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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설교 전통 제사와 부활의 예배 마태복음 20장 17-28절

필명 이일기 2021. 4. 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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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설교

전통 제사와 부활의 예배

마태복음 2017-28(마가복음 1032-45)

 

1. 제사

 우리가 아는 전통 제사법은 인도 문명 힌두교에서 불교로, 그리고 불교에서 나온 중국의 유교 주자학의 주희에 의한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인도 종교를 알면 우리 전통 제사의 뿌리를 아는 것이다. 물론 그 변화의 과정도 참고할 수 있다.

 

 강성용 서울대 교수의 인도 고전 베다의 일종인 우파니샤드 강연을 기반으로 말씀 나눈다.

 먼저 인도와 인도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바다라고 하고 호수라고도 하는 카스피해는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사이 북서부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내륙에 있다. 우리나라보다 크다. 기원전 15세기경 이 카스피해에서 인도 서부 인더스강에 이주하여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또 다른 일군의 이주 유목민들이 기원전 10세기경에 그 카스피해에서 히말라야산맥 티베트고원을 넘어 인도 동부 갠지스강에 정착한다. 이들 아리안족이 인도힌두교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이주 유목민들은 이주자 손님들에게 잘 대해주라라는 아리아라는 말을 썼다. 그 이주자들이 아리안족이다. 후대 인도 이란 유럽 사람들이다. 이주민들은 힘들고 어려운 이주요가와 휴식 정착끄시마를 반복했다.

흐르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인더스에서 나온 인두가 싼스크리트어로 힌두. 인더스와 갠지스 강 지역에 정착 사람들을 인도족 또는 힌두족이라 부른다. 아리안족 중 일부가 인도에 정착하여 인도, 힌두족이 된 것이다. 유럽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족 사람들은 게르만족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한민족이라 하듯, 중국의 일부에 한족이 있듯. 몽골족 등등.

[참고로 히틀러는 독일인들은 게르만의 후예라 하며, 구약에 나오는 헷족 히타이트 후예들인 그리스 로마 문명 보다 우수하고 오래된 아리안(인도 이란 유럽, 이란-아리안의 땅) 문명 우위를 주장하고 히타이트 후예로 오인한 유대인 숙청을 한다. 사실 유대인들은 히타이트와 다른 헤브라이언이다]

 

 이주민 특히 후에 인도에 이주한 아리안족은 선한 신들 데바(가장 잘 싸운 신이 인드라다. 불교에서는 인드라가 붓다의 조연이다.)가 악신 아수라와 싸움 전쟁(아수라장, )에서 이기도록 일종의 마약재, 환각 작용하는 독버섯? 식물인 소마(후에 불교에서 소마를 우담바라라 했다. 우담바라의 실재는 풀잠자리 알이다.)를 불에 태워 연기로 데바 신들에 바치는 제사를 드렸다.

 [참고, 소마는 꽃 없이 생기는 과일 무화과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도 무화과나무(부디트리 삐딸).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는 꽃나무 무()화과(花果). 사실 무화과나무 꽃은 열매다. 무화과의 꽃가루를 운반해 줄 "무화과나무 벌" 암컷은 수컷 무화과 안쪽에 자신의 알을 낳는다. 무화과 열매 입구에 아주 조그마한 구멍으로 무화과나무 벌 한 마리가 들어갈 수 있다. 벌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는 봉해진다. 알을 다 낳은 암컷 벌은 수컷 무화과로부터 꽃가루를 잔뜩 묻혀서 암컷 무화과에 수정시키고 난 다음, 수컷 무화과로 돌아가 알을 낳는다.

 불교에서는 무화과꽃을 보는 일이란 드문 일이니까 드문 일이 지금 생길 그때 붓다를 만나 해탈을 얻으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과장이 커져 무화과꽃은 3,000년에 한 번씩 핀다고 하지만 보지 못한다. 아열대 식물이고 꽃이 없는 것이니까. 한국에서는 우담바라로 바뀐다. 우담바라는 풀잠자리 알이다. 편의점 유리창, 자동차 본닛, 불상 등등에 낳은 알에서 새끼가 깨고 나오면 끝이 갈라져서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삼천 년에 한 번 핀다? 근본적으로 아니다. 이 소마가 아수라와 데바가 싸울 때 유일하게 나무 중에서 데바 편을 든다. 그래서 데바는 소마에게 항상 꽃피고 열매 맺도록 했다.]

 

 제사를 지내면 하늘에서 장맛비가 내려 풀들이 자라고, 그 식물들을 동물이 먹고 살고, 인간이 먹고사는 순환적 우주원리 체계가 만들어진다. 힌두교 베다 경전 시기에는 르따로 불렸다. 다른 말로 브라흐만이다. 베다 경전의 후대 일종인 우파니샤드 경전 시기에는 다르마라 했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이라 했다. 제사 때 행하는 모든 법과 소원문, 곧 제법과 제문이다.

