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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7 #형식보다 진실한 마음 #호세아6:6

필명 이일기 2026. 6. 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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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7

형식보다 진실한 마음(호세아6:6)

 

서론

지난 화요일 초등 동창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04년을 살면서 한편 보면 길지만 한편으로 보면 금방이다. 그 가운데 바람 잘날 없던 때도 많았을 것이다. 자식들 키우기 위해 무척 많은 애를 쓰고, 말년에는 남편도 먼저 가고, 자식들은 타지에 나가 살아 혼자 하나님 믿고 하나님 은혜 속에 지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기를 바란다. 자식에게 대접받고 싶어 한다.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잘못과 실수도 많았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수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바라기를 원한다. 곧 그를 의지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바라신다. 

본론

1. 호세아 5:15-6:6

기원전 8세기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번영했지만,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가 가득했다.
호세아는 죄악이 나라 멸망의 원인임을 지적하며 진정한 회개를 촉구했다.
하지만 백성은 고난 속에서도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라는 망해 훗날 포로가 된 백성들은 형식적인 제사만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진실한 자신과의 관계였다.
 
15   나는 이제 내 곳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지은 죄를 다 뉘우치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환난을 당할 때에는, 그들이 애타게 나를 찾아 나설 것이다.
1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
3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4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5   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 위에서 번개처럼 빛났다.
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헤세드 חֶסֶד 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언약에 기초한 신실한 사랑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야다 יָדַע는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여 아는 것이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삶 속에서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남녀가 깊이 사랑하여 육체적으로 동침하여 하나가 되는 부부관계다.)를 더 바란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2. 시편 50:7-15

시편 50편은 아삽의 시이다. 아삽은 다윗 시대 성전 찬양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당시 백성은 제사를 열심히 드렸다.
그러나 삶은 하나님 뜻과 멀어져 있었다. 훗날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진 뒤, 포로기 기록자들은 눈에 보이는 소와 양의 제사보다 마음의 중심이 더 중요함을 자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이 시편을 다시 정리했다.
 
7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말한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겠다.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
8   나는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너희를 탓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번제를 바쳤다.
9   너희 집에 있는 수소나 너희 가축우리에 있는 숫염소가 내게는 필요 없다.
10   숲 속의 뭇 짐승이 다 나의 것이요, 수많은 산짐승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11   산에 있는 저 모든 새도 내가 다 알고 있고, 들에서 움직이는 저 모든 생물도 다 내 품 안에 있다.
12   내가 배고프다고 한들, 너희에게 달라고 하겠느냐? 온 누리와 거기 가득한 것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제사(토다 תּוֹדָה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드리는 고백적 찬양이다.)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의 서원한 것을 가장 높으신 분에게 갚아라.
15   그리고 재난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구하여 줄 것이요,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기여한 바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 공로를 내세우면 순간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3. 로마서 4:13-25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해 이 편지를 쓸 때, 교회 안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잘 지켰다며 이방인들을 무시했다.
바울은 주후 57년경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쓰며,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을 선포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피스피스 πίστις는 내 힘을 완전히 빼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내 인생 전체를 온전히 던지는 신뢰다.)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디카이오오 δικαιόω는 죄인을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하는 의미이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23   "그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24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육신이 약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내 몸이 죽은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아브라함처럼 소망이 없는 중에도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는 믿음이 가장 귀하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4. 마태복음 9:9-26

예수님 당시 세리와 죄인들은 사회에서 손가락질당하는 불쌍한 이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외롭게 신앙을 지키던 마태 공동체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며, 예수님의 교회는 의인이 아니라 상처 입은 죄인들이 모이는 곳임을 확신했다.
 
마태를 부르시다(막 2:13-17; 눅 5:27-32)
9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도다.  세관에서 세금을 걷던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이자 동족의 고혈을 빠는 '죄인'으로 취급받던 직업이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본명이 '레위'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마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세리라는 직업적 특성(기록과 분류에 능함)을 살려 예수의 가르침과 족보, 기적 등을 체계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특히 예수가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왕이자 메시아'임을 유대인들에게 강조하고 있다)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엘레오스 ἔλεος는 율법의 자구로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긍휼이다.)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금식 논쟁(막 2:18-22; 눅 5:33-39)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그 옷을 당겨서, 더욱더 크게 찢어진다.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가죽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어느 지도자의 딸과 혈루증에 걸린 여자(막 5:21-43; 눅 8:40-56)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고,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20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 여자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 했던 것이다.
22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23   예수께서 그 지도자의 집에 이르러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물러가거라.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25   무리를 내보낸 다음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그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26   이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졌다.
 
믿음생활을 오래 할수록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쉽다.
자녀들이나 젊은 세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율법의 잣대로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자비로 품어야 한다.

결론

하나님은 인간의 형식과 공로주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쌓아온 내 노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육신이 약해질수록 내 공로를 내려놓고, 날마다 상한 심령과 감사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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