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220605 #삶을 의미 있게 하는 하나님 #로마서 4장 13-18절 본문
20220605
삶을 의미 있게 하는 하나님
로마서 4장 13-18절
"그대가 조국"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3Y7RBsBJ-Ow
https://www.youtube.com/watch?v=6dDnlGBsMB4
https://www.youtube.com/watch?v=5_oCzH8lgtA
조국이 법무부 장관 되는 것은 안된다며, 검찰로 하여금 70여 곳 압수 수색하게 하고, 자신의 더 큰 흠은 덮어버리며, 조그만 흠을 과장하여 구속 기소하고 현재 재판 중이다. 이 나라의 최고 권력까지 움켜쥐려고 수하 졸개들을 부렸던 것이다. 유착된 언론은 과장 거짓 보도하고 혹세무민 하며 국민을 선동했다. 세상을 조작했다. 조국과 그 가족, 관련된 사람들에게 사는 것이 괴로움과 고통이 되게 했다. 조국입장에서 현 정권을 보건대 부조리하다. 부당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 의미가 없고 부조리를 목격하게 한 것이다. 제3자나 관객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거짓이 진실처럼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적인 내용을 진실을 추구하며 다큐 형태로 영화화한 것이다. 개봉 당시 예매 순위 1위였다.
까뮈( Albert Camus)는 그의 책,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 "페스트" 등에서 부조리, 무의미, 이유 없음을 말했다.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었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이 무덤덤하게 장례를 치른다. 이유가 없다. 이웃 친구 애인 오빠를 햇볕이 비치기에 아무런 감정 없이 죽인다. 이유가 없다. 삶의 의미를 못 느낀다. 제3자나 독자입장에서 뫼르소의 그러한 삶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이었다.
산 위로 바위를 반복적으로 굴려 올려야 하는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죄가 아닌 페스트가 만연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발버둥 친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했다. 의무와 이유 같은 속박을 벗어버려야 진정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 이상적인 모습이라 했다.
하지만 부조리하게 느낄지라도 삶은 의미가 있다.
부조리한 삶은 의미 없는 삶이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만들어지면 있는 그것은 의미가 있다. 어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이유 없이 무의미하게 사는 것은 모순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어떻게 지내요"
안락사 약을 구해 어딘가 적당한 곳에서 평온하게 끝을 맞고 싶다는, 삶을 의미 없게 만드는 말기 암 진단받은 친구 말을 듣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은 아름다움 자체다 하고, 의미가 있다고 그렸다.
고인돌에 새겨진 사람들의 소망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무덤인 고인돌에 북두칠성 등 별을 새겼다. 황방산에도 고인돌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구멍 자국들이 있는데 하늘 별자리들이다. 하늘 별에서 왔고 별 하늘로 돌아간다는 인식이다. 죽어서 우주와 하나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무의미한 죽음이 끝이 아니라 계속될 의미 있는 새로운 세상을 그리며 꿈을 꾼 것이다.
로마서 4장, 율법 없는 이방인을 선택 받아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한 은혜로운 하나님
1 그러면 육신상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창세기 15장 5,6절,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6 그래서 행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사람이 받을 복을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7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복이 있다.
8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32편 1,2절,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유대인의 뿌리는 아브라함이다. 따져보자는 것이다. 과연 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된 것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능력, 곧 율법적인 행위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늘의 별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지게 하겠다는 약속으로 인한 것,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이 잘나서 선택되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선택한 것이었다. 행한 것이 없는, 아들 낳을 능력이 없는(무) 아브라함을 낳을 수 있게(유) 한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없는 무에서 있는 유로 창조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따랐다. 그런 아브라함이다. 그러니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같이 율법 없는 이방인도 하나님이 선택하였다는 말이다. 그것은 복이었다. 행한 것 없이, 노력 없이, 은혜로, 공짜로 인정받는 사람은 복을 받은 것이다.
9 그러면 이러한 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10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러한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기 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에 된 일이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된 일입니다.
11 아브라함이 할례라는 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2 또 그는 할례를 받은 사람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할례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간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을 받는 것은 할례와 무관하다. 할례를 받고 안 받고 문제가 아니다. 아무 공로가 없이 받은 복이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1-5
1 아브람의 나이 아흔아홉이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2 나와 너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4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5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6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너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왕들도 나올 것이다.
7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8 네가 지금 나그네로 사는 이 가나안 땅을, 너와 네 뒤에 오는 자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모두 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없는 것(무)을 불러내어 있게(유) 하시는 하나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하나님
의미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상황을 만드신 하나님이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흥분하고 탄복하며 황홀해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찾는다.
시편 63장 1절,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로마서 11장 33-36절
33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주님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36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살아있는 사람이 의미 없이 산다면 삶은 부조리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의미가 있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고, 살아야 할 역할을 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복이다.
부조리한 삶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미를 찾아 역할을 하며 복 있게 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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