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190428설교 아름다움과 하나님 선택 이사야서 40장 6절 본문

설교

20190428설교 아름다움과 하나님 선택 이사야서 40장 6절

필명 이일기 2019. 4. 28. 12:40
반응형

20190428설교

아름다움과 하나님 선택

이사야서 406, 한 소리가 외친다. "너는 외쳐라." 그래서 내가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1. 모든 종교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유익하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기도 하다.

 

친구들 모임에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제가 박사과정 때 세미나 중 담당교수였던 성공회대학교 총장 교수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는 원불교라고 하더라고 했다. 총장이 그렇게 말한 말의 이유는 원불교는 기독교 불교 유교 등의 장점을 혼합한 신생종교여서 각 종교의 불합리한 것들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원불교는 소태산에 의하여 만들어진 우리나라 신생 혼합종교다.

그렇게 원불교에 대하여 말하니 원불교 신자인 친구가 원불교는 보은의 종교라고 했다. 또 타종교인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기독교가 배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종교는 다 똑같다는 것이다. 종교는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일부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 신을 말하는 가 인간을 말하는가의 차이는 굉장한 차이다.

다른 친구는 가톨릭 신자인데, 신앙은 타력과 자력 신앙이 있다고 하며, 절대자 신에 의한 신앙이 참 신앙이라고 했다. 인간 종교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종교가 그렇고 자신이 믿는 종교가 최고라는 것이다. 일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톨릭은 신적인 요소가 주를 이루지만 인간의 전통과 인위적인 면이 있다.

또 한 친구는 자기 집 앞에 개신교 교회인 온누리교회가 있고 이단 구*파의 일파인 *의교회가 있다고 했다. 두 곳 다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린단다. 자신은 둘 다 인정한단다. 심지어 유튜브를 보면 허*영이 나오는데, 허*영의 하*궁에 사람들이 몰린단다. 그래서 자신은 믿음은 좋은 것이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뭔가 있기 때문이고, 세상은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자신이 믿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단이든 허풍장이든 교회든 자신이 믿는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 확증하기 어려우니 각자 믿는 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보니 문제가 많은데 이단들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무것이나 믿고 살아도 된다는 식인데 더구나 다수가 중요하다고 하니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문제가 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어머니가 이단 신*지에 다니다 돌아가셨는데, 그 신*지에 대하여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은 이제 교회 다닌 지 1,2년 밖에 안 되었다고 했다. 신*지교회인지 확인은 못했으나 자기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다. 심지어 종교를 빙자한 사이비종교나 이단도 있으며 대부분은 인간 종교가 많다.

 

2. 대상에 대한 인식은 사람 안과 대상인 밖의 독립 또는 종속된 연결 체계에 따른다.

 

황방산을 오르며 연녹음과 꽃들을 보며 아름다움은 어떻게 인식될까 궁구하며 생각했다. 실제 꽃, 세상, 인간 등등이 아름답다고 할 때, 어떤 관계와 체계에 의하여 그것들이 인식되는가? 곰곰 생각한 것이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이 이데아고 우리가 그것을 이미지로 인식한다고 했다. 대상 아름다움은 외부에 있고 내부 인식력에 의하여 의식된다는 것이다. 미국 속담에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아름다움은 바라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은 밖에 있으나 그것은 사람 눈 안 뇌에 저장되어 의식이 된다는 의미다. 내가 보는 대로 본다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미에 관한 입장이다.

 

인간은 대상(對相) 아름다움의 비례와 조화 그리고 빛과 시간에 따라 자신의 DNA에 새겨진 인식 조건과 판단과 감각 능력에 의하여 형성된 이미지 기억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외부 꽃을 보고, 보는 사람의 내부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감정 상태라면 아름답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대상 꽃과, 인식자 보는 사람은 외부와 내부의 독립 또는 연결(종속) 되어 있다. 각각 독립 또는 종속되어 존재한다.

 

3. 인간관계는 상대와 나와의 관계다. 상대와 내가 아름다울 때 서로가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어떻게 행복하고 만족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밖에 있는 상대를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또는 거꾸로 상대가 어떻게 나를 대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계가 형성되고 나와 상대의 기분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먼저 상대와 나를 각각 살피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상대를 대하면 된다.

극단적이고 도저히 회복 불가한 상태의 상대라면 관계해서는 안 된다. 변화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면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내야 한다. 불교식으로 말하는 연을 끊어야 한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기도 한다. 산책할 때 숲은 아름답지만 썩은 물이 흘러 좋지 않는 냄새가 나는 천이라면 숲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썩은 물이 흐르는 천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할 경우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나의 감정과 기분이 좋으려면 상대가 아름다워야 하고 내가 그를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거꾸로 나도 아름다워야 한다.

향기가 나고 아름다운 사람과 사귀는 것은 나의 삶을 아름답고 즐거워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

 

4.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을 알아야 한다.

 

결국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을 택하여 사는 사람이 진선미를 갖춘다. 유유상종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여 건강해야 하고 좋은 것을 봐야 하고 좋은 말을 들어야 한다. 좋은 것을 듣고 보자. 그러면 좋은 사람이 된다. 악한 것을 보고 들으면 악한 사람이 된다.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기도 하지만 아름답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태어나는 것을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상태와 조건에서 아름다운가? 내가 아름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례와 조화의 미가 있는 반면 무질서와 부조화의 추도 있다.

빛 안에서는 미이나 어둠은 빛의 결여로 사람은 빛 안에서 아름답다. 빛을 쬐며 살아야 한다.

죽음보다는 생이 아름답다. 죽는 쪽보다는 사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새 것과 헌 것 중에서 새것을 택해야 한다.

선과 악 중에서 선을 택해야 한다.

진리와 비진리 중에서 진리, 앎과 무지 중에서 앎을 선택해야 한다. 앎은 깨달음이다. 정보 획득이다.

 

5. 진선미의 창조자 하나님을 알고 배우자.

 

창세기 서두인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참 좋았다 곧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사야 4012-31절을 읽어보자. 만물과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다.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다.

 

12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았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느냐? 누가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고,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고,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았느냐?

13 누가 주님의 영을 헤아릴 수 있겠으며, 주님의 조언자가 되어 그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14 그가 누구와 의논하시는가? 누가 그를 깨우쳐 드리며, 공평의 도리를 가르쳐 드리는가? 누가 그에게 지식을 가르쳐 드리며, 슬기로운 처세술을 가르쳐 드리는가?

15 그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다. 섬들도 먼지를 들어 올리듯 가볍게 들어 올리신다.

16 레바논의 삼림이 제단의 장작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곳의 짐승들도 번제물로 드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17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18 그렇다면,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어떤 형상에 비기겠느냐?

19 우상이란 대장장이가 부어 만들고, 도금장이가 금으로 입히고, 은사슬을 만들어 걸친 것이다.

20 금이나 은을 구할 형편이 못되는 사람은 썩지 않는 나무를 골라서 구하여 놓고, 넘어지지 않을 우상을 만들려고 숙련된 기술자를 찾는다.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22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23 그는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24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뿌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25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6. 아름다움과 하나님을 선택하라.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들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라.

잘 모르는 것이면 알아보려고 하라.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은 항상 하나님 편에 있다.

하나님을 선택하여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즐거운 삶을 살기를 축원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