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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오우아(吾友我)와 하나님 말씀 #요한1서 2장 5절 본문
20220619
오우아(吾友我)와 하나님 말씀
요한1서 2장 5절
나 자신 문제
어떤 사람이 상대방이 맘에 들지 않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곧 상영될, 칸 영화제 감독상 받은 영화 제목 같은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존심과 욕심이 강해 호감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인간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그나 상대방이나 그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사람은 자기 자신이 문제다.
오우아(吾友我)와 오상아(吾喪我)
이들에게 박수밀 교수의 에세이 "吾友我 : 나는 나를 벗 삼는다"라는 책을 소개했다. 책 제목이 특이하다. 저자는 책 제목을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년(영조 17)~1793년(정조 17))가 즐겨 쓰던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 제목을 영어로 I friend me라고 번역했다.
이 책은 "자존감을 찾게 하는 책,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을 안내하는 책이다. 돈, 관계, 욕심에 이리저리 치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놓치기 일쑤인 우리가 알아야 할 나 답게 사는 법,주위에 사람이 없더라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도, 나는 내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면 된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이리저리 휘둘리는 관계와 타인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나를 벗 삼아 지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내게 속했고, 나는 나를 벗 삼는다. 이 마음으로 당당하게 살면 그뿐이다." 고 했다.
저자는 호남 실학의 시조 위백규(魏伯珪)가 자주 사용했다는, "장자" 편에 나오는, 내가 나를 죽인다는 오상아(吾喪我)를 오우아와 비교하며, "남을 보느니 나 자신을 보고, 남에게 듣느니 나 자신에게 듣겠다. 오직 나 자신만이 주인이다. 내가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때 나 다운 나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새롭게 태어난 나와 벗이 될 수 있다"라고 한다.
고전들 통해 나를 찾도록 하는 에세이 수필집이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자기 자신을 찾고, 그래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행복하고 즐겁다. 외롭지 않다. 나를 찾고 내 자존감을 가지되 상대를 생각하며 고려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지 이해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만남은 서로가 즐겁고 행복하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난 사람은 헤어지게 되어있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뜻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윤회에서 비롯된 말이다. 죽음을 포함한 사물과의 관계까지도 적용된다. 그냥 사람 관계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이해하라? 그야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 사실일 뿐이다.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적 인간관계는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윤회가 사실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만 믿을 뿐이다. 불교 경전은 8만 대장경을 포함해 엄청나게 많다. 좋은 말, 귀한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지만, 이 대사 승은 이 말, 저 대사 승은 저 말을 하고 해서 너무 다양하고 그 수가 많아 다 이해하기 힘들다. 수행한다고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세상이 이런 것이지 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과 하나님 관계에 관한 성경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관점에서 각자를 이해한 후 관계를 유지하며 만남을 가지듯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 이해는 하나님 이해 속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이해하면 나를 이해하게 된다.
일반적인 신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영적인 존재다. 온전하고 흠이 없으며 아름다운 진선미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섭리하는 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구체적으로 우주 만물과 인간의 역사를 주관한다.
반면 인간은 유한하고, 흠도 있으며 추한 점도 있는 육적인 존재다. 불완전하다. 따라서 온전한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를 소망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그 길은 선조들이 체득한, 신에 관한 노하우 경험치들의 누적 고전 성경에서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서 그들의 삶의 경험을 기록해 놓은 고전이다. 인문학 책이다. 위에서 말한 오우아에서 살핀 선조들 일반 고전과는 구별된다. 성경은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담고 있다. 성경은 인생의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질문 형이상학을 선조들이 살았던 삶 속에서 그리고 있다. 신, 불신 간에 다 읽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경전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사물화하고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성경이다. 성경은 능력이 있고 날카롭게 인간을 세분화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것을 선조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생을 사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개념을 넘어 하나님과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 인간을 알고 있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문자로 읽어서는 안 된다. 배경과 의도와 취지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하나님이 한 말씀인지를 살펴보고 제대로 깨달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학교가 있고, 신학에 관한 전문적인 과정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신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 한 그들에게 안내받으면 된다. 그들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한 그들이 하는 말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신학교에서는 가르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설교한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 상반 절에서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는 요한은 요한1서 2장 5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속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참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압니다."라고 설교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면 하나님을 좋아하여 하나님 사랑 안에 살게 된다. 하나님은 그를 좋아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그도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고 나눈다.
성경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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