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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제목 : 나는 그를 기다리며 바라본다. 성경 : 이사야 8장 17,18절 본문
20050424
제목 : 나는 그를 기다리며 바라본다.
성경 : 이사야 8장 17,18절
표준새번역 제 8 장
징조가 된 이사야의 아들
1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와서, 그 위에, 두루 쓰는 글자로 1)'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써라. '노략이 속히 올 것이다'
2 내가 진실한 증인 우리야 제사장과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겠다."
3 그런 다음에, 나는 2)예언자를 가까이하였다. 그러자 그 예언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때에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하여라. 또는 '여자 예언자' 또는 '예언자의 아내'
4 이 아이가 '아빠,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도 전에, 앗시리아 왕이 다마스쿠스에서 빼앗은 재물과 사마리아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가져 갈 것이다."
앗시리아 왕의 침략
5 주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6 "이 백성이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싫어하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좋아하니,
7 나 주가 저 세차게 넘쳐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 물, 곧 앗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위력을 이 백성 위에 뒤덮이게 하겠다. 그 때에 그 물이 온 샛강을 뒤덮고 둑마다 넘쳐서,
8 유다로 밀려들고,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유다를 휩쓸고, 유다의 목에까지 찰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 땅을 보호하신다.
9 너희 민족들아! 어디, 3)전쟁의 함성을 질러 보아라. 패망하고 말 것이다. 먼 나라에서 온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싸울 준비를 하여라. 그러나 마침내 패망하고 말 것이다. 싸울 준비를 하여라. 그러나 마침내 패망하고 말 것이다. 또는 '너희 마음대로 행하여 보아라'
10 전략을 세워라. 그러나 마침내 실패하고 말 것이다. 계획을 말해 보아라.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다. 4)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히, '임마누엘'
주께서 예언자에게 경고하시다
11 주께서 그 힘센 손으로 나를 붙잡고, 이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고, 나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12 "너희는 이 백성이 5)모의하는 음모에 가담하지 말아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무서워하지도 말아라." 또는 '맺는 맹약에'
13 너희는 만군의 주 그분만을 거룩하다고 하여라. 그분만이 너희가 두려워할 분이시고, 그분만이 너희가 무서워할 분이시다.
14 그는 성소도 되시지만,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는 거치는 돌도 되시고 걸리는 바위도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가미도 되신다.
15 많은 사람이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고 다치며, 덫에 걸리듯이 걸리고 사로잡힐 것이다.
죽은 자에게 묻는 것을 경고하시다
16 나는 이 증언 문서를 밀봉하고, 이 가르침을 봉인해서, 나의 제자들이 읽지 못하게 하겠다.
17 주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다. 나는 주님을 의지하겠다.
18 내가 여기에 있고, 주께서 나에게 주신 이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나와 아이들은,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시는, 살아 있는 징조와 예표다.
19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희에게, 속살거리며 중얼거리는 신접한 자와 무당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 어느 백성이든지 자기들의 신들에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산 자의 문제에 해답을 얻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 그러나 너희는 그들에게 대답하여라. 오직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만 듣고, 그 말씀에 관한 증언만 들으라고 하여라. 이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동트는 것을 못 볼 것이라고 하여라.
고난의 때
21 그들은 괴로움과 굶주림으로 이 땅을 헤맬 것이다. 굶주리고 분노한 나머지, 위를 쳐다보며 왕과 신들을 저주할 것이다.
22 그런 다음에, 땅을 내려다 보겠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뿐일 것이니, 마침내 그들은 짙은 흑암 속에 떨어져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1. 서
우리나라는 북한과 적대관계 속에서 남북교류로 나아가며, 한편 북핵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일본과는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로, 년전에는 중국의 동북공정 즉 고구려사 왜곡의 문제로 갈등하고,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훼손하니 안하니 하고 논쟁 중에 있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가운데 우리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에서 격랑에 휩싸이는 느낌이다.
한편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 불안에 휩싸인 느낌도 받는다. 지금 평안하지만 장래가 불안하다. 무엇 때문인가?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기의 유다 나라와 흡사하다고 느껴본다. 본문을 통하여 불안의 근원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2. 본문
이사야서에 의하면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B.C. 740-680년경 60여년이었다. 당시의 유다 왕은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아였다. 웃시아 요담 때에는 평화와 번영을 구가 하였지만 종교적 외식과 도덕적 부패가 있었다. 결국 그로인해 전쟁을 낳았다. 아하스 때에는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고(왕하 16:5), 물론 수리아-에브라임은 앗수르에 의하여 패망하였지만, 히스기야 때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방어해야만 하였다(왕하 18:13). 나아가 유다는 이후 애굽의 위협, 바벨론의 위협과 종말로 이어진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런데 그 위협당함과 패망의 원인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7장 10절에서 13절) 아하스 왕의 불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왕으로 대표되는 백성들의 죄악이 심판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죄악에 따른 여호와의 심판'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구체적으로 본문이 있는 8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도구 앗수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유다 배교에 관한 말씀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사야는 앗수르의 압제 중에 나타나는 임마누엘의 위로를 말한다.
