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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설교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복음 6장 9-13절 본문
20210117설교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복음 6장 9-13절
오늘까지 비대면 예배드리고 다음 주일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교회서 예배드린다.
1. 정인이 양어머니(양모)의 악
그 사건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험악했다.
그럼에도 왜 그 양모는 입양아를 학대했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아파트 입주권 때문이라고 하고,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하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친모가 형편에 따라, 양육 책임을 포기한, 불쌍한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것은 선한 일이다. 따라서 양모는 착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착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양어머니(양모)가 그 어린아이를 학대하여 죽게 했을까? 자기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양모는 입양을 어쩔 수 없이, 또는 억지로도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해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양모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착한 양모도 있고 악한 양모도 있다.
2.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과 세상에서 난 사람, 악마의 세력 아래 놓인 세상
요한1서 4장 1-6절, 5장 18-19절 말씀을 보자.
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사람)입니다.
3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사람)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4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성령)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세상에서 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믿는 사람)과 미혹의 영(믿지 않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요한1서 5장 18-19절
18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그리스도 예수)이 그 사람(믿는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19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정인이 양모는 믿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요한 1서에 의하면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다.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학대하여 죽게 했다.
혹시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악한 상황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믿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믿음 없이, 믿음을 도구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살고 있었던 사람은 아닐까? 자신의 편의, 아파트 입주 점수 높이기 위해 입양했을까?
학대할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왜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까?
부부관계? 등등 가정 문제? 아니면 심성이나 성질 또는 성격의 문제였을까?
3.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복음 6장 9-13절 주기도문을 보자.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10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빚)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빚)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악한 자)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13절에 “악에서(악한 자에게서) 구하소서”라고 말하고 있다.
믿는 양모였지만, 악이나, 악한 자의 상태에서 어떤 상황이 아이를 학대할 정도의 어떤 원인에 의하여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4. 하나님이 반기시는 사람과 일
창세기 4장 1-8절, 가인과 아벨 사건을 보자.
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5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6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8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반겼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가인은 화가 났다.
6절에서 하나님은 가인이 화를 내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7절에서 하나님은 가인이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여, 죄가 가인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가인을 지배하려고 한다 하고, 가인은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그 후 아벨을 들로 꾀어 죽였다.
가인이 들에서 아벨을 죽인 이유는 가인이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고,
죄 가운데 있게 된 것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한 것 때문이며,
올바르지 못한 일은 한 것은 하나님이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반기지 않게 한 것이다.
결국,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반기지 않아서다.
가인이 올바르지 못한 일은 한 것은 가인이 하나님께 땅에서 거둔 곡식으로 제물로 드린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은 올바르지 않은 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곡식 제물을 반기지 않는가? 왜 잘못한 일, 올바르지 못한 일로 여기셨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기에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해석이 있다. 중동 문화에서 오는 문제 등등.
아벨이 양 첫 새끼 기름을 드렸다는 것은 첫째의, 그것도 가장 중요한 기름을 드릴 정도로 정성과 마음을 표현했지만,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드릴 정도로 그냥 무성의하고, 형식적으로, 별 마음이 없이, 진심이 없이 드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벨과 그의 제물 드림은 잘한 것이었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 드림은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5. 히브리서는 아벨의 제물 드림을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큰)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런 제물을 드림으로써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인정)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에 대하여 증언(인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이(이것을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신뢰의 문제였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의 차이였다. 하나님을 인식했느냐 그렇게 안 했느냐의 차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인식, 의식한 것인지, 그렇지 않다고 했는지라는 믿음의 차이였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의식했느냐, 기억했느냐로 귀결된다.
정인이의 양모는 화가 나서 정인이를 학대하여 죽였을 것이다.
왜 화가 났을까? 하나님을 인식했을까? 진정 하나님을 믿고 있었을까?
6. 악의 보편성과 상황과 피해
예전에 소개했던 한나 아렌트(Johanna Cohn Arendt)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참혹하게 죽인 히틀러, 그 휘하 장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악의 보편성(The banality of Evil)을 보았다고 했다. 모든 인간에게 악한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악이 평범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악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란 말인가?
최명희 “혼불”은 양반과 상놈이 태어난 곳, 남원 사매면 양반 지역 매안 원뜸 마을과 천민 지역 거멍굴, 그리고 평민 지역 고리배미 등과 전주 만주 등을 배경으로 써졌다. 날 때부터 사람이 구별되고 차별된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들 지역 사람들이 날 때부터 차별받아야 했을까? 그렇지 않다. 오늘 자유민주의 우리 사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문화나 체제의 문제 때문에 차별받는다. 반상체제 상황에서 차별을 만든 것이다.
사람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
매 순간 사람들 사이 관계가 형성되는 가운데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악한 행동을 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7. 그런데도 인간 세상에는 쓰레기도 있지만 청결한 것이 있다.
우리는 청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청결한 환경을 내가 다 만들 수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주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세상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문, “악에서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빌 수밖에 없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험악한 세상에서, 그래도 문제없이 살려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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