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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4 제목 : 아름다운 삶을 위하시는 하나님 성경 : 창세기 2장 1-25절 본문
20041114
제목 : 아름다운 삶을 위하시는 하나님
성경 : 창세기 2장 1-25절
새번역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그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 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1. 선진국에서 칼로리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서 고생을 하는데, 사실 다이어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니지요. 북한의 대다수 인민들은 먹고살기 바쁜데, 다이어트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것입니다. 미국이나 남한 사람들 이야기지요.
재미있는 이솝 우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포도원을 지나가던 여우가 탐스럽게 생긴 포도가 먹고 싶었는데 울타리가 있어서 들어가 먹지 못하고 있다가 구멍을 발견하였는데, 그 구멍이 너무 작아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여우는 자신이 못 들어가는 것으로 인하여 더욱 포도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꾀많은 여우는 그 자리에 앉아서 사흘을 굶은 끝에 몸집이 줄어서 간신히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자기 세상을 만난 여우는 마음껏 포도를 따먹었습니다. 배불리 포도를 따먹은 여우는 흐뭇한 마음으로 포도원을 빠져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들어올 때와는 달리 배가 불러 그 구멍을 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여우는 다시금 사흘을 굶어 겨우 구멍을 빠져나왔습니다. 결국 뱃속은 들어 갈 때나 나올 때나 똑같이 비어있구나 하며 중얼거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포도를 먹으려면 다이어트 해야 합니다. 자유를 찾아 나서려면 다이어트 해야 합니다.
인생은 공수레 공수거입니다. 무엇을 맘껏 먹는다는 것이나, 무엇을 많이 얻는다, 지식을 많이 얻는다, 명예를, 등등의 모든 부귀공명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다 공수레 공수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양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성공하고자 합니다.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풍성하게 살도록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포도원 안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살이 너무 많이 찐 것으로 인해, 욕심으로 인해 그 풍성한 자리가 울타리로 둘러있게 된 것입니다. 풍성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다이어트한 사람일 것입니다.
2. 인간의 특성은 대략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자기방어 기제, 자기 변명, 남을 의식하지 않는 본능, 욕망, iD, 아집, 주장, 부정, 불신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2) 반면 합리성을 쫓는 이성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의식하는 성질, 나에 대한 절제력, 에로스, 배려, 포용, 이해하려는 특성도 있습니다.
3)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양심도 인간에게는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가페, 용서, 사랑, 긍정, 믿으려 하고자 하는 특성도 있는 것입니다.
3. 요한복음 10장 말씀과 10절 말씀 - 양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믿는 사람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양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뒤따라 간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은 절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그런 사람을 보면 도리어 달아난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앞에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여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 사이에서 다시 분열이 생겼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은 "그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는데, 어찌하여 그의 말을 듣느냐?" 하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은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성전 봉헌절 행사가 있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예수께서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다.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곧 나를 증거한다.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어느 누구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만유보다도 위대하시고,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이 때에 유대 사람들이 다시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
유대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은, 당신이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셨다. 또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거든, 나를 믿지는 않더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예수께서 다시 요단 강 건너, 요한이 처음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르셨다.
많은 사람이 그분에게로 와서 말하기를 "요한은 표적을 하나도 행하여 보이지 않았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은 모두 참이다" 하였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불신으로 양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포도원의 풍성함이 없습니다.
4. 본문 말씀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세상 창조 후 안식하셨다.
2)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3)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창조 안에는 법칙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사람들이 쉼을 얻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신은 죽는 삶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5. 인간은 불신하기도, 이해하기도 하지만, 믿음 가운데 축복이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드신 이 세상을 즐기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불신이 아담 안에서 죽고, 나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삶을 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 말씀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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