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260524 #호흡과 은사 #고린도전서 12:12-13 본문
20260524
호흡과 은사(고린도전서 12:12-13)

[서론]
최근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의가 심화되고 있다. 자기 나라가 잘살고자 하는 목적이지만 그것이 결국 다른 나라에는 위협이 되고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문제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의 비극, 곧 본래 하나의 언어를 쓰던 인류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쌓아 자신들의 이름을 떨치려다, 하나님의 흩으심로 인해 언어가 뒤섞이고 온 땅으로 흩어지게 된 사건의 비극, 다시 말하면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헤어지지 않기 위해" 세운 이정표가, 역설적으로 "서로 말도 통하지 않은 채 완전히 갈라져 흩어지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이 바로 바벨탑이 가진 비극이자 아이러니다. 단순히 교만해서 탑을 쌓았다기 보다, 흩어지기 싫어했던 인간의 애착과 노력이 오히려 영원한 단절을 낳은 비극이었다. 이 비극이 첨단 과학 기술 시대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숨 쉬지 않으면 죽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생명의 근본이 되는 '숨(Breath)', 호흡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국 우선주의는 기본이, 근본이 잘못된 것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공동체의 다양성을 조화시키고, 파괴된 세상을 하나의 영적 몸으로 묶어 가는지? 그 거대한 구속사, 구원사적 숨결을 살펴본다.
[본론]
1. 행 2:1-21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 남겨진 제자들은 여전히 로마 제국의 감시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협 속에 있었다.
오순절(A.D. 30년)을 맞아 전 세계에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을 때,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두려움 속에서 한편 기대감으로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무렵(A.D. 80-90년경), 교회는 예루살렘이라는 유대적 울타리를 넘어 소아시아와 로마 등 이방 지역으로 본격적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할례와 율법 준수 문제로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 간의 갈등이 첨예해지던 시기였다. 누가는 교회의 출발점 자체가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깨뜨린 성령의 보편적 사역이었음을 상기시켜야 했다.
그러니까 누가는 성령 강림을 통해 보편적인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바람은 프뉴마 πνεῦμα, 단순한 기후 현상이 아닌 하나님의 신적 생기와 영을 뜻한다.)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다른 언어들 글로싸이스 γλώσσαις는 알아들을 수 없는 황홀경의 소리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실제 방언(지방어)을 의미한다. 오순절을 맞아 전 세계에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다.)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이는 인간의 교만으로 흩어졌던 바벨탑의 언어 분열이 성령 안에서 복음으로 소통되는 치유의 사건이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12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13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념이나 문화적 장벽에 갇혀 타인을 배척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계층을 향해 복음의 언어로 소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중심적 자국 중심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타국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2. 시 104:24-35
시인이 대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목도하며 하나님의 창조적 지혜를 찬양하던 시기, 곧 왕정 시대 혹은 그 이전 당시, 고대 근동 아시아는 바알이나 마르두크 같은 우상들이 비와 폭풍을 주관하며 생명을 준다고 믿는 다신교적 환경이었다.
본문은 모든 생명력이 황제의 권력이 아닌 오직 여호와의 호흡에 달려 있음을 선포한다.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고 영을 부어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말함이다.
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
26 물 위로는 배들도 오가며, 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8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 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 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루아흐 רוּחַ)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30 주님께서 주님의 영(루아흐 רוּחַ)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32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33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35 죄인들아, 이 땅에서 사라져라. 악인들아, 너희도 영원히 사라져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할렐루야.(할랄 חָלַל, 찬양하다와 야 יָהּ, 여호와의 합성어로, 호흡이 있는 모든 존재의 종착지가 오직 창조주를 향한 찬양임을 선언하는 문장이다.)
인간의 탐욕 시대에 믿는 사람들은 만물의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숨 쉬는 것이 하나님의 공급임을 고백하며, 피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3. 고전 12:3-13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할 당시(A.D. 50년대 중반), 고린도는 상업과 철학, 우상 숭배가 번창한 대도시였다. 그런 세속적 가치관이 교회로 유입되면서 교우들은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의 우월함을 자랑했고, 계층과 출신에 따라 교회가 분열되고 있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A.D. 55년경 에베소에서 집필)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도덕적 타락, 예배의 혼란에 대한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들의 영적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다. 영적 은사가 개인의 영웅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기 위한 수단임을 조직적으로 논증해야 했다. 때문에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성령의 다양성과 그리스도 몸된 교회의 유기적 일치였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4 은사(카리스마톤 χαρισμάτων은 인간의 자격이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카리스)로 주어진 선물을 뜻한다.) 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9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10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11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에포티스데멘 ἐποτίσθημεν은 성령이 외적인 장식품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흡수되어 믿는 사람의 전 인격을 지배하고 올바른 영적 정신을 갖게 행동함을 비유한 것이다.) 되었습니다.
공동체 내의 서로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신 다양성이다. 교회는 서로를 존중하며 그리스도의 한 몸을 완성해 가는 연합의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
4. 요 20:19-2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A.D. 30년 부활 당일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도 체포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문들을 모두 닫아걸고 숨어 있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미래에 대한 절망이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무렵 (A.D. 90-100년경), 교회는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잔혹한 박해와 유대교 회당으로부터의 출교라는 이중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 요한은 두려움으로 문을 닫아걸었던 과거 제자들의 모습이 현재 박해 앞에 위축된 교회의 모습과 같음을 인지하고, 부활 장면에 나타난 주님의 평강과 파송의 메시지를 부각했다. 그러니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활 주님의 평강 선포와 성령을 통한 사죄의 전권 위임이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마 28:16-20; 막 16:14-18; 눅 24:36-49)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에네퓌세센 ἐνεφύσηсен는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실 때 사용된 단어와 같다. 즉, 예수님의 숨결은 제자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는 신적 행위다.)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교회의 문을 닫아걸게 만드는 세상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 믿는 사람들이 취할 것은 주님의 평강이다. 믿는 사람들은 용서받은 자로서 죄에 매여 있는 자들을 해방하는 '용서와 화해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결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적 호흡에 따라 부활의 주님이 주는 평안을 품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 안에서 한 몸이다.
[축원]
오늘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구어 갈 우리들의 삶 위에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축원한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531 #창조와 상생 #시편 8:3-5 (0) | 2026.05.31 |
|---|---|
| 20260517 #고난을 뚫는 교회 #베드로전서 4:12-13 (0) | 2026.05.17 |
| 20260510 #진리의 영인 하나님 #요한복음 14:16-17 (3) | 2026.05.10 |
| 20260503 #산 돌과 믿음 #베드로전서 2:4-5 (0) | 2026.05.03 |
| 20260426 #목자와 양 #요한복음 10:9-10 (0) | 2026.04.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