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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1 #두려움 너머의 믿음 #마태복음 10:28 본문
20260621
두려움 너머의 믿음(마태복음 10:28)

서론
70살 넘어 가장 서럽게 느껴지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가난도 병을 앓는 건강도 아니다. 3위. 점점 할 일이 없어지는 것, 2위. 함께 추억을 나눌 사람이 줄어드는 것, 1위.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는 글을 보았다.
https://v.daum.net/v/ZA0YyBB3JN
나이 든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보다 자신이 쓸모없고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것이 더 문제다.
성경의 인물들도 같은 문제를 경험했다.
오늘 본문들(렘 20:7-13, 시 69:7-18, 롬 6:1-11, 마 10:24-39)은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는가에 관한 문제에 답을 하고 있다.
본문
1. 예레미야의 고백과 사명(렘 20:7-13)
기원전 7세기 말은 기존의 절대 강자였던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저물고, 신흥 강대국 바빌론이 떠오르던 패권 교체기였다.
<<유다의 마지막 성군이었던 요시야 왕은 BC 609년 이집트(느고 2세)의 북진을 막으려다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한다. 이 사건으로 유다는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신세로 전락한다.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 군대가 이집트·앗수르 연합군을 대파한다. 이때부터 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직접적인 위협과 침략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다. 강대국 사이에 낀 유다 왕국 내부는 '친(親)이집트파'와 '친(親)바벨론파'로 갈라져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요시야 왕 사후 즉위한 왕들의 행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은 반(反)이집트 정책으로 즉위 3개월 만에 이집트에 의해 폐위 및 유배된다. 이집트가 세운 꼭두각시 여호야김 왕은 친이집트 정책을 고수하여 바벨론의 1차 침공을 자초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의 2차 침공 직면하여, 즉위 3개월 만에 예루살렘에서 항복하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된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친이집트파의 압박으로 바벨론에 반역하여 예루살렘이 함락(BC 586)되고, 두 눈이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이 시기 활동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바벨론의 침략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니,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이 외침은 당시 지배층과 백성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당시 주류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낙관론(성전 신학의 왜곡)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에게 예레미야의 심판론은 민심을 흔드는 '악담'이었다. 친이집트파 정치인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주장은 국가 반역이자 매국 행위로 보였다. 결국 예레미야는 매질을 당하고, 구덩이에 던져지며, 감옥에 갇히는 등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게 된다.
예레미야서는 예언자의 활동 이후 바빌론 포로기 전후에 정리되었다. 나라를 잃은 백성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아야 했다.
예레미야가 주님께 불평하다
7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파타 פָּתָה, patah는 유혹하다, 설득하다라는 뜻).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8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9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10 수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 있다. 너희는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합니다. 나와 친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가 넘어지기만을 기다립니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그를 덮치고 그에게 보복을 하자' 합니다.
11 그러나 주님, 주님은 내 옆에 계시는 힘센 용사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실패해서, 그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큰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12 만군의 주님,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시고,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었으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내가 그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13 "주님께 노래하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께서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악인들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다."
믿음으로 산다고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는다. 손해를 본다. 그러나 하나님이 맡기신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
2. 고난 속의 기도(시 69:7-18)
본문은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다. 억울한 비난과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기록된 탄식시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 시를 예배 가운데 사용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을 배웠다.
7 주님 때문에 내가 욕을 먹고, 내 얼굴이 수치로 덮였습니다.
8 친척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어머니의 자녀들에게마저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9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키나 קִנְאָה는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뜻한다.)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에게로 쏟아집니다.
10 내가 금식하면서 울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11 내가 베옷을 입고서 슬퍼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게는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12 성문에 앉아 있는 자들이 나를 비난하고, 술에 취한 자들이 나를 두고서 빈정거리는 노래를 지어 흥얼거립니다.
13 그러나 주님, 오직 주님께만 기도하오니, 하나님, 주님께서 나를 반기시는 그 때에,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의 확실한 구원으로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14 나를 이 수렁에서 끌어내어 주셔서 그 속에 빠져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를 미워하는 자들과 깊은 물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5 큰 물결이 나를 덮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깊은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큰 구덩이가 입을 벌려 나를 삼키고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16 주님, 주님의 사랑은 한결같으시니, 나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주님께는 긍휼이 풍성하오니, 나에게로 얼굴을 돌려 주십시오.
17 주님의 종에게, 주님의 얼굴을 가리지 말아 주십시오. 나에게 큰 고통이 있으니, 어서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
18 나에게로 빨리 오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나의 원수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나이가 들수록 억울한 일이 많다. 자녀에게 서운할 수 있다. 세상 변화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원망보다 기도해야 한다.
3.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으로 살다(롬 6:1-11)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였다. 바울은 은혜가 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바울이 "은혜가 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가르친 이유는, 당시 일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오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교훈
1.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새로운 공동체 윤리가 필요했기 때문
로마 교회에는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 신자들과 율법 없이 살아온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있었다.
바울은 율법주의도 거부하고, 방종도 거부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새로운 삶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쳤다.
2.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 사람은 옛 삶과 결별한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죄의 지배 아래 살 수 없다고 본다.
3. 은혜는 죄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기 때문
은혜는 단순히 죄를 덮어주는 면허증이 아니다.
죄인을 의롭게 하고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4. 복음이 도덕적 무질서를 초래한다는 비난에 답하기 위해서
당시 바울은 "율법 없이 은혜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복음이 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의 권세에서 해방한다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바울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 가운데 머물 수 없다"고 보았다. 로마서 6장의 핵심은 "은혜 때문에 죄를 지어도 된다"가 아니라 "은혜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므로 새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로마서는 서기 57년경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 바울은 로마 방문을 앞두고 복음의 핵심을 정리하였다.
1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2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3 세례(밥티스마 βάπτισμα는 물에 잠긴다는 뜻이다. 옛사람의 죽음과 새사람의 탄생을 상징한다.)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5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6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7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9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믿음 안에 살아야 한다.
4. 두려움을 넘어서는 제자의 길(마 10:24-39)
본문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 여행으로 보내며 주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박해와 거절을 경험하게 된다.
마태복음은 서기 80년대 전후에 기록되었다. 당시 교회는 유대 사회와 로마 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24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분을 두려워하여라(눅 12:2-7)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포베오 φοβέω, phobeo는 공포를 느끼고 위축되는 상태를 말한다.)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눅 12:8-9)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칼을 주려고 왔다(눅 12:51-53; 14:26-27)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질병이 두렵다. 노년이 두렵다. 죽음이 두렵다. 관계 단절이 두렵다.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아야 한다.
결론
살아가는데 고난도 동반된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두려움보다 하나님 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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