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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예수님과 그의 교훈 #마가복음 12장 28-34절 본문

설교

20230326 #예수님과 그의 교훈 #마가복음 12장 28-34절

필명 이일기 2023. 3. 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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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예수님과 그의 교훈

마가복음 12장 28-34절

 

 마가복음서는 축귀, 치유, 말씀 교훈, 자연 통제 기적 등을 소재로 써 있다고 이미 말씀 나눴다. 그런데 그것은 수단이다. 마가복음서는 예수님을 이야기 한 거였다. 그 이유는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복음이다. 물론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갈등하고, 로마 군에 잡혀 죽는다.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으로 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그의 사명을 위해 살았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마가복음은 마가가 쓴 예수님 이야기이고,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이었고, 우리들에게 복음이다.

 

 오늘은 마가복음 12장이다.

1-12절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 21:33-46; 눅 20:9-19)

 종교지도자들은 성전 청결 사건 이후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 본 포도원 소작인 비유 기사는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한 것이다.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 믿고 살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들 종들 예언자들을 보냈지만, 그들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 예언자, 종들을 때리거나 능욕하거나 죽였다. 종래는 그의 아들 메시아까지도 잡아 죽일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죽인 예언자 메시아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메시아인 예수님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이 비유의 말씀은 제자들이나 저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실제적인 일이었고 예수님이 죽는다는 말씀이었기에 놀랄 만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이 말을 듣고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이 일을 저지른 자임을 지적한 말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 했으나 예수님을 지지하는 군중들이 무서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떠나갔다는 내용이다.

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하나님)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절구통 같이 움푹 파인 통)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종교지도자들, 백성)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2   때가 되어서, 주인(하나님)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예언자)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다시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그를 능욕하였다.
5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을 죽였다. 그래서 또 다른 종을 많이(이사야 예레미야 등등 수 많은 예언자들) 보냈는데,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6   이제 그 주인에게는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예수님, 메시아)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7   그러나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8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
9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시 118:22; 23
11   이것은 주님(예수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제자들, 저자)에는 놀랍게 보인다.'"
12   그들은(종교지도자들) 이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차리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13-17절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마 22:15-22; 눅 20:20-26)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을 음모는 계속된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은 세금에 대해 예수님이 어떤 입장인지 속임수를 써서 시험한다. 예수님은 세금은 황제에게 내라고 하고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경탄한다. 마가는 예수님의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보임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고 있다.

13   그들은 말로 예수를 책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예수께로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분이심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께서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가, 나에게 보여보아라."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그들은 예수께 경탄하였다.


18-27절 부활 논쟁(마 22:23-33; 눅 20:27-40)

 사두개인들은 사람은 부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율법 전통대로 형이 죽으면 형수는 아우를 남편으로 삼는 제도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 요량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세상에서는 결혼이 의미가 없고 천사처럼 사는 것이니 형수를 아내로 삼는 인간 세상 관습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부활 세상에서는 영원히 살기 때문에 자녀를 낳는 결혼을 할 필요도 없다. 이 기사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부활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한 세상은 현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혼 제도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결혼은 부활 후 변화된 세상에 관한 것이 아니고 현재 살아있는 동안 적용되는 것이며, 현재 세상에서 행해지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 후 시동생들과의 관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0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21   그리하여 둘째가 그 형수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살아날]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부활이 있다고 하기 위해 예수님은 구약의 모세와 하나님을 등장시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세 이전에 다 죽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살아나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부활하여 살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므로 부활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죽어 있는 사람들이 아닌 살아있는 또는 부활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크게 잘못 하고 있다는 말이다.

2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부활)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시지 않으셨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 하고 있다."


28-34절 가장 큰 계명(마 22:34-40; 눅 10:25-28)

 율법학자 중 한 명이 등장한다. 그의 계명 중 으뜸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에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대답에 동의 공감하며, 사랑하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그에 예수님은 그를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하고 그를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한다. 그 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질문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율법학자에게 명쾌한 답을 하고 그의 공감을 얻은 것이었다.

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35-37절 다윗의 자손과 그리스도(마 22:41-46; 눅 20:41-44)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존경과 기대와 희망의 대상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든 통치자가 다윗과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나라를 만들 다윗 같은 통치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권위있던 다윗은 성령으로 인도받아, 시편 110편 1절 말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원수를 물리칠 때까지 그리스도는 하나님 곁에 있으라 고 성부 하나님이 내 주님 그리스도께 말했다고 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위대하다고 하는 다윗보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더 권위가 있고 너희가 존경하고 기대할 존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마가의 입장이다. 예수님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라는 다윗 이상의 메시아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는 것이다.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서기관)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친히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성부 하나님)께서 내 주(성자 하나님,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께 말씀하셨다.「내가(성부)(성자) 원수를 네(성자)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성자)는 내(성부)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시편 110편 1절)
37   다윗 스스로가 그(성자 하나님,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를 주(성자 하나님,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성자 하나님,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많은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38-40절 율법학자들 책망(마 23:1-36; 눅 20:45-47)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잘났다고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 그래서 그들은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남을 섬겨야 하며 남에게 오히려 종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는 불가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38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41-44절 가난한 과부의 헌금(눅 21:1-4)

 예수님이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감사헌금 1만원 또는 5만원하면 일당도 안된다. 그런데 감사헌금 1,000원 했다면 일당 8만원의 80분의 1밖에 안 되는데도 예수님은 많은 금액을 헌금했다고 말한다. 가난한 과부는 자기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 약 1,000원을 냈기 때문에 누구보다 많이 넣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계산법은 일반 사람들의 계산법과는 달랐다.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데나리온(δηνάριον)(로마 화폐)(노동자 하루 품삯, 일당)[=드라크마(δραχμή)(그리스 화폐)]=64고드란트(로마 화폐)=128렙돈(그리스 화폐)=1/16앗사리온(ἀσσάριον)(로마 화폐)=1/100므나(μνᾶ)(그리스 로마 화폐)=1/3,000세겔=1/6000달란트(τάλαντον)(그리스 화폐)다.

 현재 우리나라 임금이 시간당 만원이고 8시간 일한다면 일당 8만원이다.

 렙돈 두닢 곧 한 고드란트=1/64데나리온이니 80,000원/64=1,250원이다. 현재 우리나라 지폐로 대략 1,000원짜리다.

 (1달란트=80,000원*6,000=4억8천만 원)

 

 이 기사가 많이 헌금한 사람을 비판한 것일까? 아니다. 적게 하고 많이 하고가 아니었다. 생활비 전체를 헌금하라는 것일까? 아니다. 헌금하는 것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일까? 아니다. 예수님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헌금에 대한 예수님 통찰력을 말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의 활동과 사명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복음이다. 우리가 그의 길을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에 살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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