 브라흐마나(전문 사제)는 모든 우주원리 제사 과정과 맥락을 아는 사람이다.

 만뜨라는 제사법, 제사의 규칙 언어 옴마니반매움 수리수리마수리 등등이다. 제사 때 외우는 언어 메시지다. 유교식으로는 제문이다.

 우리 전통 제사에는 준비를 어떻게 하고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고 어떻게 절을 하고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도록 빌고 등등 복잡한 것과 같이 무수하고 복잡하여 이해가 어려운 제사법 만뜨라에 따라 제사해야 하기에 그 법을 다 외우고 알고 있는 브라흐마나가 제사를 지낸다. 제사에 후손들은 참석하지 않고 제물이나 그 비용만 내면 된다. 반면 유교식 묘제 기제 등 제사는 원칙상 제주가 진행하나 자녀들도 참석할 수 있다.

우파니샤드 경전에서 인간은 제사를 지냄으로써 우주가 제대로 작동되는 원리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 자신(아뜨만)은 우주(제사)의 원리(브라흐만, 다르마) 안에 사는 존재다.

 

 제사는 주로 변환점에서 지낸다. 해뜨기 직전 지낸다. 안 지내면 해가 안 뜬다. 그래서 다 죽을 수도 있다. 해지기 직전에 지낸다. 안 그러면 다음 날 해가 안 뜬다.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따라서 브라흐만의 사제 브라흐마나는 새벽과 오후에 제사를 지낸다. 태어나고 성인이 되고 결혼하고 죽을 때 제사를 지낸다. 전환점을 잘못 넘기면 므리따(죽음)이고, 잘 넘기면 아므리따(생명, 영생).

 

 나로부터 5세대, 4대 조상들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들도 데마가 소마를 받듯 제사를 받아서 산다. 그 이상 6대 조부는 하늘나라(스바르따)로 간다. 제사가 끊기면 조상들이 다 죽는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신입 조상 쁘레따 아귀는 조상신들 세계에 적응이 안 되어 인간 세상에 자주 오기도 하는데, 특히 제사 보급이 안 되면 인간 사회에 끼어들어 사고를 친다. 아귀가 조상들의 세계에 적응하는 기간 7*7=49일 동안 매일 49번의 제사를 지낸다. 49제다. 현재는 변화되어 부모가 돌아가신 후 1주에 한 번 총 7번 지내기도 하고 대부분 49일에만 지낸다.

 

 인도의 힌두교 불교, 중국의 불교 유교, 한국의 불교 유교에서 나온 전통적인 제사는 우주가 잘 작동되어 인간이 잘살도록 신들과 조상에게 바치는 핵심요소다. 전문 종교 대리자가 행한다. 제사 지내는 데 제물이 신에게 올라가기 때문에 중요하다. 제사의 순환 우주원리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2. 예배

 예배는 아브라함 이전 선조들과 같이 아브라함의 후손도 이주와 정착의 반복된 삶에서 행해진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나와 살다가 노아 때 홍수가 있었고,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이후 각 곳으로 흩어져 이주하는 유목민들의 언어는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된다. 흩어진 후예들 중 카스피해 아래쪽 아시아 터키 이라크 지역 두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바빌로니아(갈대아) 우르에 살게 된 아브라함 가족은 우르에서 하란으로 가나안으로 이집트로 다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 정착하며 살게 된다.

 

 이들 이주 유목민 헤브라이언의 중요한 삶은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주한 것, 모세가 출애굽한 것도 야훼께 예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야훼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핵심이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개념이다.

 그러나 구약 안식일은 신약시대 예수님 이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반복 기념하여 지키는, 구세주의 날 주일로 변화한다. 기독교 예배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예이고 존중이다. 인도 중국 우리나라 전통 종교와 같이 현실의 삶을 잘 살게 해 달라는 기원과 소망을 담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경배와 헌신이라는 차별성이 있다. 더구나 개신교의 만인 제사라는 의미는 개별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한다, 만난다는 차원에서 중요하다. 옴마니반매움 수리수리마수리 등등과 같이 복잡하고 어려워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그래서 거부할 수도 있다. 심지어 모든 사람을 섬기도록 한다.

 

 마태복음 2017-28(마가복음 1032-45)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를 따로 곁에 불러놓으시고,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보아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19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아서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마실 수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24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섬기려고 이 세상에 왔고, 사람들을 위한 제물이 되려고 이 세상에 왔다.

 

3. 바울의 예수님과 예배에 관한 현실적 목적 실천은 사랑과 산 제물의 헌신

 에베소서 51-2,

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로마서 121

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4. 기독교의 예배는 신에게 소마를 바쳐 잘 살게 해달라는 제사가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인 사랑과 헌신의 순종을 반복적으로 깨달아 사는 것이다.

 부활의 의미를 새기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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