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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1 제목 : 교회의 목적 성경 : 디모데전서 6장 4-7절 주제 : 믿음 본문

설교

20021201 제목 : 교회의 목적 성경 : 디모데전서 6장 4-7절 주제 : 믿음

필명 이일기 2018. 12.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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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1

제목 : 교회의 목적

성경 : 디모데전서 64-7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주제 : 믿음

 

1. 서론

우리 나라에서도 그렇습니다만 미국에서 택지가 개발되거나 도시를 최초로 건설하면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입니다. 택지나 도시 개발 후 처음에 교회가 눈에 띠는 것은 먼저 교회들이 건축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그 교회가 중심이 되어 문화가 형성되고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한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민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을 위하여 교회조직이 유효한 것이겠지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겠지요. 아파트 입주나 이사할 때 특히 그렇다고 합니다. 교회는 전도를 위하고 사람들은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겠지요. 교회들이 많은 이유를 비난하기도 하는데 한편 교회는 자체 목적을 갖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입교하거나 다니는 목적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서 교회에 다닙니까?

 

2. 본론

교회에 나오거나 다니는 이유가 신앙 때문입니까? 대부분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신앙이 목적이 아닙니다. 조금 신앙에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진정 믿음이 좋아서, 멋모르고 믿는 사람이 좋아서 등등 이유 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예를 들면 사람이 그리워, 건강과 평안과 안정을 위해, 복을 받기 위해, 사업을 위해, 자녀를 위해, 가정을 위해 교회에 나오거나 다닙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라는 사람들 조차도 따지고 보면 인간적인 이해나 관계 속에서 교회 다니거나 나오게 됩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야 순수하게 신앙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방황하다가 신앙 그 자체를 위하여 입교하거나 교인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위에서 말씀 나눈 것처럼 인간적인 관심이나 관계에서 입교하거나 교인으로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심과 관계, 즉 인간적인 만남들과 관계는 도움 받고자 하거나, 이해 관계에 있거나, 혈연 지연 학연 등의 관계 속에서, 사람이 그리워서, 건강을 위하여,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나누고자, 사귀고자하는 것에 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줄여서 말하면 교회에 다니거나 다니려고 하는 목적이 내 욕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종합적인(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이해 관계 속에서 시작되고 그 이해관계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난하거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과 인간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할까요?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는데 교회에 나가면 여러 사람을 만나니 사업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교회에 나갑니다. 물론 그 사람이 외형적으로 그런 말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그런 계산을 하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신앙도 생각하고 인간적인 관계도 있고 부인의 독촉도 있고, 그러나 상당히 많은 관심은 사업을 위한 생각이 많습니다. 이 사람을 교회는 그런 사업하는 곳이 아니야 신앙을 위한 곳이야하면서 비난할 수 있습니까? 비난해서도 안되고 비난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일반적인 성격상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있는 순간 여러분 각자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면서 얼굴이 붉혀질까 염려하실텐데요. 전혀 아닙니다. 왜냐고요? 여기 있는 모두가 저를 포함해서 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거나 다니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교회는 사업장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조금 후에 말씀드립니다.

인생을 사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며 괴로운 일입니까? 그제 우리 박집사님하고 모 친구하고 식사하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 설계사무소 운영하는 사업하는데 다른 것은(설계하거나 하는 것 등) 다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사 설계를 따내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안정적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을 위하여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정도 이끌 수 있고, 자신의 일도 하고 보람도 느끼며, 사는 재미를 느낄텐데, 그것이 불안정하니 자신의 인생이 불안정한 것이지요. 어디 이 친구뿐이겠습니까? 모든 인생은 이와 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생은 서럽고 한 많은 것이지요! 그 한 많은 불안한 인생살이가 사업 때문만입니까? 부자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 등 가정문제, 죽음이 무엇인가? 병은 무엇인가? 삶을 무엇인가? 등등의 인생문제, 그리고 사회문제, 국가문제 등등을 모두가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들이 교회에 나오거나 다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상과 같이 비록 교회가 일반적으로는 개인적 욕망을 위한 현실의 목적이 있다하더라도 한 차원 더 높은 면에서 보면, 교회는 종교적인 생각과 신앙적인 삶이 궁극적인 목적이 됩니다.

 

김영준의 글

기업의 가치를 따질 때 기업의 유형자산, 그러니까 현금이나 부동산만을 가지고 그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무형자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브랜드라던가, 고객과의 관계라던가, 인적자본과 같은 것이 무형자산이 되어서 그것을 이 기업의 가치를 계산하는데 포함시킵니다. 정보화 시대의 성공은 무형자산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도 무형자산에 속하고 인격도 무형자산에 속합니다. 은행이 돈을 대출해줄 때 그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신용이라는 것입니다. 고객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에게 신용이 없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신용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하는 것이고 오랜 시간을 통해 검증된 그 사람의 신실함이 그 사람의 신용이 된다면, 사람의 믿음도 비록 그 사람이 눈에 보이기에는 가진 것이 없더라도 믿음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충직한 사람이다라는 것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무형자산이 되고 인생의 밑천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자산이 없더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 인격이 있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밑천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분의 글은 단순히 신뢰로서의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신뢰성이 자산이라는 것이지요. 돈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되는 것이지요. 지식과 정보와 학력 등과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 외모, 언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 또한 자산입니다. 자주 다니는 모 음식점은 다른 곳 파리 날려도 그곳만은 잘됩니다. 그 비법을 알아보니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산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 관계를 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니 소홀히 대할 수 없고 친절하지 않을 수 없고 더구나 음식을 잘 만들려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장사가 사업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누구나 다 잘 압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계속 말씀드리지만 인간적인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각 개인에게 자산이 됩니다. 그런데 더 크고 깊고 귀한 교회의 목적이 있음을 깨우치는 사람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질상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경배하며 찬양하며 삶의 지표와 지향을 갖도록 합니다. 일칭 구원받는 삶을 살도록 합니다. 인생을 깨우치고 인간 본연의 진리의 삶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진리를 알기를 바라십니다. 이 길을 위하여 교회는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하여 교회는 구원과 진리를 위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에 의하면 다른 측면에서 교회는 구원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관입니다.(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이것을 위하여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고 그의 제자요 자식처럼 위하는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여러분 교회는 구원과 진리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관입니다. 이것을 순종하여 받고 그것으로 믿음생활을 하면 더 없는 큰 자산을 소유하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인생을 깨우치며 구원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을 증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종국에 교회가 있음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결과적으로 생활에서 부하며 인생에서 승리하며 축복된 삶을 사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결론

교회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속에는 우리들의 현실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데 효과적인 체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살리면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이며 잘못이 아닙니다. 교우들간에 좋은 관계를 맺으시고 여러분이 가진 좋은 자산을 나누어 결과적으로 모두가 유익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한편 더하여 교회는 본래의 목적인 구원과 진리의 삶을 살게 하는 곳입니다. 이것을 체험하고 체득하면 여러분은 육적인 삶만이 아니라 영적인 삶도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일칭하여 복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 충실하여 믿음생활에 충실하여 현실의 육적인 삶에서나 영적인 삶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불안하고 험한 세상에서 자산을 축적하여 잘 관리하므로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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