1절은 8장의 앞장인 7장에서 이사야는 임마누엘(마헬살랄하스바스-약탈과 노획이 급속히 이르름)이라 하는 아이가 성장하기 전에 먼저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앗수르에 의하여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하였다.
2절은 아하스왕에게 빌붙어 후에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앗수르 제단을 건립하는 데 협력한 자인(왕하 16:10-16)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이며, 아하스 왕의 장인인(왕하 18:1,2;대하 29:1)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들이 1절의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지명도와 영향력으로 백성들에게 공증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3절,4절은 앗수르에 의한 수리아와 사마리아(에브라임)의 몰락은 급박한 사실로 눈앞에 놓이게 된다는 말씀.
앗수르 왕의 침략
5, 6절은 수리아와 사마리아(에브라임)의 약탈만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니고, 유다가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한 일로 인하여 장차 벌어질 사태를 백성들 또한 목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는데, 실로아 물은 기혼 샘물에서 발원하여 예루살렘 도성의 동편을 끼고 흐르는 작고 가느다란 시냇물을 가리킨다.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에 대조적인 의미로 쓰였다.
백성들의 마음은 불신앙으로 인해서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짓눌려 있어서 천천히 흐르는 이 실로아 물이야말로 참된 구원이 됨을 전혀 알지 못하고, 유다 백성들이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의 파멸을 보고 자만하여 기뻐한다는 뜻이다.
7-9절 눈에 보이는것만으로 위로를 삼는 백성들에게 앗수르 군대의 힘과 위용이야말로 거세게 넘실대는 유브라데 강물처럼 마음 든든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범람하는 그 강물이 마침내 수리아와 사마리아를 넘어 유다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보지 못했다. 세상을 의지한 것이었다.
앗수르에 의한 유다의 약탈은 목에까지 물이 차는 정도의 극심한 홍수 상태였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의 대군은 몇 년 안 되어 유다의 넓은 지역을 파괴하고 예물뿐 아니라 공물까지 바칠 것을 요구하였다(대하 28:20,21). 더 큰 피해는 그 후대의 왕, 특히 산헤립(B.C. 705-681) 때에 이루어졌다.
10-13절 그러니 르신-베가 동맹군에 맞서 친앗수르 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정치 지도자들처럼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친앗수르정책에 반대하던 그래서 반역자 취급을 받은 선지자들을 따라 하나님만 거룩히 여기라고 말한다.
14-15절 '이스라엘의 두 집'인 에브라임(사마리아,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오직 인간의 생각만을 의지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거친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16-18절 이같은 때에 증거를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고 하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공적 사역이 위축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로부터 얼굴을 돌리시는 이 암담한 때에 '기다림'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기대함'이고 이 기대함은 소망으로 앞을 내다봄이었다. 주의 말씀이 거부되고 그의 활동이 제약되는 상황에서도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은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였다. 이사야의 두 아들은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를 가리킨다.
19-22절 아침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겪게 될 비참한 상태를 묘사하는 구절이다. 그들의 처지는 사막의 불볕 아래 음식도, 물도 없이 허덕이는 비참한 모습과도 같다. 앗수르의 압제 아래 백성들이 당하게 될 곤경을 염두에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이 너무도 격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분노하며 자기의 왕과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저주하는 모습을 그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이들에게 예정된 운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결론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풀리지 않고 힘들 때, 어렵고 괴로울 때 자포자기하며 세상따라, 세상의 가치관에 살 수 밖에 없는 허무를 느끼고 유혹에 빠진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은 거처럼 느끼고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우리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그의 공적인 사역이 위축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얼굴을 돌리시는 암담한 때에 우리가 취할 태도는 무엇인가? 이때 우리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다림이란 기대함이다. 그 기대한다는 것은 바로 소망을 갖고 앞을 내다보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낙담하지 않고 미래를 기다리며(히브리말 하카) 바라보는(히브리말 카와)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 바라본다는 것은 한편 의지한다는 말이다. 그를 믿고 그에게 우리의 소원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임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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