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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주일낮예배 제목 : 훼밍웨이와 톨스토이 성경 : 요한복음 14장 6-11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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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주일낮예배 제목 : 훼밍웨이와 톨스토이 성경 : 요한복음 14장 6-11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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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주일낮예배

제목 : 훼밍웨이와 톨스토이

성경 : 요한복음 146-11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기소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그의 가장 소중하던 도덕성과 명분은 이제 회복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 도 없는최악의 건강상태로 죽음에 이르는 절망에서 그 상태에서는 가장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자살이었다.

 

2. 통일 운동가이며 반미운동가 범민련 초대의장을 지낸 강희남 목사는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라는 붓글씨 1점과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2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집 보일러실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3. 훼밍웨이는 노인과 바다같은 불후의 명작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인생의 방황 속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문호였으나 허무한 인생을 고백하고 마지막 엽총을 자신의 입에 넣고 자살한 것이다.

훼밍웨이는 죽음 앞에 선 인생의 모습을 장엄하고 비장하게 묘사하려고 애쓴 행동주의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 앞에서 인생의 불안한 모습을 또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의 '킬리만자로의 눈'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36년 그러니까 헤밍웨이가 37세 때 썼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지난 일들에 대한 회상과 죽음에 대한 반응을 잘 묘사하고 있다. 훼밍웨이가 죽음의 허무 앞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사는 킬리만자로위에 죽어있는 표범으로 묘사한 셈입니다. 이렇게 장엄한 죽음을 그려왔던 헤밍웨이이기 때문에, 62세때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씨름하다가 자신의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금은 킬리만자로의 표범답지 않은 그의 죽음이었습니다.

 

4. 유명인들의 자살을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만이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 바울은 말했다. 하나님이 없으면 허무한 것이다.

 

인생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 한 번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해야 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답이다.

 

5. 톨스토이는 그의 책 참회록에서 그의 방황과 회심 그리고 삶의 의욕을 고백했다. 그 책의 핵심이 되는 것은 동양의 우화(맹수에 쫓겨 우물 속으로 피해 숨어 나뭇가지에 매달려 밑바닥에서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흰쥐 2마리가 관목나무 가지를 갉아먹고 있는 형편의 인생)에 관한 비유와 솔로몬의 전도서의 내용과 부처의 사상(세상 모르던 왕자가 궁궐 밖 행차 시 침을 질질 흘리는 흉측한 모습의 노인, 흐린 눈의 창백한 병자, 악취 나고 구더기 나오는 송장이 있는 세상에서 해탈하는 것이, 죽은 뒤에도 되 살아 나지 못하도록 철저한 해탈, 세상을 무시하고 세상이 없어야 한다는 세상에서는 살지 말아야 한다는 허무주의-)과 소크라테스(육체의 생은 악이고 허위이니 그런 생을 멸절시키는 것이 선한 것이다. 그 선을 희망해야 한다고 세상 멸절을 주장)와 쇼펜하우어(인생이란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인 악이다 그러므로 무로 전환하는 것이 유일한 선이다)와 솔로몬(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은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의 허무주의 사상인데, 톨스토이는 한때 50살이 되기 전에는 그들과 같이 허무주의 사상 속에 살았었다. 인생을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살하는 것이 최고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죽지 못해 살다가 그래도 세상에 사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고민한 끝에 민중들에게 그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끝내 농부 크리스챤들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신자가 되어 생을 의욕적으로 살았다. 죽음 앞에서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졌었다. 그러던 그가 참 신앙을 찾아 변화된 삶을 산 것이다.

 

6. 새벽기도 후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운동을 한다. 저녁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낮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살려고 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다.

방송에 보면 생노병사의비밀이라는 프로를 비롯, 음식에 대한 프로, 교육방송에 보면 명의들에 대한 프로 등을 보면 사람들이 건강하게 병 걸리지 않고 또는 병 치료를 위해 애쓰는 것을 보게 된다. 모두가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살려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부자 되고자 발버둥치고 돈 벌려고 애를 쓴다. 살려고 하는 것이다. 죽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택한다.

 

7. 자살하는 사람들은 왜 자살하는가? 명예, , 건강, 자녀, 그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예를 높이기 위하여, 돈 많이 벌기 위하여, 건강하기 위하여 살면서 그것들이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느끼기에 스스로 죽는 것이다. 살면서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인간은 소멸하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에 영혼이 팔려서 살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공허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8.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에 의하여 우리가 산다고 믿으면 삶의 의욕이 넘치는 것이다. 생의 용기가 넘친다. 사는 것이 감사하게 된다. 살든 죽든 모두 의미가 있다고 믿게 된다. 내가 구원받아야, 하나님 만나야 내게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것은 이생에서만이 아니다. 제 세상에서도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은 삶의 의미와 의욕을 가질 수밖에 없다.

 

9. 세상 재미없고 성공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우면 어려우면 의욕상실이 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은 그 속에도 의미가 있음을 알기에 늙어도, 힘이 빠져도, 삶의 의미가 의욕이 넘치는 것이다. 인생이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헛된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절망하면, 잘 못 살면, 고통이 있으면, 가난하면, 실패하면 사람들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버림받으면 살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마음 가운데 없이 때문이다.

 

10.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한다. 내가 구원받아야 한다. 그래야 삶의 의미가 있다.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진리여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말했다. 하나님만이 진리다. 세상 모든 것은 그에 의해서만 의미가 있다. 그것이 진리다. 내가 하나님 없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지면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내 욕심 챙기면 세상 살맛난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없으면 허무한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고, 소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준다. 우리로 하여금 자살하지 않고 살게 한다. 내 욕심 챙기라는 것이 아니다. 교회 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인생이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신 것을 믿고, 그분이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묵묵히 사는 것이다. 생을 찬미하며 사는 것이다.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다. 하나님이 존재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돈도, 자녀도, 행복도, 인생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그 진리로 살아야 한다. 거짓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살아야 사는 것이 의미가 있고 자살 충동을 갖지 않을 수 있다. 사는 것이 의미가 있게 된다. 사는 것이 진리다. 죽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너 사망아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1. 하나님 없는 우리 교회 성장은 세상 욕망이고, 그것은 거짓이다. 소목사 빛내기 위한 명예는 소멸하고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 믿고 사는 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게 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것은 진정한 교회 성장이다.

 

12.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님을 모든 사람이 믿어야 삶이 공허하지 않다. 삶의 의욕이 넘친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을 믿고 살게 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 노무현같은 사람도, 김목사 같은 사람도 최진실 같은 사람도, 훼밍웨이같은 사람도, 석가모니같은 사람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랴.

 

13. 톨스토이는 자살 지경에서 민중 농부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하여 의욕적인 삶을 살았다. 여러분도 여러분 가족도 이웃도 하나님 믿고 사는 것이 진리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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