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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9일 주일 낮 예배 본문
1998년 8월 9일 주일 낮 예배
제목 : 쁘레쉬트 빠라 엘로힘
주제 : 하나님의 섭리
1. 창세기는 왜 기록되었을까? 하나님은 이 창세기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 달하려 했을까? 창세기기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말씀에 나와있다. 이 말은 몇 가지 배경을 가 지고 있다.
1) 인간 권력 왕이 아무리 강대하고 힘이 있어도 그 또한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 으로 인간에 대한 경계요,서민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국에 인간 모두에 대한 경계였다.
2) 이방 신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에 대한 경계이며
3) 인간이나 권력이나 기타의 어떤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섭리하는 것이 아니라 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모습 즉 인간의 하는 행동을 보니까 못된 길로만 치닿는 데에 대한 경고요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 주심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가인과 아벨 이후 야곱과 형제들에 의해 팔린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요셉이야기 거기서 출애굽으로 넘어가면서 모세 계속된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끄는 역사.
2. 출애굽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진행
3. 오늘은 교회적으로 광복주일로 지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민족 고난의 역사에 동참한 역사 였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선교된 이후 한 민족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이 민족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를 줄기차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신 하 나님이셨다. 일제로 부터 고난 받는 민중의 입장에 서서 소외되고 어려운 민중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을 우리는 체험했습니다.
일제 시대로부터의 해방과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와 독재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오늘날 물질
만능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임을 우리는 체험했습니다.
오늘 IMF와 작금의 수해에 이르기까지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건대 우 리는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임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는 그래서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천국 백성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모토로 내걸고 그 이름을 명명했습니다. 민족과 민중에게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는 것입 니다.
4. 창세기는 우리로 하여금 섭리하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인 간 역사를 통한 드러내 보이시는 기록입니다. 한마디로 곧 그가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는 말이며 이것이 절 대 절명의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5. 고난은 있을 수 있습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즐겨 쓴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런던 시민들은 신선한 청어를 좋아해서 북해에서는 늘 청어잡이가 성행 했습니다. 북해로부터 청어를 수송해 오는 방법은 큰 물탱크에 청어를 산 채로 넣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먹이를 주어가면서 그렇게 수송해오면 런던까 지 살아있는 청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어는 먼 여행으로 인해 기진맥진해져서 도착할 때쯤이면 거의 탈진 상태에 빠져 있곤 했습니다. 이런 형편 이고 보니 신선도가 떨어져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은 항상 신선한 상태로 청어를 수송해와서 팔았습니다. 이 사람의 청어는 언제나 싱싱했습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다른 업자들은 그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비결이란 게 별것 아니었습니다. 물탱크 안에 청어를 넣는 것까지는 같은 데 그 청어들 틈에 커다란 숭어 한 마리를 넣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숭어가 청어를 다 잡아 먹을 것 아닌가?’하고 걱정했지만 실제로 잡아먹어 보았자 몇 마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숭어가 청어를 잡아먹으려고 쫓아다닐 때 청어들은 잡아먹히지 않으려 고 필사적으로 헤엄을 칩니 다. 그러나 그렇게 청어들이 도망 다니는 것이 운동효과를 내어 결국 런던까지 싱싱하게 산채로 실어 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토인비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첫째, 염려와 걱정의 허상에 관한 통찰입니다. 수산업자들은 ‘청어들 틈에 커다란 숭어를 넣어두다니. 다 잡아먹히고 말 텐데.’ ‘고양이 앞에 쥐를 놓는 경이 아닌가.’ 하고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숭어가 잡아먹은 청어는 고작 몇 마리에 불과 했습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사자가 영양과 얼룩말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 종이 멸종되는 것은 아닙 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지나친 염려와 걱정 때문에 아무 것도 일으키지 못하고, 이룩하지도 못할 때가 많 습니다. 염려망상증이나 염려확대증에 걸려서는 안됩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체제하에서 박해를 받던 범브랜드(Richard Wurmbrand) 목사는 옥 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근심,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도대체 몇 번이나 기록되어 있는 가 헤아려 보았더니 무려 365번이나 기록되어 있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걱정은 365일 그칠 날이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도 끊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둘째, 사람은 도전을 받는 가운데서 오히려 강인해집니다.
“청어 가운데 커다란 숭어를 넣다니, 차라리 양 가운데 이리와 늑대를 넣으라지. 안 돼! 청어가 겁에 질려 더 빨리 지치고 죽을 거야.”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습 니다.
볼테르는 “행복은 꿈에 지나지 않고 고통은 현실이다.”라고 말했지만 포세이도니 오스는 “고통이여! 네가 아무리 내게 고통을 준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악으로 여기지 않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그 고통을 견디 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불리한 조건을 탓하지 않습니다.
셋째, 소수의 악을 보지 말고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청어 떼 가운데 던져진 필요악과 같은 숭어만 바라보지 말고, 인생 길에 가끔씩 갈 라 붙는 질병만 바라보지 말자는 말입니다. 장미를 앞에 놓고 가시를 보지 말고 화사한 꽃을 보고 활기를 마 시자는 말입니다.
우리 삶과 사회생활 속에서 소수의 악을 크게 보지 말고 다수의 선을 포착하는 슬 기를 기르고 악마의 불행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관심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가시를 먼저 보고 악 마의 불행을 크게 보는 자는 비관주의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화사한 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악 마의 불행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더욱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6. 결론
창세기를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인간의 계속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류 만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운행과 보전과 진행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비록 악이 성하고 고난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 의 섭리 가운데 있는것이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하라는 말입 니다.
민족이 고난에 처했었지만 이겨냈듯이 또한 오늘의 고난도 또한 하나님은 반드시 견디어 극복토록 하실것입니다. 광복의 하나님은 최후의 승리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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