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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생명 씨앗 #이사야 55:10-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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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생명 씨앗 #이사야 55:10-11

필명 이일기 2026. 7. 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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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씨앗 (이사야 55:10-11)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린다. 그러나 마음의 밭에 따라 열매가 달라질 수 있다.

서론

며칠 폭우가 쏟아지더니 그제부터 날씨가 엄청 덥다. 농사에 날씨는 많은 영향을 준다.

오래전부터 농촌에서는 기계가 밭을 갈고, 드론이 농약을 뿌리는 농사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 농부들이 농사를 편하게 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앗이 없다면 아무것도 시작될 수 없다. 씨앗은 생명이다. 생명은 어떤 조건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유지된다. 그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 생명도 마찬가지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깊어지지만, 겉치레 믿음에 머물기도 한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씨 뿌리는 사람 Le Semeur (르 스뫼르) The Sower

〉(장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 "씨뿌리는 사람"

과는 다른 그림)은 강렬한 태양과 넓은 들판과 함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담고 있다. 단순한 농사 풍경을 넘어 생명과 노동을 그린 것이고, 인생과 하나님의 신비를 담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책 『참회록』에서 젊은 시절 기독교를 불신했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며, 농부들의 소박한 삶을 통해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회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늘 본문은  씨앗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살핀다. 말씀은 씨앗이고, 사람의 마음은 밭이다. 하나님은 그 씨앗을 통해 우리 속에 새로운 생명을 일으킨다.

본론 

1 이사야 55:10-13

사건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이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불타고 무너졌다. 폐허가 된 것이다. 백성들은 믿음의 뿌리가 끊어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 절망적 상황에서 귀국에 대한 회복을 약속한다.

이 본문이 기록된 것은 포로기 후반,  페르시아의 등장과 함께 귀환 가능성이 열리던 때였다. 하나님은 이미 역사를 준비시켜 움직였던 것이다.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현실을 만든 것이다.

 

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11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다바르 דָּבָר 는 말씀, 사건, 실행되는 언어다.)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12   참으로 너희는 기뻐하면서 바빌론을 떠날 것이며, 평안히 인도받아 나아올 것이다. 산과 언덕이 너희 앞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며,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다.
13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잣나무가 자랄 것이며, 찔레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화석류(꽃이 크고 화려하게 피는 석류나무 계통)가 자랄 것이다.이것은 영원토록 남아 있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할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쉽게 듣고 쉽게 잊는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고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반드시 열매로 결실된다.

2 시편 65:1-13

이 시편은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서 사용된 감사 찬양이다.

이 시편이 기록될 때는 하나님을 “풍요의 주권자”로 성전 중심 공동체에서 고백하는 찬양이었다.

농작물들을 비가 오면 살아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죽는다. 농작물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과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것이다. 하나님을 단순한 창조주가 아니라 생명을 드러내 보여주는 분으로 묘사한 것이다.

 

1   하나님, 시온에서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한 일이니, 우리가 주님께 한 서원을 지키렵니다.
2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육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3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4   주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어 주님의 뜰에 머물게 하신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집, 주님의 거룩한 성전(바이트 בַּיִת)에서 온갖 좋은 복(바라크 בָּרַךְ는 생명을 흘려보내다, 번성하게 하다는 뜻이다)으로 만족하렵니다.
5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주님께서 그 놀라운 행적으로 정의를 세우시며,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시므로 땅 끝까지, 먼 바다 끝까지, 모든 사람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6   주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허리에 띠를 동이시고 산들이 뿌리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7   주님께서는 바다의 노호와 파도 소리를 그치게 하시며, 민족들의 소요를 가라앉히셨습니다.
8   땅 끝에 사는 사람들까지, 주님께서 보이신 징조를 보고, 두려워서 떱니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까지도, 주님께서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9   주님께서 땅을 돌보시어, 땅에 물을 대주시고, 큰 풍년이 들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놓으신 물길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오곡을 마련해 주시니, 이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다가 그렇게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10   주님께서 또 밭이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 끝을 마무르시며, 밭을 단비로 적시며, 움 돋는 새싹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11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12   그 기름이 광야의 목장에도 여울져 흐르고, 언덕들도 즐거워합니다.
13   목장마다 양 떼로 뒤덮이고, 골짜기마다 오곡이 가득하니,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오고, 즐거운 노랫소리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도 메마른 시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비를 내리신다. 말씀과 은혜로 마음을 적신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땅이다. 닫힌 마음에는 비가 머물지 못하지만 열린 마음에는 생명이 자란다.

3. 로마서 8:1-11

당시 로마는 권력과 법, 질서가 지배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죄와 죽음의 권세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바울은 그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정죄 없음”을 선포한다. 이것은 법정 언어이다. 죄인으로 선언된 사람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된 사람의 상태다.

본문은 바울의 선교 말기, 예루살렘 방문 직전 시기에 기록되었다. 복음은 이미 유대와 이방을 넘어 로마 중심부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여전히 갈등이 있었다. 율법과 은혜, 육과 영의 긴장이 있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성령”으로 해결한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의 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카타크리마 κατάκριμα는 법적 유죄 판결이다.)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노모스 투 프네우마토스 테스 조에스  νόμος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ῆς ζωῆς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지배 원리다.)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사르크스 σάρξ는 단순한 몸이 아니라 죄에 지배된 인간 본성이다.)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11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신앙은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생명이다. 성령은 지금도 사람 안에서 새 삶을 일으킨다.

4. 마태복음 13:1-9, 18-23

본문은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무리를 향해 말씀하신 장면이다. 갈릴리는 농경과 어업이 중심인 지역이었다. 씨 뿌리는 모습은 누구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예수님은 가장 평범한 장면을 통해 가장 깊은 진리를 말씀하신다.

마태복음은 유대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기록되었다. 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비유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통치임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네 가지 땅을 말한다.

길가, 말씀이 들어가지만 바로 빼앗긴다. 습관과 완고함의 마음이다.

돌밭, 기쁨은 있으나 뿌리가 없다. 감정 신앙이다.

가시밭, 염려와 욕심이 말씀을 막는다. 세상 걱정이 믿음을 덮는다.

좋은 땅, 말씀을 듣고 깨닫고 열매를 맺는다.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2   많은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물가에 서 있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하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5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6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렸다.
7   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8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8   "너희는 이제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는 하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다.)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쉬니에미 συνίημι 는 단순 이해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 변화됨이다.)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   또 돌짝밭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22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 사람이야말로 열매(카르포스 καρπός는 결과, 삶의 변화, 성품의 변화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바뀔 수 있다. 돌밭도 갈아엎으면 밭이 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마음이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어야 한다. 걱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다.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이다. 성령은 그 씨앗에 생명을 주어 마음의 밭에 열매를 맺도록 한다.

오늘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 말씀은 헛되지 않다. 성령은 지금도 일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변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선택이 중요하다. 말씀 앞에 마음을 열 때 생명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좋은 밭에 심겨 성령 안에서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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