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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설교 부담되는 말씀? 예레미야서 10장 23절

필명 이일기 2019. 12. 1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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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설교

부담되는 말씀?

예레미야서 1023

 

1.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스마트폰에서 말로 전화 거는 시대다. 올해 남북 평화가 오나 했더니 지금은 북핵문제를 두고 북한과 미국이 갈등하는 양상이다. 정찰기가 뜨고 상호간 긴장된 말들이 오간다. 세상이 수시로 급변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목사도 혼란이 일어나는 것인가?

 

2.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백석측, 광운전자공고, (무인가)대한신학교 학사?, 안양대학교 신대원 석사?를 졸업한)전광훈 목사의 망언은 지난주 쇼킹 뉴스였다. 전광훈은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했다. 자신은 하나님의 보좌를 잡고 있어서 하나님과 친해 자신이 하나님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이고, 그래서 앞으로 10년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게 되어있다고 했다. 사이비 이단 교주는 사기꾼이지만 악한 존재의 지배를 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실제 그가 하나님과 친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고 있을까? 그럴 것이다. 믿어주자. 하나님과 친할까? 그럴 것이다. 인정하자. 그러나 그것은 자기 교만과 자기 자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착각이고 오만의 극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나? 자기 생각과 자기 욕망에서 온 것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실제 스스로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고 있다고 믿고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같은 정치하는 사람을 구원하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그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가 높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사실 정통 신학의 길에서 인정받지 못한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과시를 하고자 한다. 자신의 교회 사랑제일교회에서 유명 정치인을 보며 자신도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임을 과시하고자 한 결과였을 것이다. 신학적 점검과 확인도 하지 못한 채 남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 그 수법을 알고 그 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나님까지 아니 이미 그는 주술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과시의 도구로 삼아왔을 것이다.

 

 대한민국, 미국과 북한 그리고 현 정세에서 하나님은 진정 어떤 역사를 하고 있을까? 진보쪽일까 보수쪽일까? 민주당 쪽일까? 자유한국당 쪽일까? 여러분 쪽일까 아니면 여러분이 싫어하는 사람 편에 계실까? 양쪽을 다 들어 당신의 섭리를 조리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주관하고 계신다. 전광훈이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서 한 악당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3. 예레미야서 1023,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유대의 바빌로니아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는 당시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결국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됨을 예레미야가 깨달은 말씀이다. 두 가지를 깨달은 것이다.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과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 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고 생명을 조종하신다는 말씀이다.

 

 반 바빌로니아 친 이집트라는 입장의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것을 예레미야는 예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하여 바빌로니아를 그 도구로 삼았다고 믿었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도록 하셨음을 믿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집트에서 동족에게 피살당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신이 믿은 하나님께 충실한 삶을 살았다.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고민하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랐던 것이다.

 

 당시 거짓된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각과 욕망에 따라 나온 결과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며 살았다. 스스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예레미야를 피살한 것이라고 믿었다.

 피살하거나 피살당한 경우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모교수가 자녀들과 사위 등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평소 주차할 장소를 생각해보니 항상 만차여서 한 자리만 비워달라고 기도했단다. 그곳에 가보니 자리가 한 자리도 없어서 돌아 나오려다 멀리 보니 딱 한 자리가 비워 있더라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이어서 자녀들과 사위 등에 체면을 구기지 않았다고 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다.

이교수는 그렇게 믿었다. 혹자는 우연히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믿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 결과나 심판은 각자의 책임이다.

 

 어느 쪽 믿음이 옳은가?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을, 생명을 조종하신다. 그것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서 계실 것이다. 사람들의 환상과 착각 속에 사람들의 욕망과 과시 속에 하나님은 서 계시지 않는다. 도구 삼을 뿐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변수들과 조건들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은 심판을 면치 못한다.

 

4. 예레미야 23

16"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스스로 예언자라고 하는 자들에게서 예언을 듣지 말아라. 그들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고 있다. 그들은 나 주의 입에서 나온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 속에서 나온 환상을 말할 뿐이다

 

32 허황된 꿈들을 예언이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내가 대적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그들은 거짓말과 허풍으로 내 백성을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하는 자들이다. 나는 절대로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예언을 하라고 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칠 수 없는 자들이다. 나 주의 말이다.“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

33 "이 백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이 너에게 와서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느냐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여라.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로 나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내가 이제 너희를 버리겠다 말하였다고 하여라.

34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예언자나 제사장이나 백성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에 벌을 내리겠다고 하여라.

35 친구나 친척끼리 서로 말할 때에는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느냐?'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고 물어야 한다고 일러주어라.

36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너희가 다시는 써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그런 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그에게 정말 부담이 될 것이라고 하여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만군의 주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여라.

37 이제 예언자에게 물을 때에는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느냐?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고 물어라.

 

 주의 말씀이 부담되는 것이라면 주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다. 전광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되게 했다. 자신만의 욕망과 과시를 위한 행동과 말을 하여 믿는 백성들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담이 아니다. 은혜고 감사고 힘이 된다. 무지하고 착각하며 내 생각에 사로잡힌 나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복된 말씀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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