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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설교 하나님의 섭리 신앙고백 이사야 52장 7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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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설교 하나님의 섭리 신앙고백 이사야 52장 7절

필명 이일기 2019. 6. 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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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설교

하나님의 섭리 신앙고백

이사야 527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들이 많다.

 

이사야 24절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랬으면 좋겠다.

 

전 인생의 의미를 인식한 이사야

이사야 73절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이 나온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심판 가운데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아들을 대동하고 왕에게 가서 당시의 정세를 말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까지, 자식의 이름 뜻과도 연관된 권고를 할 정도로 전부를 걸고, 다 내놓고 나라 걱정을 말한 것이다.

이사야서 83절 이하는 예언자인 아내, 버림받은 아내를 비유한 말씀이 나온다.

그런 다음에 나는 예언자인 나의 아내를 가까이하였다. 그러자 그 예언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약탈이 빠르다-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앗시리아에 속히 약탈 당할 것이다.내 아기가 엄마 아빠를 부를 수 있기도 전에 속히 약탈이 진행된다)라고 하여라.”

아내까지 속속들이 새겨진 국가적 사건에 이사야는 사심이 아닌 진심, 충심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사야는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2자식과 아내의 인생의 의미를 현실 난제에 동원했던 것이다.

 

신약에서 많이 인용되는 이사야서

이사야서 714절은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서 1:23에서 인용된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논란이 있는 히브리어 단어 임마누엘은 히브리말 뜻은 젊은 여자다. 그런데 70인역 성경은 처녀로 번역했다.

누가복음 418-21, 안식일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서 행한 예수님의 말씀,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사야서611-2,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2)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이사야 당대에서만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예표가 되었던 인용이 되었던 예언의 말씀이다

 

이사야서 주제

이사야서 527,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너의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말씀은 이사야서의 전체적인 주제가 된다. 이사야는 그 자신이 예언한 말씀들이 성취되는 광경들을 목격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보았다.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서는 저자와 저작시기에 따라 나눈 세 부분, 1이사야(1-39)(BC 8세기), 2이사야(40~55)(BC 6세기), 3이사야(56~66)(BC 5세기 완성)이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했다. 이사야는

BC 742년경에 예언을 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BC 734년 에브라임(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동맹하여 유다 왕 아하스를 위협한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

BC 732년 앗시리아왕 디글랕 빌레셀 3(BC 745~727 재위)이 다마스커스 점령을 이미 예언했다.

BC 722년 북이스라엘 에브라임의 수도 사마리아가 앗시리아 왕 사르곤2세에게 함락도 예언했다.

BC 701년 앗시리아왕 산헤립은 남 유다의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철수를 예언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가 이집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갈 채비를 하고 있는 장군들과 심하게 대립할 정도로 예언하기 어려웠다.

이사야의 예언 시기는 앗시리아가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이사야는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위협을 믿음을 저버린 백성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경고라 했다.

이사야는 남 유다의 동맹국도, 무장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심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히스기야 시대에 이사야는 두려운 마음으로 정부와 대립하여 예언했으며 그 실행된 구체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요셉의 고백

이사야서를 읽고 살피면 창세기 458이 생각난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 받아 버려진 자신의 인생을 그 모든 게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실제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에서 된 일이지만 요셉은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인식했다.

 

요셉의 이러한 인식을 이사야와 비교해보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그리고 그 주변 강대국에 대하여 예언한다. 그리고 그 예언이 이루어진 역사를 체험한다. 여기서 이사야를 예언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이 이사야서를 쓴 저자의 입장, 곧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바라보고 기록한 입장을 보면 이사야의 입장은 요셉의 입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성경

성경은 요셉과 같은 인생이나 이사야의 예언에 의한 국가나 민족적 사건이나 간에,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고 고백하거나 예언한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하다. 성경은 상상의, 또는 저자들이 보고 겪고 경험한 것을, 주관적으로, 하나님과 연관하여, 자기반성과 성찰의 삶을 담아 기록된 책이다.

 

결론 믿음과 신앙생활

믿음생활이란 하나님과 관계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입증불가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드러난다. 하나님 없이 어떤 것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고 사는 여러분 되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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