를 우리는 죄라고 한다. 죄는 인간 한계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해왔다. 한계가 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연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관계가 되면 인간들 사이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가지고 더구나 다른 사람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한다. 그러면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여 살도록 하시는 인애하신 하나님이다.
로마서 1장 16,17절에서 바울은 복음은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사람들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복음이라고 인식하여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았다. 바울로 인한 후대의 기독교 역사는 오늘에 이른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다.
4. 시편 기자는 자연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사람에게 유용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평생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사람임에도 인간이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자신의 소유라고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그 인간과 자연을 하나님은 회복시키시고 다시 새롭게 하시기에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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